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복음주의자들의 동성애 혐오 성서와 19세기까지 교회 전통은 동성애를 증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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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총선 기간에 시내 곳곳에서 동성애(그리고 이슬람) 차별을 공약으로 내건 개신교 우익 정당 기독자유당의 현수막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그 당은 20대 총선 비례대표 개표 결과 1석도 얻지 못하고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고소함이 깨소금 맛이다. 정당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불만이지만 말이다.

보수 복음주의자들이 동성애를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건 첫째, 한국 개신교가 직면한 진정한 이슈들인 그 지도자들의 부패와 탐욕, 전횡 등으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려 그걸 감추는 게 주목적일 것이다.

둘째, 이미 역사학적 경전(이하 성서) 비평의 수용 문제로 갈가리 찢긴 데다 동성애자 결혼과 목회자 임직 문제로 더한층 첨예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는 서구 교회를 보면서, 보수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심한 편견을 부추기며 결속을 자극할 수 있는 동성애 문제를 꺼내 드는 것이다.

가령 성서 비평과 신학적 자유주의를 다소간 용인하는 교파 감리회가 지난해 연말 “동성 간의 성관계와 결혼”,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한 교인을 처벌하는 규정을 제정했다. 결국 동성애 문제를 놓고 감리회는 6년 전 방한해 친동성애 강연을 한 급진적 퀴어신학자 테드 제닝스에 맞서, 그를 비난한 이승구 합신대학원 교수 같은 보수주의자들과 오히려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또, 신학적으로는 보수 복음주의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는 저명한 중도 복음주의자 톰 라이트나 릭 워렌도 동성애 문제에서는 팀 켈러 같은 보수 복음주의자와 같은 대열에 선다.

셋째, 개신교 우익의 동성애 공격은 출산율 저하나 가정 위기, 청소년 일탈 등 일부 사회 문제들의 책임을 엉뚱하게 동성애에 돌려 사회 체제와 지배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가족의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다.(사회주의자들은 가족을 반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옹호하려 애써서도 안 된다. 결혼을 하느냐 또는 가정을 갖느냐 여부는 개인의 선택이다.)

이 점에서, 1930년대 초 나치가 동성애를 사회 위기의 속죄양으로 삼은 건 매우 시사적이다. 동유럽의 유대인들은 20세기 초에 대거 독일로 이주했다. 당시 독일의 유대인 혐오가 동유럽보다 덜했기 때문이다. 1918~23년 독일 혁명으로 동성애자들도 고무받아 동성애자 평등권 운동이 주목할 만하게 일어났다. 베를린의 게이바나 게이클럽은 런던과 파리의 동성애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이들의 원정 방문 대상이 됐다. 1920년대 내내 독일은 유대인과 동성애자들에게 낙관과 낭만의 분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1928년부터 사회민주당을 나치당의 2중대쯤으로 규정한 스탈린주의자들의 초좌파적 종파주의로 노동자 운동은 나치의 부상에 공동 대처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1933년 1월 히틀러가 순식간에(겨우 3년 만에) 어부지리로 집권했다. 히틀러는 좌파 정당들과 노동조합, 유대인, 동성애자 등을 박살냈다.

심각한 경제 위기 시기에 나치는 절망에 빠진 중간계급 대중을 동원해, 유대인과 동성애자라는 속죄양을 제물로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경제 위기로 절박해진 지배자들이 위기의 책임을 더 쉽게 모든 노동자 조직들에 전가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30년대 초 독일에서뿐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도 섹슈얼리티는 지배자들이 거짓된 도덕적 논증들을 이용해 대중을 서로 이간시켜 각개격파하려 하는 정치적 이슈가 돼 왔다.

동성애 문제는 요즈음 특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돼 있다. 이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교 각 교파 사이에, 또 교파 내에서 격렬한 언쟁과 정치적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가령 동성애 문제로 아프리카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와 갈등을 빚어 왔고, 이 압력을 받아 올해 초 세계 성공회 연합은 성소수자의 사제 서품을 인정하기로 한 미국 성공회의 회원 자격을 3년간 정지시켰다. 동성애를 둘러싼 찬반 양쪽 다 자기 나름으로 성서에 근거하고 있음을 내세운다.

