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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족 제도, 동성애 억압

우익들은 ‘동성애=에이즈’라는 케케묵은 편견을 여전히 조장하고 있다(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HIV/에이즈 감염). 얼마 전 부산대 학생들이 강력히 항의한 부산대 동성애 혐오 교수의 강연 제목도 ‘청년층의 에이즈 감염 급증과 동성애의 밀접한 연관성’이었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는 1979년 미국에서 에이즈 환자가 최초로 발견된 이후로 예방을 위한 대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에이즈가 ‘게이 돌림병’이라며 도덕적 공황만 부추겼다. 한국의 우익들이 노리는 바도 같다.

그러나 에이즈 감염자는 아프리카 대륙 사하라 이남 지역에 가장 많다. 에이즈 발병 지역이 제 3세계에 집중돼 있는 것은 병의 가장 큰 원인이 끔찍한 가난에 있음을 보여 준다. 우익들의 논리라면 오히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유럽 지역이 에이즈 감염자 수가 훨씬 많아야 하지 않을까?

에이즈는 자신의 성 정체성이 무엇이든, 감염인과 콘돔 없이 성관계를 맺으면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익들이 공포심을 부추기려 사용하는 에이즈의 이미지와 달리, 오늘날에는 의약품의 발달로 에이즈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만성질환으로 취급되고 있다.

요새 우익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것을 매우 강조한다. 동성애자 유전자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동성애는 후천적이고 선택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3월 한 대학 강사는 “동성애는 감기처럼 가벼운 질병”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이런 관점은 이성애가 정상인데, 동성애는 약물 중독이나 이상 행동처럼 병리적인 것, 정상에서 일탈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요새 우익들은 ‘탈(脫)동성애’를 돕기 위한 ‘전환치료’ 같은 사이비 치료를 주장하며 성소수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성적 지향을 교정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탈동성애’, ‘전환치료’, 그리고 끔찍하게도 레즈비언들을 상대로 한 ‘교정 강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질병 부문에서 동성애를 삭제했듯이, 동성애는 정상 상태에서의 일탈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탈동성애’ 단체의 활동가들이 다시 동성애자로 ‘돌아오고’ 전환치료가 효과가 없다고 시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2013년엔 대표적인 ‘탈동성애’ 단체였던 ‘엑소더스’가 자신들의 행적을 공개 사과하고 해체하는 일도 있었다.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애 중 하나다. 뒤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동성 간 애정에 대해 역사적, 지역적으로 태도가 매우 달랐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성적 지향은 우리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 단체를 세웠던 독일 사민당의 마그누스 히르슈펠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 다르게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의 성애가 유전자 같은 고정된 생물학적 사실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역사적으로 다양한 성적 관계가 널리 존재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자본주의에서 만들어진 동성애자, 이성애자 구분은 상당히 구체적 사례들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성애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히려 스펙트럼에 비유하는 게 더 알맞다.

예컨대, 결혼한 남성이고 부인과 섹스도 하고 아이도 낳았는데 자기 자신을 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혹은 때때로 하루 밤 섹스할 남성을 찾아 다니지만 그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정체화하는 남성도 있다. 어쨌든, 이성애자, 동성애자라는 이분법적 카테고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성적 경험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2014년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해 동성애 혐오 팻말을 들고 있는 우익 ⓒ이윤선

역사 국면마다 바뀌어 온 동성 간 애정에 대한 태도

역사적으로도 인간의 성애는 다양했고, 성에 대한 태도도 오늘날과 사뭇 달랐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남성 간 동성애는 유명하다. 성인 남성과 소년 사이의 성관계는 당연한 문화 중 하나로 여겨졌고, 심지어 이성애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당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생산을 뒷받침 했던 노예제라는 생산양식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노예제가 보편적이던 시기에는 정복 전쟁을 통해 외국에서 노동력을 끌어들여 왔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사회적으로 생식과 관계없는 성관계가 제법 용인 됐다. 사실 그리스에선 성매매도 합법적인 제도로 여겨졌고, 낙태, 피임, 영아 살해 같은 얘기들이 철학자와 정치가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토론거리로 회자됐다.

봉건제 시기 때도 때때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했지만, 현대 자본주의와 전혀 다른 맥락과 이유에서였다. 당시 동성애는 소도미 행위라는 것으로 처벌받았는데, 이 소도미는 자위나 수간처럼 생식과 직결되지 않은 많은 성적 행위들을 일컫는 것 중 하나였을 뿐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이 붕괴하면서 더 이상 지배계급은 정복 전쟁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농민들에게 출산과 양육을 강조하고 심지어 강제했어야 했다. 그러나 중세엔 체제가 안정화 되면서 동성애에 대해 용인하는 분위기가 다시 퍼졌다. 오히려 수도원은 수녀 간, 수도사 간 동성애가 꽃피우는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동성애 억압의 원인이라는 것도 사실은 아니다.

