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남도학숙 직장 내 성희롱 사건:
공공 기관 내 성희롱과 불이익 조치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르노삼성자동차 여성 노동자가 제기한 성희롱 소송 2심 결과는 성희롱을 문제제기한 피해자에게 인사상 불이익 조처를 한 회사 측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사측은 그 후에도 피해자의 인사고과를 최하위 등급으로 매기는 등 불이익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성희롱을 공공연히 문제제기하면 사측의 괴롭힘과 해고 위협에 직면하곤 한다. 이것은 성희롱과 더불어 여성 노동자들을 크나큰 고통에 빠뜨린다. 성희롱 문제제기에 따른 불이익 조치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1], 이는 현실에서 종종 무시된다. 가해자와 그 동조자가 회사의 관리자이거나 기업주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공동 운영하는 장학시설인 남도학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남도학숙은 광주·전남 출신의 서울 소재대학 재학생 8백50여 명이 생활하는 기숙사이고, 공공 기관의 성격이 있는 공직유관단체[2]다. 남도학숙 김완기 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과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14년 4월, 장학부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여성 노동자 A씨는 직속 상사인 장학부장의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국가인권위의 결정문에 담긴 A씨의 주장을 재구성하면, 장학부장은 일을 가르쳐 준다는 이유로 몸을 밀착시켜 팔을 A씨의 가슴에 닿게 했다. 참다 못한 A씨가 “좀 떨어져서 알려주시면 안 되겠냐”고 했으나, “네가 그러니까 사회생활 하기 힘들다”는 반응만 돌아왔다. 장학부장은 핫팩을 들고 있는 A씨의 가슴 부위를 쳐다보며 “가슴에 꼭 품고 다녀라. 그래야 더 따뜻하다”는 성희롱 발언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던 A씨를 원장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했고, 원장이나 사무처장의 술 시중을 여러 차례 강요했다. 술 시중 강요를 참다 못한 A씨가 장학부장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제가 술집 여자입니까?”라고 항의하자, 장학부장은 “그렇게 행실을 하면 술집 여자지”라며 도리어 A씨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는 투로 A씨를 모욕했다.

A씨는 국가인권위 진정 이전에 먼저 남도학숙 핵심 관리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호소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 결정문에 담긴 사측의 주장을 보더라도, 사측은 징계 절차 등을 밟지는 않은 채 장학부장과 화해하라고 요구했다.

국가인권위 진정 뒤 사측의 불이익 조치와 괴롭힘은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A씨는 성희롱 피해에 관해 원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보기 싫으니까 그냥 나가라. XX하고 자빠졌네, 이런 형편없을 것을 봤나”라는 말을 들었다(〈중앙일보〉 2016년 4월 15일치).

광주시 감사 결과에 담긴 내용을 재구성해 보면, 사측은 성희롱 가해 혐의자를 격리하기는커녕 되레 피해를 호소한 A씨를 독방에 격리시켰다. 이 격리된 별실에는 외부전화가 차단돼 있었다.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이 독방은 지나가는 학생들과 직원들이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 마치 “유리감옥” 같았다.

피해자가 이런 괴롭힘을 당하는 가운데 올해 3월 국가인권위는 세 가지 성희롱 피해 호소 중 신체 접촉 건을 제외한 나머지 두 건에 대해 성희롱이 맞다고 결정했다(신체 접촉 건은 물적 증거가 부족해, A씨의 주장을 인정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국가인권위는 결정했다).

국가인권위 결정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신체 접촉 관련 성희롱 혐의는 여전히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성희롱 문제제기 후 지속된 사측의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조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측은 불이익 조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김완기 원장이 지난해 11월 전남도의회 안전행정환경위원회에서 열린 행정사무감사에서 한 막말을 보면 사측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김 원장은 “성희롱이 아닌 하극상이다 … [가해자가] 순화되지 않은 표현을 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지만, 진정을 해 학숙 명예를 훼손하는 건 있을 수 없다 … 인성이 불량한 여자가 잘못 들어온 케이스”라고 말했다(〈중앙일보〉 2016년 4월 15일치). 성희롱 진정을 “하극상”과 “인성 불량”으로 보는 사측이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했을 리 없어 보이고, “순화되지 않은” 폭언을 사소하게 치부하는 인식도 그동안 피해자가 어떤 취급을 당했을지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국가인권위 결정문에는 사측의 불이익 조치에 대한 내용은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얼마 전 나온 광주시 감사 결과도 불이익 조치를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외부전화도 차단된 별실에 격리됐는데, 피해자가 이런 조치에 “만족감을 표현”했다는 감사 결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광주시가 과연 양측의 주장을 공정하게 검토한 것인지, 이 감사가 누구를 위한 감사인지 의문을 자아낸다.

남도학숙 원장이 전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권력자라는 점, 남도학숙이 광주시가 운영하는 기관이라는 점,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내년 서울 제2남도학숙 건립(총 공사비가 4백98억 원으로 잠정 확정)을 앞두고 성희롱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성희롱 문제 해결에 어려운 조건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사측은 국가인권위가 ‘성희롱이 맞다’고 결정한 뒤에야 올해 3월 말 가해자를 직위해제하고 1개월 감봉했다. 피해자가 "좀 떨어져서 알려주시면 안 되겠냐"고 문제제기한 지 무려 1년 6개월 만이다. 그러나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 감사 촉구 성명서에서 비판했듯이, 사측의 징계 수준은 너무 경미하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사측의 불이익 조치 혐의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 있는 조처가 뒤따르지 않고 있다.

한편, 남도학숙 학생들의 SNS 익명게시판을 보면, 언론 보도를 보고 불의를 참지 못한 남도학숙 학생들이 학숙 정문에서 성희롱 사실과 학숙 측의 부당한 대처를 알리는 리플릿을 나눠 줬다는 이유로 최근 퇴사 경고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차별의 한 형태이며, 노동조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다.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이 노동자로 진출하면서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문제제기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사건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특히, 이 사건을 통해 공공기관 내 성희롱과 불이익 조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선례가 생긴다면 직장 내 성희롱 반대 운동에 중요한 성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4조제2항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2] 행안부가 정부 또는 지자체의 재정지원규모, 임원선임 방법 등을 고려해 지정하는 기관.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