그렇다면, 성서는 동성애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성서의 동성애 ‘언급’(언급 비슷한 게 있다면)

히브리어 성서(구약성서)

대부분 유대인이었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서를 성스러운 영감을 받아 씌어진 신앙 문서로 여겼다. 따라서 동성애를 비난하는 듯한 구약성서 구절부터 살펴봐야 한다.

단연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창세기 19장의 소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반박하기도 가장 쉽다. 필자는 보수주의자들이 도대체 왜 이 구절을 동성애 비난의 증거 텍스트로 보는지 정말 의아하다. 실제로는 그 구절은 집단강간 미수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 신(神)의 심판은 나그네 행색을 한 신의 두 메신저를 환대하기는커녕 윤간이나 하려 드는 것에 대해 내려진 것이다.

성서 안의 다른 문서들인 에제키엘서(16:49)와 히브리서(13:2)도 소돔의 죄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이방인들을 환대하지 않고 냉대한 것이었다고 진술한다.

물론 유다서는 다르게 주장한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의 도시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음란함에 빠져서 딴 육체를 좇았기 때문에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아서 후세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7절) 여기서 “딴 육체”는, 바로 앞 문장인 6절에 따르면, “천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유다서 저자가 소돔을 비난하는 것은 그곳 남자들이 천사와 성관계를 하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성서에 따르면, 천사와 인간은 종이 다르다. 그러므로 성관계로 그 구분을 흐리는 것은 죄이다. 즉, 동성애가 아니라 종이 다른 천사와의 성관계가 문제 된 것이다. 이게 왜 유다 사회에서 ‘죄’로 여겨졌는지는 아래에서 레위기를 다루며 살펴보기로 하자.

△“예수님은 혐오가 싫다 하셨다” 2015년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퀴어퍼레이드’). ⓒ사진 조승진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레위기의 두 구절을 다루기는 꽤 까다롭다. 먼저 그 구절들을 살펴보자.

“여자와 자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들어도 안 된다. 그것은 망측한 짓이다.”(18:22)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 죗값으로 죽는 것이다.”(20:13)

레위기가 어떤 이유에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지 그 논리를 쫓아가 보자. 레위기는 기원전 7세기 말부터 기원전 4세기 중엽까지 기간에(헬레니즘 시대 도래 전임) 씌어진 문서인데, 고대 유대교의 제의(祭儀) 절차들을 꼼꼼하게 규정하고 있다. 가령 낙타와 토끼, 오소리, ‘일부’(전체는 아니다) 귀뚜라미는 불결하다고 한다. 소고기와 양고기는 먹어도 되지만, 돼지고기는 안 된다. 새우나 굴을 먹어도 안 된다. … 뭐, 이런 식이다.

무의미하거나 불합리해 자의적인 듯한 이 규정들은 구조주의 사회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접근법을 원용하면 그 진의를 이해할 수 있다.i 그녀에 따르면, 레위기의 금기 사항들은 결코 자의적이지 않고 오히려 질서를 추구한다. 고대 중동 사람들은 만물에는 제 자리가 있고 따라서 만물에 제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이 거룩하므로 사물과 인간도 거룩한/순수한 것과 혐오스런/불순한 것을 예리하게 구별해야 하고, 순수함을 위한 규칙과 혐오 대상을 기피하기 위한 규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사회적 · 도덕적 혼란스러움을 피할 수 있다:

“너희는 내가 정해 주는 이 규정을 지켜야 한다. 네 가축 가운데서 종류가 다른 것끼리 교미시키지 마라. 네 밭에 다른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마라. 종류가 다른 실을 섞어 짠 옷을 네 몸에 걸치지도 마라.”(레위 19:19)

‘정결하지 못한’ 동물은 신이 부여한 범주를 따르지 않은 것들이었다. 갑각류는 진짜 어류가 갖춰야 할 필요조건들(비늘과 지느러미)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불허(不許)됐다. 소와 달리 돼지가 불허된 건 굽이 두 쪽으로 갈라지긴 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귀뚜라미가 뛴다면 깨끗하고, 긴다면 부정하다. 메리 더글라스는 위트 있게 말한다. “펭귄이 근동에 살았더라면 날개가 없는 새라고 해서 불결하다고 취급되었을 것이다.”