서구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이전 많은 사회 체제 속에서 동성 간 애정은 체계적으로 탄압받지 않았다. 조선시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청나라 상인들과 미소년들이 거래를 통해 동성애 행위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박지원은 청나라 문인들이 외국인들에게 미소년을 은근히 추천하며 동성애 풍습을 드러낸다고 적고 있다. 봉건 시대 일본의 특권 무사 계급 사이의 동성애가 성행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러므로 아시아권 국가들이 특별히 동성애 억압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역사적 진실은 아니다.

자본주의와 동성애 억압

체계적 동성애 억압은 19세기 중순부터 공고화 됐다. 안정적인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가족 제도를 재확립하고 노동계급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자본주의 초창기는 오히려 성적 자유가 어느 정도 진전했다. 부르주아지들은 권력을 거머쥐려면 봉건 질서의 굴레를 깨뜨려야 했다. 봉건제에 맞서 투쟁하면서 부르주아지들은 봉건제를 지탱하는 제도와 편견에도 도전했다. 대중이 대규모로 반란에 나서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새로운 사상, 가족과 성,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급진적 세계관이 발전했다. 봉건제에선 동성 간 성행위는 소도미 법에 의해서 처벌받을 수 있었는데 17세기와 18세기 부르주아 혁명으로 이 법들은 많이 도전받았고, 프랑스와 미국혁명을 통해 소도미 법이 폐지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평범한 대중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합의된 개인 간의 성행위에 대해선 법으로 처벌하는 걸 반대하는 생각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배권력을 점하게 된 부르주아지들은 점차 자신들이 만들어 낸 계급인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두려워하게 됐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대규모 작업장에 집결시키고, 국민적·국제적 산업들을 통해 그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대도시에 집중시킨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엄청난 정치적 잠재력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을 확고히 통제하려 애썼고, 가족의 사회적 구실을 둘러싼 싸움은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가족의 붕괴

자본주의 초창기, 노동계급의 ‘전통적 가족’은 붕괴 직전이었다. 과거 봉건제와 달리 자본주의에선 가족이 생산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가족을 꾸리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초기에 독신자 비율이 매우 크게 늘게 된다. 대규모 이주도 가족을 해체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가혹한 착취 때문에 노동계급의 전반적 궁핍과 가계 파산이 심각했고, 노동자들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하고 수명이 위협받아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려면 건강하고 어느 정도 교육받은 노동력이 계속 공급돼야 하는데, 가족의 붕괴는 이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부르주아지 자신의 필요가 있었다. 부르주아지에게 결혼과 가족은 사유재산을 공식적으로 물려받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의 붕괴는 자신들의 중요한 제도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지들은 노동자들이 극심한 가난과 착취로 말미암은 불만을 계급적 단결로 표출하는 것보다 가족 부양의 책임감에 매여 있는 게 더 낫다고 봤다.

이 때문에 성에 대한 일련의 통제 조처들이 강화됐다. 유럽 전역에서 여성과 아동에 대한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여성의 모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강조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노동계급의 무너진 가족을 재확립시키려는 부르주아지들의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이른바 ‘정상적’ 이성애 가족이 아닌 것들에 대한 탄압을 수반했다. ‘일탈적 성행위’들이 비난받기 시작했다. 성매매 여성과 남성 동성애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비난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것이 과학, 의학, 법률로서 뒷받침됐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마녀사냥, 처벌 등이 시작됐다. 《행복한 왕자》를 쓴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2년의 중노동형을 받게 된 일은 잘 알려진 사례다.

동성애(homosexual)라는 말 자체가 1869년에 만들어졌다. 이성애라는 말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만들어졌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지배계급이 이성애 가족 제도를 위협하는 ‘동성애자’라는 인간 집단을 배척하려 탄압을 가하면서 자본주의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가족 제도 수호 위한 동성애 억압

