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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제적 처리 항의 농성 현장 취재:
“사망 신고도 못한 우리 아이, 제적 처리로 두 번 죽인 셈”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들을 제적 처리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이 일고 있다. 수십 명의 유가족들이 일방적 제적 처리에 대한 원상 복구와 책임자의 사과를 요구하며 단원고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제적 처리 사실은 5월 9일 한 유가족이 우연히 희생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으려다 밝혀졌다. 이제까지 유가족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학교 측으로부터 일언반구 듣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명예졸업식 운운하던 학교 측이 알고 보니 제적처리를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이는 것이 당연했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발견 못했으면 계속 속이지 않았겠느냐?”라며 “학교 측과 경기도교육청이 우리를 기만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군다나 이날은 단원고 희생학생들이 사용하던 ‘기억교실’을 이전하는 내용의 협약식을 가족협의회와 단원고 당국, 경기도교육청이 체결한 날이었다. 유가족들이 “완전히 속았다”며 협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항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농성장에서 한 어머니는 “정부가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까지 했는데 일방적 제적 처리를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희생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곳이자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억교실’을 유가족들은 존치하길 원해 왔다. 미수습자 학생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면 교실에 한 번 앉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눈물을 머금고 교실을 이전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협약식을 불과 사흘 앞두고 5월 6일 연휴기간을 틈타 단원고 당국이 유가족들 몰래’ 기억교실’을 정리하려고 이사업체를 부른 것이 알려져 유가족들이 밤샘 대기와 항의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0일에는 일부 재학생 학부모들이 ‘기억교실’로 몰래 들어가 교실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책걸상 유출을 저지하려던 유가족들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심지어 물리력을 행사한 사람이 재학생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렇게 우릴 속이는 줄 알았다면 교실 이전 협약도 안 했을 것”

유가족들의 항의가 거세지고 경기지역 교사들이 교육청 앞 농성을 시작하는 등 여론이 들끓자, 이재정 교육감은 11일 오후 공식적으로 ‘학적을 원상복구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경기도 교육청 장학관과 단원고 양동영 교감 등은 해명과 사과를 하겠다며 농성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책임자들은 도통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만을 늘어놓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이토록 무책임한 태도에 유가족들은 “우리 아이들이 그냥 죽었느냐?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차가운 물 속에서 공포에 떨며 죽어갔다. 그걸 생각하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담당자들이 ‘네이스(NEIS)행정시스템상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자 “우리 아이들을 왜 행정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느냐”며 여기저기서 오열했다. 많은 유가족들은 아직 희생학생들의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 했는데 학교 당국과 교육청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행정 처리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유가족들 앞에 모습을 보인 단원고 정광윤 교장의 태도도 다른 책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교장실 안에 숨어 있던 교장을 본지 기자와 한 유가족이 발견해 어쩔 수 없이 교장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이 자리에서 정광윤 교장은 자신은 3월에 부임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유가족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재학생들 사이에서도 ‘기억교실’ 보존 요구가 엄연히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학교 당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교장은 자신의 임무가 “단원고 교육 정상화”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지우기에 동조하며 행정만을 내세우는 책임자들은 유가족들의 말마따나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다.”

진상 규명은 뒷전이고 행정 처리만 앞세워

이날 이재정 교육감이 뒤늦게 학적 원상복구를 공식 약속했지만, 이는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희생학생들의 학적을 유지하는 일이 가능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학교 곳곳에서 유가족들이 이재정 교육감을 규탄하는 팻말들이 붙어 있다. 이재정 교육감이 직접 와서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또한 경기도교육청과 단원고 당국 모두 충분한 협의 없이 ‘기억교실’을 이전하면 안 된다는 유가족들의 요구에 아직까지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희생학생들의 모교가 지난 2년간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기는커녕 거듭해서 기억과 흔적을 지우는 일에 앞장선 것에 유가족들은 울분을 삼키며 참아 왔다. 유가족들은 단원고 당국과 경기도교육청은 이번 사태에 사과하고 관련자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교실 이전 시기와 방법에 대한 분명한 합의와 약속 이행이 있을 때까지 농성을 유지할 계획이다. 지지와 연대도 호소하고 있다.

학교 당국과 교육청의 이런 어이없고 뻔뻔한 결정은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 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총선 패배 이후에도 특조위 활동 보장에 ‘세금 타령’을 하며 사실상 불가 입장을 밝혔다. 특별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농해수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할 뻔했다. 교육부도 전교조가 발행한 《416교과서》 사용을 금지하는 등 세월호 지우기에 앞장서 왔다.

한편, 이날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한 유가족은 이석태 위원장에게 조사 사건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특조위 활동이 6월로 종료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밝히며 3차 청문회가 속히 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의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와 세월호 지우기 시도에 맞서는 목소리가 확대돼 단원고 내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 흔적 지우기 같은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