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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랍: 오스만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지중해 서쪽 끝에서 걸프만까지의 아랍 5백년사를 생생하게 그려낸 책

《아랍: 오스만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은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정복부터 현재까지 아랍 세계의 역사를 매우 읽기 쉽게 다룬다. 저자 로건은 생생한 이미지를 풍부하게 사용해 얘기를 푸는데, 1516년 8월의 마르지 다비크 전투가 한 사례다. 이 전투에서 맘루크 술탄의 군대가 이전까지 누리던 중세의 명성을 유럽식 머스킷 소총으로 무장한 오스만 군대가 철저히 파괴했다.

유진 로건 지음, 까치, 784쪽, 30,000원

그 밖에도 1935년 팔레스타인의 무장투쟁 지도자 셰이크 이즈 알 딘 알 카삼의 장례식에 모인 격노한 군중의 얘기, 1958년 이라크 혁명 때 초조하게 왔다갔다하며 군주제가 전복됐음을 발표한 압드 알 살람 아리프 중령의 얘기도 나온다. 일기장, 회고록, 신문에 나오는 목격담에 근거를 두고 설명하는 이 책은 서구 역사가들이 쓴 많은 서적들과는 달리, 이 파란만장한 사건들에 대한 아랍인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대개 권력자들의 얘기가 가장 잘 보전되지만,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담고 있다. 이를테면 이발사 아흐메드 알 부다이리의 일기는 18세기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 준다.

이 책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주제는 외세의 개입이 아랍 지역에 끼친 영향이다. 물론 로건은 “아랍 세계가 외세의 지배를 받아 왔다고 해서 아랍인들이 언제나 패망하기만 하는, 역사의 수동적 대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고 강조한다.

오히려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부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까지 강대국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아랍인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유럽 열강은 감히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불타는 복수심으로 응징해, 아랍 세계를 폐허로 만들곤 했는데, 로건은 이런 사실도 다뤘다. 가령 1925년 시리아의 프랑스 식민 당국이 전국적 항쟁을 짓밟았을 때 프랑스 군대는 다마스쿠스를 철저히 파괴했다. 어느 지도적 시리아 민족주의자는 이렇게 썼다. “끔찍한 무기들이 입을 열어 다마스쿠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향해 화염을 뿜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너진 건물 아래 묻혀 죽었는지 모른다”.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는 다루는 지리적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서북단의] 모로코부터 [서아시아의] 이라크에 이르는 아랍어 사용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역사책은 드물다. 로건이 강조하듯이, [당시] 아랍인들은 서로 차이가 있더라도 식민 지배와 그에 맞서는 저항을 공유하며 일체감을 느꼈다. 이에 더해 급속한 사회적·경제적 변화로 아랍 세계는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프랑스가 모로코에서 쓰던 식민 통치 기법을 시리아로 들여왔다면, 시리아 민족주의자들은 모로코 리프 산맥에서 일어난 항쟁에 고무돼 독립운동을 벌였다.

로건은 외세의 개입으로 아랍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을 통렬히 반박한다. “민주주의를 죽이는 민주주의자들만이 ‘민주주의’를 이식할 수 있을 것이다.”

로건은 ‘아랍 인간 개발 보고서’에 글을 써 사회를 바꾸려 하는 새 세대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등장하는 것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하며 책을 맺는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희망의 근거를 발견한 대목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아랍 세계를 아래로부터 변화시키겠다는 염원을 표현한 곳이다. 이 책에서 1936~39년 팔레스타인 항쟁을 다룬 장에 인용된, 팔레스타인 시인 아부 살만의 시가 그것이다.

“조국을 가슴에 품은 그대여

철저한 억압에 맞서 일어나라

조국을 왕들로부터 해방하라

조국을 꼭두각시들로부터 해방하라.”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0년 1월호

번역 오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