자본가들은 동성애 억압을 통해 이른바 ‘정상 가족’을 유지한다. 정상 가족을 유지하는 것은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굉장히 밀접히 연관돼 있다. 자본주의에서 가족 제도의 핵심 기능은 기존 노동자의 노동력을 재충전시키고, 새로운 세대의 노동력을 길러내는 것이다. 자본가들은 가족을 재확립시키면서 여성들을 가족으로 밀어 넣고, 동시에 출산, 양육, 노인 요양, 간병 등 큰 비용이 들지만 이윤 생산에서 필수적으로 없어선 안 되는 일들을 여성에게 전가했다. 덕분에 자본가들이 막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물론 노동자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에 나서기도 하지만, 일상적 시기에 가족 제도는 노동자들을 묵묵히 장시간 고강도로 일하도록 만들고, 계급투쟁을 저어하게 만드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이성애 가족은 지배적인 성 관념과 성 역할을 재생산하는 구실도 한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은 가족 제도를 수호하려 한다. 지배계급은 가족 제도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동성애자를 억압해 가족 제도의 정당성을 강화해 왔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혐오를 조장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계급투쟁을 분쇄하는 데 이용해 왔다. 스탈린주의 소련이 동성애를 불법화하고 동성애자들이 파시스트 집단이라고 비난하고, 나치는 동성애가 볼셰비즘의 상징이라며 비난한 것이나 매카시즘 광풍 속에 우파들이 공산당원들과 동성애를 엮어서 비난한 일 등은 지배계급이 성소수자를 희생양 삼아 계급투쟁을 분열시키는 데 이용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동성애 억압으로 진정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이다. 혹자는 평범한 이성애자들의 무지와 편견이 동성애 억압의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배계급이 동성애자를 억압하면서 동시에 이성애에 대한 보수적 성관념을 함께 부추긴다는 점을 본다면, 이 체제가 동성애 억압으로 무엇을 노리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1980년대 미국 레이건과 영국 대처 정부는 모두 1960년대 동성애자 운동의 산물들을 공격했는데, 이들은 동성애자들을 공격함과 동시에 여성의 낙태권을 공격하고 복지를 공격함으로써 개별 가정에게 더 많은 비용을 떠넘기려고 했다.

지배자들이 동성애에 대한 체계적 차별을 만들어 왔지만 동성애 차별 반대에 대한 지지도 확대돼 왔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지난해 퀴어퍼레이드. ⓒ사진 조승진

21세기에도 성소수자 혐오 조장 세력이 활개치는 이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우익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이유는 자명하다. 첫째로, 심각한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 우익들은 속죄양을 찾으려 한다.

남한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에게 고통을 전가하기 위한 온갖 공격들을 추진해 왔다. 박근혜 정부는 그런 방향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지배계급의 지지를 얻어 당선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조건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상황은 당연히 노동계급의 저항과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노동자들이 저항해 온 것처럼 말이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은 위기가 심할수록 노동계급에게 고통의 속죄양을 보여 줘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 1930년 독일의 나치가 사회 불안의 속죄양으로 (유대인과 나란히) 동성애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긴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에도 유럽에선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고 양극화가 벌어지자 극우 파시스트들이 앞장서서 성소수자와 이주민 같은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쉬운 집단들을 희생양 삼으려 한다. 심지어 동성결혼이 합법화 된 미국, 영국 같은 서구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둘째로, 가족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가족 가치를 수호하려면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수 차례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나오고 있을 만큼 노동력 재생산 문제는 지배계급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물질적 조건은 전혀 개혁하지 않은 채 젊은 사람들의 결혼과 출산율이 낮다며 비난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 내 다른 사회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이 커졌고, 피임 기술 등의 발전으로 성적 자유도 늘어났다. 성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도 매우 많이 변했다. 이른바 ‘정상 가족’으로 분류되는 남녀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족은 2015년 서울에서 전체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 일부는 이른바 ‘법외 가족’을 법 내로 들어오게 하는 게 출산율 증가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동거인에게 법적 권리를 주는 시민결합이나 동성결혼 등이 여러 나라에서 허용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지배계급은 전통적인 가족 제도를 내팽개칠 수 없다. 이들은 전통적인 가족 제도를 통해 여전히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개별 가정에 떠넘기는 데 이득을 보고 있다.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한국 지배계급은 성소수자들을 천대해 왔다. 국가 기구는 군형법 92조의6 같은 동성애 처벌 조항을 유지하고 있고, 법원은 두 차례나 이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황우여 등 박근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그 자신이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겨 온 자들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성소수자 혐오와 편견을 공공연히 부추겨 온 자들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이번 호 관련 기사 [한국 성소수자 인권 현황 보고서] 국가 기구가 혐오 세력이 활개칠 토양을 제공해 왔음을 보여 주다’를 읽어보시오). 국가기구의 차별적인 조처들은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을 막고,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된 유별난 우익들이 자라날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을 제공했다.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 자본주의 자체라는 것은 성소수자 혐오에 맞선 투쟁이 단지 성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의미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없애고 모든 이들의 진정한 성 해방을 쟁취하려면 이 억압을 유지·강화하려는 자본주의에 맞서야 한다. 성소수자 해방 투쟁은 자본주의에 맞선 더 큰 투쟁의 일부여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성소수자 차별을 체계적으로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체제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혐오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바로 계급투쟁이다. 만약 노동계급의 투쟁이 이런 천대받는 사람들과 연결된다면, 노동계급은 자신의 투쟁에 연대하는 세력을 얻게 되는 것이고, 천대받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잠재력이 강력한 세력을 동맹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과 좌파들은 차별받는 성소수자들의 항의와 저항이 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노동계급 투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화 〈프라이드〉에서 잘 그려진 1984년 영국의 광원 파업에 성소수자들이 연대한 경험은 좋은 사례다. 처음에 광원들은 성소수자들에게 편견이 있었지만, 성소수자들이 꾸준히 연대하자 편견을 깨고 진정으로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게 된다. 이후 광원노조는 1985년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에 현수막을 들고 참가했고, 영국노총과 노동당이 성소수자 권리 지지 정책을 공식 채택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성소수자들의 조건은 자본주의에서 외딴 섬으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 투쟁의 전진과 후퇴에 상당히 연결돼 있었다. 노동계급이 성큼성큼 전진했던 1918년 독일 혁명과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성적 자유가 확산된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또한 1969년 세계 성소수자 운동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스톤월 항쟁도 1968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1천 만 노동자들의 파업, 미국의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과 흑인 공민권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1997년 초에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줬고 성소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동성애 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개깃발이 처음 집회에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다.

