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을 아는 기초 이론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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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냐 혁명이냐는 유의미한 물음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정상이라고 믿으며 자랐다. 우리가 자란 사회는 근본적 사회변혁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이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사람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거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의회를 통한 개혁만을 바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본주의 종식과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는 소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관념들을 다 받아들이는 노동자도 소수다. 대다수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관념들 중 일부는 받아들이고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이에 관해서는 <노동자 연대> 지난호에 실린 ‘언론은 사람들의 생각을 좌지우지하는가?’라는 기사를 보라.)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는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물론 많은 좌파들이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은 케케묵은 것이라고 일축한다. 새 시대의 좌파는 그런 따분한 토론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등장한 지 반년도 채 안 돼 EU에 굴복한 사실을 보면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물음이 케케묵기는커녕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의미가 있는가? 먼저, 진정한 쟁점은 개혁 ― ‘노동개혁’ 같은 사이비 개혁이 아니라 착취와 차별을 경감케 하는 진정한 개혁 ― 을 위해 투쟁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상 마르크스와 레닌, 트로츠키 등 모든 훌륭한 혁명가는 개혁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므로 진짜 이슈는 과연 개혁 운동만으로 충분한가, 그리고 어떻게, 어떤 전망 속에서 개혁 운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개혁 운동에 한정하는 반면, 혁명가는 개혁 운동을 혁명 운동 건설의 일부로, 또 혁명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본다.

△노회찬 후보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노회찬(맨 왼쪽), 심상정(가운데), 이정미(맨 오른쪽) 국회의원 당선자들. ⓒ사진 출처 노회찬 블로그

사회민주주의의 좌파와 우파

사회민주주의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고 다른 하나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다.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원리·원칙을 지지하고 그에 근거하지만 다양한 법률과 정책을 통해 시스템의 운영을 개선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노동계급의 권익을 보호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려 한다.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표적 사례이지만, 정의당도 이 범주에 속한다.(정의당의 개혁주의는 또한 민중주의적이기도 하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개혁해 사회주의로 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는 대중운동과 노동조합을 동원해 자신들의 계획을 뒷받침하도록 보완한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의 사례는 제1차세계대전 전의 독일 사회민주당, 1970~73년 칠레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 영국 노동당 좌파의 토니 벤(1925~2014)과 제러미 코빈(1949~, 현 당대표),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옛 민주노동당과 현 노동당 등이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미디어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를 터무니없고 웃긴다며 평소에 개무시하다가 특정 시기에 좌파적 사회민주주의가 떠오르면 “빨갱이”라며 극단주의 세력 취급을 한다.

그러나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둘 다 사회민주주의로서 공통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원칙 문제인데, 둘 다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과 활동이 아니라 자신들이 민중을 대리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둘째, 전략 문제인데, 둘 다 기존 국가 기구(의회, 행정부, 공무원 조직, 지방자치단체 등)를 활용해 개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회의 구실을 강조한다.(정의당이 왜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변화를 위해 대중 시위 등을 압박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주류 측과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은 오늘날과 무관한 과거사가 아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폭넓은 개혁이 이뤄지다.

혁명기에는 사람들의 사상이 급변한다. 그런 때는 노동자들이 시스템의 본질적 모순들을 깨닫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은 온전히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이윤으로 돌아가고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은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1917년 10월 혁명에 뒤이어 러시아 여성들은 선거권, 이혼권, 낙태권 등을 얻었다. 성소수자들도 자유로운 성애의 권리가 확립됐고, 서자나 사생아도 적자와 동등한 권리를 얻었다. 이러한 평등은 당시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었고, 훨씬 더 폭넓은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서유럽에서조차 이런 권리들은 다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와 사회주의적 대안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들은 사회민주주의 전략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것이 우리가 개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각각의 개혁과 개혁 운동을 지지하지만, 개혁 운동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민주주의 전략은 지지할 수 없다. 그 전략이 성공할 수 없음을 역사적 경험과 분석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의 진정한 권력이 의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권력은 대기업과 은행의 임원회의 그리고 정부 각료회의, 경찰 간부회의 등에 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부(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부인 경우에는 특히 더)를 길들이기 위해 경제의 목을 조르는 수법을 쓴다. 언론과 사법부가 이를 거들 것이다.

최선의 기대치는 자본주의 호황기에 약간의 개선을 얻어 내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호황을 누릴 때는 ― 가령 선진 산업경제의 경우 제2차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까지, 한국 경제의 경우 1980년대와 90년대 전반부 ― 노동자들이 조금 싸우면 사용자들과 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양보를 얻어 낼 수가 있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바로 이렇게(경제 성장 + 노동자 투쟁) 성취된 것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위기에 시달리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세계경제 차원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그리고 한국경제 차원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위기가 풍토병처럼 빈번히 급습해 시스템에 기능장애를 초래했다. 경제 위기 시기에 기업주들은 노동자를 공격해 이윤을 되찾으려 애쓴다. 지금 같은 시기가 그런 시기인데, 이런 때는 가장 좌파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얼마 안 되는 개혁조차 성취하기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위기 시기의 사회민주주의 실험은 1973년 칠레의 경우처럼 분쇄당하는 비극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흔한 경험은 시리자의 경우처럼 시스템과 협력하라는 압력을 받고 이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흔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신을 지지해 준 운동에 제동을 거는 구실을 한다.

이런 우울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도록 할 방도는 사회의 진정한 권력이 있는 곳, 진정한 권력의 소재지를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시대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개혁은 혁명적 투쟁으로만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들이 개혁을 위한 투쟁에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개혁을 쟁취하기 위한 진정으로 현실적인 전망이 있다. 가령 박근혜의 ‘노동개혁’에 맞서 의회주의자들은 차기 국회에 기대를 거는 게 ‘현실적인’ 것이라고 보지만,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이야말로 현실적이라고 본다. 내놓고 자본주의를 지키면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고 모순되게 행동하는 중도계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거는 게 현실적인가? 아니면, 지배자들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바로 그 목적 자체 ― 즉, 이윤 ― 를 공격하는 게 더 현실적인가?

물론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라고 해서 선거나 의회를 기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까마귀 가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 또는 이솝 우화의 여우처럼 따먹지 못한 포도를 신 포도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가 선거에 참여할 때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돕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정치적·경제적 투쟁이 지상군이라면, 사회주의자 의원들의 역할은 공습을 하는 공군인 것이다.

요컨대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들은 세 가지 영역에서 활동해야 한다. 첫째, 노동조합 영역에서 현장조합원들의 능동성과 투쟁성이 최대한 발현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분투한다. 둘째, 정치적 항의 운동이나 방어 운동을 구축하기 위해 다른 좌파 단체들과 협약을 맺고 공동 활동을 해야 한다. 셋째, 만일 선거와 의회 참여가 역량상 가능하다면 그것을 이용해 반자본주의적 폭로 활동을 수행하고 노동자 투쟁을 선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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