성적 ‘변칙’도 불순을 이유로 금기시됐는데, 수간(獸姦)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는다는 이유로 불허됐고, 동성간 성행위는 남녀 구분을 흐린다는 이유로 불허됐다. 필자가 방금 ‘변칙’이라고 옮긴 히브리어 낱말(‘테브헬’)은 원래 ‘뒤섞임’이라는 뜻이다. 이 낱말을 국역 성서나 영역 성서에서 ‘변태’로 번역한 것은 (편견에 의한) 오역이다.

태동기의 유대교는 거룩과 순수, 정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이처럼 제의 절차의 모호함이나 혼합을 용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용인했다가는 신이 축복을 철회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압도했다. 신이 축복을 철회하면 번영은 완전히 사라지고 역병과 불모, 혼란, 재앙 등 위험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결국 땅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레위기가 씌어지던 시대에 비해 후대인 헬레니즘 시대에는 동성간 성행위 금지가 다소 이완됐던 듯하다. 다윗과 요나단의 러브 스토리를 보면 말이다(사무엘상 18:1, 사무엘하 1:26). 이 설화가 러브 스토리라는 점은 수전 애커먼, 마티 니시넨 등의 학자들이 길가메시 서사시와의 비교 연구 등을 통해 입증했다.

물론 둘이 성행위를 했다는 언급은 성서에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진보적 고고학자들이 밝혔듯이, 다윗은 십중팔구 실존 인물이 아니다.ii(요나단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요점은 성관념도 다른 관념처럼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점이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또한 (레위기의 세계관과 달리) 경계를 넘어선 경이로운 존재에 관한 관념이 출현한다. 가령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인 천사, 동정녀인 동시에 어머니인 마리아, 신인 동시에 인간인 예수, 로고스인 동시에 성육신한 그리스도 등이 그들이다. 그런 존재는 신이 행한 기적으로 여겨졌다. 이를 구원의 새 시대가 열린 것으로 본 바울로는 이렇게 선언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3:28)

그리스도가 신의 통치(‘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알렸고, 그 증거는 모든 금기적 준별이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율법(레위기의 율법들을 비롯해)을 폐지했다는 바울로 주장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최상의 구약성서학자 월터 브루거만 컬럼비아신학대학원 교수가 동성애 문제를 둘러싸고 신학 논쟁을 하는 게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신의 통치는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이미 시작됐고, 그 안에서는 차별이 없는데, 몇몇 문구에 집착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브루거만은 동성애 혐오를 나타내는 자들이 “구질서를 지키는 대리전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언론인 크리스타 티페트와의 인터뷰).

그런데 바울로는 신약성서의 다른 곳들에서 얼핏 보아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도 한다. 과연 그는 정말 그랬을까?

그리스어 성서(신약성서)

바울로의 저술은 물론이지만 신약성서 전체에도 동성애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없다. 물론 국역이나 영역 신약성서에는 동성애를 비난하는 구절들이 있다. 가령 바울로는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Ⅰ고린토 6:9)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죄들을 열거하는데, 거기에 “동성애”(공동번역: “남색”, 가톨릭 성경: “비역”)를 포함시키고 있다. 신약성서의 다른 구절들(로마서 1:27과 Ⅰ디모테오 1:10)에도 사용된 그리스어 낱말 ‘아르세노코이타이(αρσενοκο?ται)’는 마치 동성간 성행위를 비난하는 말인 양 번역된다.

하지만 그 낱말은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의 문서에서 하도 드물게 발견돼, 그 의미가 무언지 학자들은 전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로 자신이 그 말을 만든 것으로 추측한다. 어떤 학자들은 그 낱말이 Ⅰ고린토 6:9와 Ⅰ디모테오 1:10에서는 특정 형태의 남성간 성매매를 가리키고, 로마서 1:27에서는 본의 아니게(또는 본성과 다르게) 다른 남성과 섹스를 하게 되는 남성을 가리킨다고 지적한다. 성매매든, 본의(또는 본성)가 아닌 일이든 오늘날 우리가 ‘(성적)지향’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제의 그리스어 낱말을 동성애와 결부시켜 번역하는 것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 ‘동성애’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 낱말이 없다.(신약성서는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어로 씌어졌다.) 따라서 ‘동성애’나 ‘남색’이나 ‘비역’이라는 번역어는 번역자의 추측에 따른 것이다. 영역자도 마찬가지고, 다른 현대어 번역자도 마찬가지다.