반면에 1930년 이후 노동계급이 후퇴해서 히틀러가 집권하고 스탈린이 러시아혁명을 고립시키고 질식사시켰던 때 동성애자들은 학살당하고, 낙인찍혔다.

동성애자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던 영국 대처 정부는 성소수자들을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1968년 계급투쟁과 성소수자들의 거대한 투쟁의 퇴적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대처는 곧바로 성소수자를 공격하기보단 ‘정상 가족’을 찬양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대처는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계속 감행했고, 광원 파업을 분쇄한 후에 세력 관계가 결정적으로 노동계급에게 불리해지자,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빼앗아가는 조처들을 도입할 수 있었다.

반자본주의 전략

물론 우리는 체제 내에서 성소수자들의 권리 개혁을 위해서도 싸워야 하고,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해 투쟁해야 한다. 이런 개혁 조처들은 혁명적 전략과 연결돼야 한다. 성소수자들이 체제 내 개혁으로 가장 멀리 나가보고, 또 가장 많이 후퇴한 사례는 1918~23년 독일 혁명일 것이다.

1900년대 초 독일은 동성애자들의 하위문화가 상당히 발전한 나라였다. 이런 발전된 수준의 성적 자유는 거대한 노동계급을 당원으로 보유하고 있던 사민당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사민당은 강력했고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독일에서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권리 조직인 과학적인도주의위원회가 출범하는 데서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과학적인도주의위원회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노동계급의 도전을 조직하기보다, 의회에서 기성 체제 일부와 동맹을 맺어 개혁 입법을 통과시키는 데 골몰했다. 독일 사민당도 말로는 혁명을 주장했지만, 오랫동안 기성 체제 안에서 활동하면서 체제 내에서 활동하는 습성에 물들었다.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사민당의 개혁주의 노선은 사민당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참전을 지지하면서 쓰라리게 입증됐다. 안타깝게도 마그누스 히르쉬펠트는 전쟁이 신속하게 승리로 끝나야 위원회가 살아남을 수 있고 동성애자 해방 투쟁 또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은 과학적인도주의위원회 활동가 절반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전쟁은 과거에 사민당과 과학적인도주의위원회가 이룬 모든 업적을 수십 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이후 혁명이 벌어져 황제가 폐위되고 사민당이 국가를 운영하게 됐지만, 사민당은 혁명을 일관되게 이끌기 보단 점차 자본주의 체제를 방어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심지어 이들은 자본가들의 압력에 계속 타협하더니 동성애 문제에서도 점차 후퇴해 동성애를 불법화 하는 법안에 스스로 서명하게 된다. 그리고 사민당이 독일 혁명의 불씨를 꺼뜨린 이후 결과는 동성애자들을 학살한 히틀러의 부상이었다.

반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변혁했던 1917년 러시아혁명은 오늘날 서구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도 이룩하지 못한 성적 진보를 이뤄냈다.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착취를 뿌리 뽑으면서 동시에 개별 가정에게 맡겨져 있던 가사, 양육 등도 사회화했다. 성애를 억압할 근본 원인이 사라진 러시아에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1백 년 후에나 가능했던 일을 해냈다. 동성애가 합법화됐고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애정들이 조건없이 인정됐다. 이런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독일과 러시아 혁명의 사례는 성 해방이 혁명적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될 때 가장 일관되고 또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 성소수자 혐오에 대처해야 할 필요만큼, 성 해방을 위해서도 노동계급이 가진 변혁의 잠재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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