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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위기를 끝내지 못할 유엔 안보리 결의

국제적·지역적 열강의 군사적 개입이 계속되는 가운데, 12월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시리아 ‘평화’ 실현을 위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16년 1월 초 정전에 돌입해 정부군과 반군이 협상을 시작하고, 6개월 안에 새 헌법 마련 등을 논의할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1년 6개월 안에 유엔 감시 하에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는 시리아의 ‘평화’를 실현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리아에 개입하고 있는 국제적·지역적 열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이하 아이시스) ‘격퇴’를 위한 연합군을 주도하는 미국은 1년 넘게 이라크와 시리아를 폭격하고 최근에는 특수부대도 파병하고 있지만 명확한 계획은 없는 듯하다. 미국 지배자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세력은 더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계속 요구한다. 오바마는 아직까지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전략 틀을 크게 바꾸고 싶지 않은 모양새다. 12월 17일 오바마는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병하면 “매달 1백 명의 미군 사망자가 나오고 1백억 달러(약 11조 8천억 원)의 지출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가장 앞장서서 가장 많이 군사 행동을 벌이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9월부터 직접 폭격에 나선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안보리 결의가 나온 지 하루 만에 군사 행동을 더 강화할 의사를 내비쳤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군사적 수단이 있다. 필요하다면 이를 사용할 것이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러시아의 주된 폭격 대상은 반정부군이다.

좀더 큰 틀에서 보면, 러시아의 행보는 소련 해체 후 추락한 러시아의 위상을 되살리고자 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2000년대 초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러시아 경제가 성장하고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발목 잡혀 있던 상황이 러시아에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다. 러시아는 그 기회를 이용해 2008년에는 미국의 동맹국인 그루지야(현재의 조지아)를 침공하고,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병합하며 주변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해 왔다. “러시아의 [시리아] 사태 관련 입장은 흔들리거나 변하고 있지 않다. … 이런 지속적 모습이 사태 해결에서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푸틴의 말은 러시아 지배자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잘 보여 준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해 연안국들은 시리아 내 여러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12월 15일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 아델 알 주베이르는 요르단, 아랍에미리트연합, 파키스탄, 터키, 이집트 등 34개국을 아우르는 ‘이슬람 연합군’을 창설하고 지상군도 파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파키스탄 외교장관 아이자즈 차우드리가 그런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지역 맹주 자리를 놓고 이란과 경쟁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개입을 더 늘리고 싶어할 것이다.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의 핵심 관심사는 터키·시리아·이라크 등지에 걸쳐 있는 쿠르드인들의 민족해방 투쟁 강화를 막는 것이다. 그래서 터키는 시리아에서 쿠르드 세력과 경쟁하는 여러 수니파 지하드 세력에 재정을 지원하고 아이시스를 눈 감아 주고 있다. 아이시스가 시리아에서 쿠르드 민족주의 정당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성장을 억제하기 바라는 것이다.

얼마 전 터키 정부는 아이시스와 싸우는 민병대를 훈련시키기 위함이라며 이라크 정부와 상의도 않고 이라크 북부에 군대를 투입했다. 이 때문에 이라크 정부(역시 쿠르드 민족해방에는 반대하지만 터키의 간섭은 좌시할 수 없는)가 강력하게 반발하자, 미국 부통령 조 바이든까지 나서 두 나라 사이를 중재해야 했다. 터키가 군대를 파병한 이라크 북부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가 있는 지역이다.

이처럼 시리아 사태와 관련된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중첩된 상황 때문에, 안보리 결의안은 아사드의 거취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또한 협상의 당사자가 될, ‘테러리스트’가 아닌 반군의 범위도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다. 12월 20일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와 연계된 종교·지정학센터는 시리아 반군 가운데 적어도 15개가 아이시스의 후임을 자임할 준비가 돼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와중에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유로 시행한 러시아 경제제재를 6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그 날짜가 12월 18일, 즉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된 날이었다. 바로 다음날 러시아가 군사 행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된 12월 18일에는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 팔루자 인근에서 공습을 벌이다 이라크 정부군 병사 10여 명이 사망하는 ‘오폭’ 사건도 있었다. 미국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는 이 오폭이 “미국과 이라크 양쪽 모두가 연루된 실수”이고 “전장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교전을 치르다 보면 이 같은 실수가 벌어진다”면서 연합군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아주 큰 사건은 아니지만, 서로 셈법이 판이한 국제적·지역적 열강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서로 어깨를 부대끼는 상황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이 모든 상황이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바로 시리아의 비극이 계속되고 확대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이 비극을 해결할 대안은 이른바 ‘국제사회’의 대응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중동 개입을 약화시키고, 중동의 억압적 정권들을 타도할 아랍 혁명의 부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