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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실시:
병원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함께 이뤄져야

올해 4월부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포괄간호서비스)가 모든 공공병원과 상급 종합병원, 그리고 서울 소재 병원들에서 시행할 수 있게 된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간호사들이 간병도 하는 제도다.

그동안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 중 부담이 가장 큰 것이 간병비였다. 간병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하루 평균 8만 원이나 되는데, 종종 병원비보다 부담이 더 크다. 이러 부담 때문에 가족 중 한 명이 중증질환으로 입원하면 의료비 부담으로 가정 경제가 파탄나거나, 간병을 담당하는 가족은 경제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은 오래 전부터 간병비의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메르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간병 서비스 제도화에 열의가 없었다. 2007년에서야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민간에 맡기거나 단기간에 그치기 일쑤였다. 2013년 7월에는 ‘포괄간호서비스’란 이름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그러다가 메르스 사태로 가족 간병의 문제가 드러나자 부랴부랴 지난해 12월에 의료법을 개정하고, 2018년으로 예고한 서비스 확대를 올해로 앞당긴 것이다.

시범사업에 참가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의 보고에 따르면, 환자와 환자 가족 94퍼센트가 만족스러워 했다. 낙상과 욕창 발생률, 감염율이 현격히 줄어들고 간병 비용도 줄어들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당연히 이러한 서비스 확대를 환영한다.

이제라도 병원이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추가 비용을 환자들에게 떠넘기거나(보험료 인상) 노동강도 강화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 의미는 크게 퇴색될 것이다. ⓒ이미진

그런데 간병비 부담을 대폭 줄이고, 더 안전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실제로 그 일을 맡게 될 노동자들의 조건이 중요하다.

첫째, 간호 인력이 대폭 충원될 필요가 있다. 간호사들이 기존 간호 업무에 더해 간병까지 담당하므로, 업무가 대폭 늘어난다. 이윤에 눈 먼 병원 자본들이 인력에 투자하기를 꺼려 지금 한국의 병상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노동 강도와 밤근무 비율이 높아 많은 간호사 노동자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다. 현재 간호사 면허자의 60퍼센트가 병원에서 일하지 않는 형편이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 캐나다의 경우, 간호사 1인당 4~5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간호인력 배치 기준은 이보다 훨씬 낮다. 한국 정부의 기준으로 상급 종합병원은 간호사 1인당 5~6명, 종합병원은 8~12명, 병원은 10~14명이다. 간호사 1인당 8명으로 시범사업에 참가한 서울의료원에서는 높은 노동 강도 때문에 간호사들의 사직과 이직이 늘어, 시범사업 참가 간호사들의 60퍼센트의 근속년수가 3년 미만이라고 한다. 중증 환자들을 돌보는 병원이 아닌데도 이렇다. 이러면 환자 안전과 서비스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간호 인력 배치 기준을 대폭 상향해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인력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간호사 같은 전문직도 파견이 가능하도록 파견법을 개악하려 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에 필요한 간호사 인력을 값싼 (시간제 등) 파견 노동자들로 채울 수 있게 함으로써 병원 자본의 부담을 덜어 주려는 것일 수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금도 지방 중소병원이나 공공병원들은 간호사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임금과 노동조건이 수도권보다 더 열악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간호 인력 확보가 어려워 시범사업을 시작조차 못한 지역 거점 공공병원이 6곳이나 됐다. 따라서 정부가 내세우는 간호대학 정원 증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셋째, 간호 인력 중에서도 5만 명에 달하는 기존 간병인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가 중요하다. 그동안 병원이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간병인들은 사설 파견업체들에 고용돼 일해 왔다. 이들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에서 배제돼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다. 정부와 병원 자본은 기존 간병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적절한 재교육 과정을 거친다면 그동안 간병 경험을 더해 간호 보조 인력 등으로 자연스레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참에 간병인 노동자들을 병원의 정규 인력으로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병원에 비정규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난 메르스 사태의 교훈 중 하나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지 않은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몇 년째 흑자를 이어 17조 원이나 쌓여 있는데도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거나 병원비 부담을 낮추는 데 쓸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참에 흑자를 핑계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을 축소, 폐지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에 필요한 재정을 정부가 책임지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파견법 개악으로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노동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도 있고, 올 7월부터 입원비를 인상한 것처럼 환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도 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축소, 폐지하고 건강보험료를 인상할 수도 있다.

병원 자본들도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로 수가는 더 받으면서도 충분한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기존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운영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민간 병원들에 대한 강력한 정부 통제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제대로 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위해서는 병원 노동자들이 환자를 진심으로 보살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인력 확충, 보장성 강화, 정부의 책임 있는 재정 투자 등은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조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