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도 쓸모 있겠지만 사회주의당은 훨씬 쓸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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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다음 연결 기사를 읽기 바랍니다 :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과 진보대통합당 안에 대해

20세기 노동운동을 지배한 조류는 노동자 정당이 선거로 국가 공직들을 장악해 그 집행권을 지렛대로 삼아 개혁들을 추진하고자 했던 조류였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하 사회당)과 공산당이 이런 조류를 대표했다. 특히, 사회당들은 1980년대 이후 국가 개입을 더 줄이고 시장경제를 더 늘리는 정책을 시행해 왔고, 더는 사회주의라는 말도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회당과 공산당에게 사회주의는 의원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협력해서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것을 뜻할 뿐이다. 때때로 대규모 거리 시위가 호소되기도 하고, 심지어 시한부의 상징적 파업이 선거를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건 끔찍이도 두려워한다. 미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핼 드레이퍼는 이런 사회주의를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라고 부르면서, 마르크스와 레닌·트로츠키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대조했다.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평소에 수동적인 채로 남아 있다가 몇 년마다 한 번씩 사회당이나 공산당에 투표하고 이따금 거리 집회에 나오는 것 정도가 요구된다. 파업은 한 사업장이나 부문에 국한되고, 사실 어느 수위를 넘지 않는 한 신경쓰지도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혁명을 지지한다. 그래서 혁명기에 직장과 노동자 거주지역에서 선출된 대표자들로 이뤄진 노동자 지방정부들이 창설되는 것을 지지한다. 그 노동자 지방정부들은 기존의 자본주의 중앙정부와 실세를 놓고 겨루게 될 것이다.

그런 전면적인 상황은 마치 무에서 유가 창조되고 메시아가 도래하듯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부분적인 투쟁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일반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 ‘연결’과 ‘보편화’ 과정은 결코 자동적이지 않다. 인간 주체의 행위가 개입돼야 한다. 즉,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의 도래를 위한 지난한 정치 운동과 조직을 평상시에 건설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므로 혁명적 정당(이하 사회주의당)과 그 당원들은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다. 사회주의당은 지지자들에게 노동계급 투쟁의 범위를 확대하고 투쟁 수위를 높이기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하라고 요구한다. 당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헌신성과 적극성을 요구한다. 당원들이 최소한의 당비나 내고 정치 활동은 거의 안 하는 채로 살아가지 말라고 말이다.

노동계급 의식의 불균등함

사회주의당과 달리 개혁주의 정당은 국가를 중립적 기구로 여긴다. 그래서 자기가 그걸 인수해 운영하면 노동자 등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촉망받으며 등장한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자기 지지자들을 배신하고 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이 반증하지만 이런 착각은 일찍이 1871년 마르크스가 파리 코뮌을 찬양하면서 논박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경찰, 군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는 자본가 계급이 자기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다. 또한 자본가 계급의 정치조직들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정치조직이다.

이 지배계급 정치조직과 투쟁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사회주의당을 건설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물론 ‘자율적 사회운동’론자들의 멋진 상상처럼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두 단결해, 국가를 있으나 마나 한 걸로 만드는 상황이 가능하다면, 굳이 사회주의당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발적 단결은 기껏해야 일시적일 뿐,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차별받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의식도 불균등하기 때문이다.

대중적 노동운동이 전개되면 노동자들 가운데도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특히, 기업주들과 정부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이런 노동자들은 좀 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소수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류 언론이 하는 주장들을 대부분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그래도 가장 효율적인 자원 분배 체제이고, 평등은 불가능하고,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노동운동과 관련된 지배자들의 거짓말을 대부분 받아들인다. 가령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단결할 수 없다는 등의 거짓말들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 두 상반된 세계관 가운데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배계급의 일부 견해들은 거부하고 다른 견해들은 받아들인다. 그들은 기존 사회의 근간은 받아들이면서도 그 최악의 결과들은 완화하고 싶어 한다.

사회주의당은 바로 이러한 불균등한 노동자 의식 때문에 필요하다. 사회주의당이 혁명적 정당이라 해서 혁명적 시기가 도래했을 때야 비로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 투쟁이 훨씬 낮은 수위에 머물러 있을 때도 사회주의자들이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그들 자신의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들 가운데 선진적인 소수가 평소에 조직돼 있지 않으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만연한 뒤범벅된 생각들과 대결할 수 없다. 사회주의당은 노동조합 안에서, 정치운동 속에서, 작업장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의견이나 전술을 주장할 수 있게 해 주어, 우리가 더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노동계급 속의 사회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된 개입은 계급투쟁 결과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사진 이미진

파리 코뮌의 경험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다 1871년 파리코뮌 참가자들이 놓은 바리케이드. 

노동자 계급 의식의 불균등함 때문에 당은 계급을 대표할 수 없다

선진 노동자의 정당인 사회주의당과 달리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을 고스란히 정당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평균적인 대다수 노동자들을 대변하려 한다.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을 대표하려 한다.