△ 연회에서 한 소년이 성인 남성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 기원전 460 ∼ 450년경 그려진 그림. 이 시기 그리스 지배계급 성인 남성은 사춘기 소년과 성행위 하는 일이 꽤 있었다.

동성애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낱말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에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없었다. 성적 지향(같은 성의 사람에게 끌리느냐 아니면 다른 성의 사람에게 끌리느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적 지향이라는 개념은 현대적인(19세기 중엽 이후!) 개념이다. 성적 지향이나 섹슈얼리티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 사람들에게는 뜻이 전혀 안 통해, 아예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동성간 성행위 · 성교는 그 세계에도 당연히 있었고, 그 세계 사람들이 자기가 같은 성의 사람에게 끌리는지 아니면 다른 성의 사람에게 끌리는지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개념화하지 않았다. 어떤 언어에 아예 어떤 개념이 없는 경우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고모’, ‘이모’, ‘숙모’, ‘외숙모’는 모두 영어로 ‘aunt’로 번역된다. 그래서 어떤 영어 사용자가 그냥 (아무 설명 없이) ‘aunt’ 하면, 우리는 그게 고모 · 이모 · 숙모 · 외숙모 가운데 누굴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영어 사용자에게는 이 네 종류의 친척 여성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영어의 ‘glade’라는 낱말은 숲 속의 (작은) 빈터를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말에는 같은 것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다. 그런 공간을 특별히 개념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에서 사람들은 섹스를 성행위나 성교로만 이해했지, 성적 지향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성적 지향을 개념화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19세기 중엽에야 비로소 동성을 향한 끌림을 차별하면서 사람들은 성적 지향을 개념화해야 했다.) 따라서 동성애 개념도 없었다. ‘이성애’라는 개념도 없었다. 이렇게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에 동성애 개념이 없었는데, 어떻게 신약성서가 동성애를 비난했겠는가.

현대어 번역을 동성애와 결부시키는 데 뒤따르는 둘째 난점은,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 비춰 본다면 위 성서 구절들이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에서 동성간 성행위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반응이 다소 달랐다. 기원전 5~4세기 그리스의 지배계급 성인 남성은 사춘기 소년과 성행위를 하는 일이 꽤 있었다. 그는 그 보답으로 소년을 사교계에 소개시켰다.(사교계는 정계로 들어가는 등용문이다.) 이런 일은 비난받지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관습이었다. 그러나 다른 시대 다른 지역 사람들 가운데는 이런 관습을 경멸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로마제국 사회의 사람들은 대부분 부적절한 성행위와 적절한 성행위를 구분했다. 그들의 구분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사는 21세기 우리와 매우 달랐다. 성행위 방식에 관한 그들의 적절/부적절 구분은 지배/종속 개념에 의해 좌우됐다. 성행위에서도 권력자가 군림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여성이 성관계에서 주도권을 행사한다면 (여성 차별은 있었기에) 부적절한 일로 여겨졌다. 또, 남성은 자유로이 자기 노예와 섹스를 할 수 있었다.

남자와 남자가 섹스를 할 때도 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성기를 삽입하는 쪽이 된다면, 적절한 성행위를 한 것이다. 반면 성인 남성이 사춘기 소년과 성교할 때 성기가 삽입되는 쪽이 된다면, 부적절한 성행위를 한 것이다. 지배하는 자가 지배하는 자답지 못하게, 또 여성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역시 여성 차별은 있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어쨌든, 동성간 ‘부적절한’ 방식의 성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면, 비난받는 쪽은 그 부적절한 행위를 한 쪽만이었다. 동성간 성행위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진 않았다. 오늘날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결국 신약성서를 당대의 맥락에서 떼어 내어 오늘날의 섹슈얼리티 관념에 비추어 해석하고, 또 그걸 도덕 규범으로 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엥겔스 말대로 섹슈얼리티는 역사를 통해 변천하는(즉,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행위에 대한 교회의 태도

