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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음대 강사들이 집단 해고 위기에 맞서다

서울대학교 성악과는 교수의 공석이 많아 전공실기 수업에 절대적으로 강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음악대학 강사들에 따르면, 전공 필수와 전공 선택의 20과목 대부분을 정규직 교수가 아니라 강사들이 맡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서울대 당국은 정규교원 1백 퍼센트를 충원하기는커녕 기존 강사의 해고를 묵인하면서 고용 여건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에 따라 교육 여건도 열악하게 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는 통상 5년마다 성악과 강사를 공개 채용해 왔다. 2014년 채용공고문에는 “임용기간은 1년으로 하며 5년까지 재임용할 수 있음”이라고 명시돼 있기도 하다. 강사들은 성악과 ‘내규’에 따라 최대 5년까지 ‘갱신기대권’이 있었다.

하지만 2015년 11월 말, 성악과를 비롯한 음대에서 강사 1백13명을 전원 해고하고 신규 강사를 모집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꺼번에 강사 1백여 명이 해고된 서울대 음대의 모습은 전국 대학 강사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를 보여 준다. ⓒ사진 출처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음대 측은 기존 강사들의 고용 보장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12월 2일 음대 웹사이트에 강사 신규 채용을 공지했다. 이전까지 성악과에서는 공개 채용 후 1년 만에 ‘해촉’되거나(강사 위촉을 해지했다는 뜻으로, 해고와 같은 의미다) 1년 후 다시 신규 임용 오디션 절차를 밟은 적이 없었다.

12월 7일 성악과 강사 55명 중 40여 명이 신규 강사 채용 공고를 반대하는 탄원서를 음대 측에 전달했다. 성악과 학과장은 강사들과의 면담 자리에서는 국회가 시간강사법을 폐지할 시에는 공고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입장을 바꿔 시간강사법과는 무관하게 ‘음대법’에 따라 신규 채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2월 31일 시간강사법 시행은 2년 유예됐지만 그날 음대는 신규 채용을 위한 공개 강의와 면접을 강행했다. 서울대 본부는 음대 강사 문제에 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강사들의 저항과 학내 연대

집단 해고 위기에 처한 음대 강사들은 12월 22일 민주노총 산하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단체들과 ‘강사 대량해고 시도 규탄 및 시간강사법 시행 중단 촉구’ 기자 회견을 열고, 1인 시위를 벌이며 해고의 부당함을 알렸다.

“만약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특정 인물 몇 명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갑질’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대학 안의 수많은 ‘을’들에게 피눈물을 강요하는 갑질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시행되지도 않을 법에 근거한 공고, 갱신기대권과 관행을 무시한 대량해고, 강사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부정하는 반노동적 태도는 서울대에서 지속되어서는 안 될 구태이다.”(기자회견문 중)

음대 강사들은 생애 처음으로 학교 당국과 맞선 투쟁을 결의하고, 12월 29일부터 서울대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도 시작했다.

1월 12일 서울대 학내 단체들이 모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강사 집단 부당해고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결성했다. 공대위 활동은 음대 강사들의 싸움을 진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공대위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는 3월까지 음대 강사들과 함께 천막 농성장을 사수하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등 학내 행사들을 활용해 부당한 집단 해고를 알릴 계획이다.

공대위가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강사 집단 부당해고에 대한 공동대응을 시작으로 학내 비정규직 문제, 민주주의 문제, 차별과 인권 문제, 교권과 학생 수업권 문제 등 다양한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2011년 법인화된 뒤 서울대 당국은 비용 절감과 노동 통제를 위해 외주화를 추진하며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일반노조 서울대 기계·전기분회와 전국대학노조 서울대지부가 대학 본부 측과 싸우고 있다. 이런 투쟁의 주체들이 대학 공공성을 저해시키는 학교 당국에 맞서 함께 투쟁을 벌여 나갈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야

정부가 시행을 추진하는 시간강사법은 대학이 몇몇 강사들에게 강의를 몰아 주도록 사실상 유도한다. 그래서 수년 전부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등은 시간강사들이 대량해고 될 것이라며 시간강사법 폐기와 올바른 대체입법을 요구해 왔다.

실제로 대부분 대학은 올해 시간강사법이 시행될 것이라 예상하고 지난해 2학기부터 ‘선(先) 강사 대량해고, 후(後) 일부 강사 임용 조처’를 준비했다. 비록 지난 연말에 법 시행이 유예되면서 이런 공격도 대체로 미뤄졌지만, 이번 서울대 음대의 대량해고 시도는 향후 시간강사법이 시행됐을 때 훨씬 더 광범하게 벌어질 문제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2월 24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도 소속 시간강사 67명이 해고됐다.

이처럼 서울대 음대 투쟁은 전국에 있는 대학 강사들이 처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반영한다. “평생 화려하게 무대에 서서 노래만 하고 우아하게 학생들만 가르칠 줄” 알았다던 서울대 음대 강사들을 영하의 날씨에 천막 농성으로 내몬 것은 신자유주의적 대학 구조조정과 교육 영역의 시장화 압박 체제이다.

결국, 대학 노동자와 학생, 비정규 강사, 교수 등 대학 구성원들이 연대해 박근혜식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을 건설할 때 실질적인 대학 강사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