그러한 방식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는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이나 공산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정당들은 노동계급의 평균적인 의식을 준거로 삼아 노동계급을 대표하려 하고, 결국 지배자들의 견해들을 대부분 거부해 온 노동자들뿐 아니라 그 견해들을 대부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도 대표한다. 그래서 언제나 사회당과 공산당은, 인종차별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난민을 옹호하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인종차별을 용인하고 난민을 배격하는 노동자들도 포용했다.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인종(특히 무슬림 이민자) 차별과 난민 문제인데도 말이다.

노동계급을 대표해 그 불균등한 의식을 구현하므로 진보정당은 노동자들의 투쟁성과 능동성을 대표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들의 수동성을 대표하게 된다. 덕분에 진보정당은 대규모 조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로 그런 수동성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추수주의’, 즉 노동운동 내의 통념에 영합하고 그 꽁무니를 좇게 될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당과 그 당원은 능동적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와 단절함

사회주의당은 진보정당과 달리 노동조합 지도자들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착취 조건을 놓고 협상하는 노동운동 내 특수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노조 운동의 지도층이라는 동류의식에 철저한 데다 투쟁보다 협상을 우선시하므로 노동운동 내 보수층을 이룬다. 진보정당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본질적으로 개혁주의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는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의 분리로 나타난다. 노동계 지도자들은 정/경 역할분담을 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이 먹고사는 문제들에 집중하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개혁입법을 위한 제도정치권 내 투쟁에 집중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배계급 자신은 둘을 분리시키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두 투쟁이 별개라는 생각은 노동계급의 경제적 능력(특히 파업을 통해 발휘되는)을 정치 문제 해결에 사용할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우리 나라의 경우, 노동계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는 민중주의적 전통과 융합된다. 민중주의는 반동적인 극소수 엘리트층에 대항해 나머지 국민(“민중”)이 계급을 초월해 단결하자는 사상이다. 재벌개혁과 사회연대전략을 추구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자본주의 야당과 연립정부를 세울 목적으로 전략적 연대를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사례다.

진보정당 추진자들은 민중주의를 받아들인다. 이와 달리 사회주의당은 결코 어떤 시기에도 계급 분단을 흐리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친중간계급적 사상에 맞서 의식적인 투쟁을 한다.

이를 위해 사회주의당은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를 알리고 그 교훈을 습득하도록 한다. 혁명적 전통과 교훈,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트로츠키는 이를 두고 “계급의 기억”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운동사는 거의 다 숨겨져 있다. 학교와 미디어에서는 이런 것을 배울 수 없다. 특히 노동자들의 승리에 대해서는 그렇다. 배울 때조차도 왜곡되게 배운다.

사회주의당의 활동 방법은 민주집중제다

위에서 우리는 사회주의당의 노동자 당원들은 최소 당비나 내고 활동은 거의 안 하는 진보정당 노동자 당원들과 다르다고 했다. 그저 정치 토론을 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정치 활동을 하는, 말 그대로 활동가들은 자기들의 집단적 결정이 실천에서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민주집중제라는 방법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

△노동자를 조직하는 신문 노동자 신문은 운동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의견이나 전술을 주장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이미진

민주집중이라는 말은 모순된 용어처럼 들린다. 그리고 민주집중제를 채택하면 반드시 서열과 엘리트주의를 수반한다는 주장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집중은 리더십, 즉 ‘지도’를 뜻하는 말인데, 진정한 사회주의적 지도는 자본주의에서 통용되는 엘리트적 지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주의당이 말하는 지도는 당원들이 당 안팎에서 자신의 견해와 전술을 위해 분투하는 것을 말한다. 즉,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평소에 받아들이는 지배계급의 견해들을 논박하고, 크고 작은 투쟁들이 어떻게 전진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의견을 내놓고 능동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리더십은 민주적 토론의 논리적 결과다. 당 내에서 쟁점들이 토의되고 때로는 그것을 둘러싼 논쟁이 이뤄진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나면 누구나, 또 논쟁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든, 그 결정에 승복하고 그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

반면 진보정당은 민주와 집중이 완전히 따로 논다. 진보정당에서도 토론과 논쟁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토론과 논쟁의 결과는 당원 개인들에게 아무런 구속력도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없고 각자가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의 의원들과 관료들이 진정한 권한을 갖게 된다.

짧은 맺음말

노동계급 투쟁은 여전히 사회의 진보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노동계급 투쟁은 사회주의당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조직된 개입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노동계급 속에 뿌리내린 사회주의당은 그러한 개입과 궁극적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철저한 사회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당의 일부여야 하는 이유다.

사회주의 정당의 통상적인 이미지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왜곡돼 왔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주의당이 여전히 가장 민주적이고, 노동자들에게 가장 활짝 열려 있고,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수단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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