△“하나님 앞에 동성애는 죄악”? 성서를 제멋대로 해석한 기독교 우익들. ⓒ사진 이윤선

△2014년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퀴어퍼레이드’)을 방해하러 온 기독교 우익 앞에서 보란듯이 키스하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 ⓒ사진 이윤선

지금까지 우리는 실제로 동성간 성관계를 죄로 규정하는 구약성서 구절들(레위기에 규정된 제의 절차)과 마치 동성애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신약성서 구절들을 살펴봤다. 전자의 경우 후대에 바울로에 의해 무효 선언이 내려졌음도 지적했다.

그러나 최초의 교회 안에는 구약성서의 율법을 둘러싸고 바울로의 율법 상대화 경향에 반대해 율법 존중 경향이 존재했다. 후자의 대변인은 베드로였는데, 바울로는 안티오크(오늘날 터키 남부의 안타키아)에서 식사 관련 율법을 놓고 베드로와 정면 충돌한다(갈라디아서 2:11-14).

△율법 상대화 경향의 바울로(왼쪽)와 율법 존중 경향의 베드로(오른쪽). 

각각의 경향 안에는 여러 분파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때로는 같은 지역에서 활동을 하는 바람에 가령 갈라디아 지방에 선교차 체류 중이던 바울로는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경쟁자들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다양성은 서기 2세기에는 더욱 확대된다.

그런데 율법 존중파들만이 동성간 성행위를 죄로 규정한 게 아니라, 율법 상대화 분파들 가운데도 동성간 성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분파들이 생겨났다. 앞서 필자가 지적했듯이 고대 그리스어 사용 세계에서는 지역(또, 시대)에 따라 동성간 성관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곳들이 있었으므로, 율법 상대화 분파들 가운데도 지역 정서의 영향을 받는 그룹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서기 3세기 초 이후로는 로마제국 사회의 위기와 노예 공급의 감소에 대응해 교부들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요안네스 크리소스토모스,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성행위는 출산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지향할 때만 ‘자연법’(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그 외의 목적을 위한 성행위는 죄가 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동성간 성행위가 정죄됐다. 그러나 이를 오늘날의 동성애 혐오와 같은 걸로 봐서는 안 된다. 가령 강력하고 불합리한 두려움과 증오까지 표현하진 않았다.

교회의 ‘자연법’ 논증은 오늘날까지도 성소수자를 천대하는 논거가 되고 있다. 자연법 논증을 사용하지 않는 보수적 논자들도 성행위에는 즐거움 외의 다른 정당성이 필요하다는 함축만큼은 버리지 않고 있다.

또한 시공을 초월한 고정 불변의 도덕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은 성서에 계시돼 있다는 생각도 이들 완고한 편견쟁이들의 주장 안에 함축돼 있다. 이런 생각은 세속화와 상대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그들에게 안전감과 명확함을 제공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 상층부의 성관념 편협화는 로마 지배계급의 성행위 규제에 조응해 진행됐다. 그러나 동성의 인간을 향한 성적 지향이라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동성애가 특별히 억압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일은 19세기 중엽에 들어서야 비로소 발생했다.

중세에는 성행위 규제가 상당히 완화됐다. 가령 동성간 성행위자는 이성간 혼외정사를 한 사람보다 참회 중에 덜 어려운 고행으로 속죄했다. 또한 수도원과 수녀원에서 동성 수도자들 사이에 애정과 성행위가 널리 퍼져 있었다. 정죄하는 분위기도 별로 없었다.

