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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하는 시리아·이라크 폭격:
평화에는 관심 없는 제국주의 지배자들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 격퇴를 명분으로 한 제국주의적 강대국들의 시리아 개입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12월 2일 미국은 아이시스와의 전쟁을 위해 더 많은 특수부대를 파병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부터 이라크·시리아에서 1만 회에 이르는 연합군의 공습을 주도하고 있고, 압도 다수는 직접 수행했다. 미국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는 중동 전체에서 미군 “수만 명”이 이런저런 작전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미국 정치권에서는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경제 위기 때문에 군비를 줄이고 상당한 군 전력을 아시아에 집중하느라 중동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충분히 다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 지배자들 중 일부는 세계 최대 산유국들이 밀집한 중동에서 미국의 지위가 예전 같지 않은 것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프랑스 올랑드 정부는 마치 파리 참사 때문에 아이시스와의 전쟁에 돌입한 것처럼 말한다. 지금은 항공모함까지 파견해 대폭 늘어난 전투기들을 동원해서 시리아 등을 폭격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11월 13일 파리 참사 전부터 이라크·시리아를 수백 차례 폭격했다. 시리아 연안으로 항공모함을 파견한다는 결정도 참사 전에 내려졌다. 또한 프랑스는 2월에도 항공모함을 파견해 이라크를 폭격한 바 있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연대’를 내세워 전쟁에 더한층 박차를 가했다. 영국은 이미 이라크에서 프랑스 못지 않게 폭격을 많이 하고 있었다. 12월 2일에는 폭격 지역을 시리아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의회 결정이 내려진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전투기가 발진한 것은 영국 지배자들이 얼마나 폭격을 고대해 왔는지 보여 준다.

독일도 파리 참사 전부터 이라크에 1백 명에 이르는 병력을 파병했고, 아프가니스탄 주둔군을 15퍼센트가량 늘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파리 참사 뒤 독일은 시리아 연안에 정찰기 6대와 병력 1천2백 명을 급파하기로 했고 아프가니스탄 증파 계획도 확정했다. 또한 프랑스가 또 다른 군사작전을 수행 중인 아프리카 말리에도 6백50명을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러시아는 수십만 명을 살해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비호하고자 수년간 무기를 지원했을 뿐 아니라 9월 말부터는 직접 개입해 왔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시리아 내 세력을 모조리 ‘테러리스트’로 본다. 그래서 자국 해군 기지가 있는 시리아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시스가 아닌 반군을 폭격하는 데 더 집중한다.

따라서 러시아가 (시리아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서방을 향해 ‘시리아의 운명은 시리아인들이 결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역겹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을 지키는 데 이해관계가 맞는 이란에 6조 원에 이르는 경제 지원을 약속하며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ISIS 점령 도시에서 물을 받으러 줄을 선 시리아인들.

이처럼 여러 강대국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테러 척결을 외치면서 군사 개입을 하지만, 시리아나 이라크 현지의 평범한 사람들의 처지는 더 위험해지고 있다. 아이시스의 ‘수도’라고 불리는 시리아 도시 라까에서 활동하는 지하 단체이자 최근 국제언론자유상을 수상한 ‘라까는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다’는 다음과 같이 모든 공습을 비난했다.

“무고한 민간인들은 공습으로 득 볼 게 전혀 없다. 공습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는 것을 중단하라.

“어쩔 수 없이 아이시스 치하에 살고 있다고 해서 라까 시민들이 모두 다 아이시스 편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불행한 것은, 시리아의 궁극적 평화는 물론이고 테러 척결도 지배자들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지금 각국은 군사력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고, 심지어 많은 나라 정부들이 향후 국방 예산을 늘리려 한다. 만일 평화나 안전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그 돈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세계 각국의 빈곤을 퇴치하는 데 쓰여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시리아는 전쟁 무대일 뿐이다

각국이 시리아에 개입하는 진정한 의도는 자국의 위세를 드높이고 ‘국제 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다. 1950~53년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소련·중국의 개입이 한반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듯이 시리아 개입도 수단일 뿐 목적은 전혀 다른 데 있다. (아래 이미지 크게 보기)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온갖 각축전과 모순

크게 보기 / 그래픽 조승진

영국의 한 보수 논객은 시리아 공습 의회 표결을 앞두고 “이번 표결은 영국의 국제 신인도를 회복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고 썼다. 2013년 영국 의회가 시리아 공습을 부결시키면서 미국과의 관계에 상처가 났고,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능력이 줄었으며, 우크라이나 사태나 난민 문제 같은 유럽 현안에서 영국의 발언권이 축소됐는데 이것을 모두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목적도 중동의 오랜 동맹국(시리아)을 지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서방의 개입이 더한층 커진 지금, 러시아는 그에 맞춰 개입 수준을 높임으로써 동맹국에 대한 자신의 ‘의리’를 더 과시하려 한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빈자리를 많이 느낀 중동 나라들에게 자신이 미국보다 더 일관되고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미국도 관심이 딴 데 있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지배자들은 시리아 개입 문제에서 갈수록 러시아 견제를 중요하게 여긴다. 9월 말에 러시아가 시리아에 직접 개입했을 뿐 아니라, 파리 참사 이후 프랑스가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러시아를 억제하는 것을 패권 전략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미국은 10~11월에 유럽에서 나토 군사훈련을 2002년 이래 최대 규모로 실시했다. 최근에는 동유럽 국가 몬테네그로를 나토로 끌어들이면서 러시아를 압박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시리아에서 러시아와의 공조를 중시하느라 자칫 이런 흐름에 엇박자를 낼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프랑스는 파리 참사 전에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대(對)러시아 경제 재제를 완화하자고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래서 오바마 정권과 밀접한 싱크탱크는 파리 참사 직후 “올랑드에게 미국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실에서 이것은 미국이 러시아에 뒤지지 않을 만큼 시리아·이라크 군사 개입을 늘리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지배자들의 머릿속에서는 아이시스나 시리아·이라크 문제 자체보다는 다른 강대국을 견제하거나 자기 편으로 포섭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아이시스 격퇴와 상관이 없는 일들, 예컨대 터키가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하거나, 러시아가 아이시스가 아닌 반군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최근 시리아 정권은 미국이 자신들의 군기지를 폭격했다고도 밝혔다.

이런 자들에게 아이시스 격퇴와 평화를 위한 ‘국제 공조’를 요구하는 것은 공상이다.


박근혜는 전쟁 지원 약속을 당장 파기하라

10월 박근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아이시스,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 대해 미국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미국이 아이시스 격퇴를 내걸고 결성한 국제동맹의 5개 실무그룹 가운데 하나인 ‘안정화 지원 실무그룹’에 참여하기로 약속했다. (‘한미관계 현황 공동 설명서’)

지난해 미국의 공습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것을 더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안정화 지원’이 파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해 안정화 작전을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파병 압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주간동아》)

미국이 중동 전쟁의 늪으로 빠져들수록 한국도 함께 빨려 들어갈 수 있다. 또한 미국을 지원하면 할수록 아이시스뿐 아니라 각종 ‘테러’ 세력이 한국인을 겨냥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커진다.

테러 위험에 기름을 부으면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운운하는 것은 완전히 자가당착이다.

박근혜 정권은 전쟁 지원 약속을 즉각 파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