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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당선인:
진보적 ‘국가’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정치인

20대 총선에서 진보·좌파 후보들은 거대 야당들의 압박 등 어려운 조건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특히 민주노총이 구심이 돼 ‘영남 노동벨트’에서 민주노총 전략후보들이 압도적 지지로 당선한 것은 고무적이다. 〈노동자 연대〉는 앞으로 4년간 의회에서 변화 염원 대중의 요구를 대변할 당선인들을 소개하면서, 진보·좌파 정치 운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심상정 당선인은 노회찬 당선인과 함께 진보‍·‍좌파 정당 소속으로는 최초로 3선 국회의원이 됐다. 심 당선인은 1980년대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래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하기까지 전노협, 금속연맹 등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왔다.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까지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지냈다.

심 당선인은 한국 노동자 정당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의원 활동 초기에 국회 재경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그동안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부 예결산, 재정 운용, 각종 통상 협정 등을 폭로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런 기여는 진보적 복지 정책을 입안하는 데서도 긴요한 것들이었다. 그의 보좌관이었던 오건호 씨는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재정 문제를 다룬 책을 펴냈고, 노동운동 내에서 복지‍·‍재정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물론 오건호의 주장과 실천에는 약점과 비판할 점이 없지 않다.)

심 당선인은 19대 국회에서도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위선을 들춰내며 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연설로 인기를 얻었다.

한편, 2007년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심 당선인은 당 혁신 방안으로 네 가지를 제기한 바 있다. ‘민주노총 당’, ‘운동권 당’, ‘종북당’, ‘반대 정당’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2013에 펴낸 책(《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2013)에서도 이 문제의식은 지속되고 있다.

물론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진보 정치인으로서 심 당선인은 ‘노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복지국가 논의에서도 노동시장에서의 분배(임금)를 빼놓고 재분배(복지)만 얘기하는 것에는 한계가 명백하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시민으로 에두르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민주노총 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심 당선인의 주장이 단순히 노동 기반을 축소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민주노총의 입장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정치와 경제의 분업을 특징으로 하는 것과 관계 있는 견해다. 노동조합은 어쨌든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할 수밖에 없지만 정당은 (노동자 정당일지라도) 그럴 수만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심 당선인이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 정당이 단지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심 당선인이 진보‍·‍좌파 정당이 ‘종북당’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기한 것도 사실 진정한 쟁점은 한국 국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다.

심 당선인은 현재 진보‍·‍좌파 정당의 지도자들 중 한국 국가에 대한 존중과 충성 입장을 가장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헌법 내 진보”론이 바로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정치라는 행위가 국민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기능하는 것이라면, 그 공동체의 가장 기본 의식으로서의 애국심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 5월의 광주 시민들도 6월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도 모두 자발적으로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애국가를 부르면서 행복했던 추억이 꽤 있습니다.”(앞의 책)

박근혜 정부를 ‘안보 무능’ 정부라고 비판하는 것이나 이번 총선 홍보물에 실린 그의 군복 입은 사진도 그 연장선이다. 앞서 인용한 책에는 북한 비판은 있어도 미국‍·‍일본‍·‍남한 국가의 대북 압박 문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악 당시에도 정의당은 여야가 합의한 개악안을 지지했는데, ‘국익’을 고려하면 정부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생길] 재정 절감분은 향후 70년간 총 3백33조 원에 달할 전망으로 기금 불안정성 문제 역시 상당 부분 해소[됐다].”(정의당 정책위원회)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 정당’이라고 했는데 심 당선자가 추구하는 길이 어떤 모순에 놓일지를 잘 보여 준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 착취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자본주의 국가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익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오는 모순이다. 심 당선인이 모델로 제시하는 전후 서구 복지국가들의 경험에서 이런 모순이 비교적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던 것은 장기 호황 덕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환멸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 그 길을 그대로 좇는 것은 사회 개혁을 이루는 길이 아니다.

심 당선인이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가능케 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할 좌파적 방향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