존 보스웰은 10년 연구의 결과로 역사 분야 미국도서상(ABA)을 받은 저작에서 교회가 보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했다는 상식과 달리, 여러 세기에 걸쳐 교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동성간의 연애를 인정했음을 보여 준다.iii

또한 보스웰은 한때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가 동성간의 결합을 이성간 결혼식과 매우 비슷한 의식을 통해 허가해 줬을 뿐 아니라 심지어 축성해 주기까지 해 줬음을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입증한다.iv

그러나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하던 위기 시대에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출산이 목적이 아닌 성행위는 다시 억압당했다. 그러나 이때도 동성애가 특히 더 억압받은 것은 아니었다. 마녀사냥이 횡행했지만 표적은 동성간 성행위자가 아니라 여성이었다.

맺음말

19세기 전반부까지도 사람을 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으로 분류하는 일은 없었다. 남성간 성교는 죄로 단죄됐지만, 혼외정사를 한 것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지,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가혹한 처벌을 받아 교수형이나 화형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는 드물었다. 기소도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흔했다. 프랑스 혁명 직후인 1804년에는 동성간 성교가 합법화됐다.

그러나 19세기 중엽쯤 소위 ‘정상’이 아닌 성관계는 ‘변태’ 취급을 받게 된다. 자본가들이 한 집에서 몇 가구가 살기도 하는 노동계급의 성생활을 보며 끔찍하게 여겼고, 이를 사회 혼란의 징후로 여겼기 때문이다. 가족(가정) 정상화가 부르주아지의 핵심 콘셉트가 돼 노동계급에 강요됐다. 가족 바깥의 섹슈얼리티는 맹비난을 받았고, 흔히 처벌도 뒤따랐다. 1885년 남성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제정됐다.

이 19세기 후반부에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 개념이 확립된다. 이 현상은 자본가들의 가족 수호라는 맥락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자본가들은 아동과 노령자, 병약자를 개별 가정이 돌보도록 함으로써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가족의 가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가 자본가들의 지배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있다.

오늘날까지 동성애 차별과 자본주의 가족제도 존속의 이러한 본질적인 관련성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변한 게 있는데, 바로 성소수자들이 싸워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대중의 인식이 꽤 개선됐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성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성애자였던 헨리 나우웬(1932-96)의 영성 저술도 매우 많이 읽힌다. 하지만 동성애가 죄라는 중도 복음주의자들의 어정쩡한 인식으로는 사실상 이렇게 말하는 것에 불과한 셈이다: ‘난 널 사랑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넌 지옥에 갈 거야.’

이 절반의 의식 향상은 경제 · 사회 · 정치 위기가 지속되면서 그나마 결코 확고한 것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소수자의 해방과 섹슈얼리티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 성소수자들은 계속 싸워야 하고, 이들과 사회주의자들(이성애자이든 성소수자이든)은 함께, 자본주의 종식까지 싸워야 한다. 해방이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후주

i 메리 더글라스, ≪순수와 위험 ― 오염과 금기 개념의 분석≫, 현대미학사, 1997, 77~99쪽.

ii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 닐 애셔 실버먼,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오성환 역, 까치, 2002, 153-203쪽.

iii John Boswell, Christianity, Social Tolerance, and Homosexuality: Gay People in Western Europe from the Beginning of the Christian Era to the Fourteenth Centur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0.

iv John Boswell, Same-Sex Unions in Premodern Europe, Villard Books, 1994.

추천 도서(출판 연도순)

다니엘 헬미니악,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김강일 역, 해울, 2003. 가톨릭 성소수자.

잭 로저스, ≪예수, 성경, 동성애≫, 조경희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 개신교 성소수자.

해나 디, ≪무지개 속 적색 ―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이나라 역, 책갈피, 2014. 마르크스주의 성소수자. LGBT의 해방을 모든 섹슈얼리티의 해방 그리고 인간 해방 자체와 연결시키는 게 특징이다.

번역자 이나라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운영회원이다. 그는 “이상향이 없는 세계 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가엽게도 와일드(1854-1900)는 동성간 성행위로 무려 2년의 징역형을 살았다.

청년·학생 모여라! 분노의 촛불 세대를 위한 토론 광장 | 4월 29일(토) ~ 4월 30일(일) |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신세계관(연세대세브란스병원 맞은편) | 주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청년·학생 모여라! 분노의 촛불 세대를 위한 토론 광장 | 4월 29일(토) ~ 4월 30일(일) |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신세계관(연세대세브란스병원 맞은편) | 주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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