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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요구한다, “미 해병대 철수하라!”
71년의 누적된 슬픔과 분노가 폭발한 일본 오키나와 현민대회

6월 19일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의 오노야마 공원에는 6만 5천여 명이 운집해 “미 해병대 철수하라!”, “우리의 분노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외쳤다.

금방이라도 탈진할 것만 같은 폭염 속에 ‘올(all) 오키나와 회의’ 주최로 열린 ‘전 해병대원의 잔혹한 만행 규탄! 피해자를 추도하고 해병대 철수를 요구하는 현민대회(이하 현민대회)’는 전후 71년 동안 미일동맹을 위해 희생당한 오키나와의 분노를 여실히 보여 줬다.

오키나와 현민대회에 모여 '미 해병대 철수' 등을 요구하는 현민들. ⓒ사진 출처 〈아카하타〉

지난 4월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던 20살의 리나 씨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족과 남자친구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리나 씨는 20일 만에 야산에서 백골로 발견됐다. 끔찍한 폭행과 살인 그리고 시체 유기를 저지른 범인은 미 해병대 출신 군무원이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미군기지에 반대하며 투쟁해 온 오키나와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 우리는 그동안 미군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수없이 받아 왔다. 미군 기지가 원흉이다.” 낙원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자랑하는 오키나와의 속살은 피와 설움과 분노로 물들어 있다.

전후 일본의 지위가 회복된 뒤로도 오키나와는 1972년 일본에 반환될 때까지 미국 점령 하에 있었다. 반환 뒤에도 일본 국토의 약 0.6퍼센트 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섬에 주일 미군 기지의 약 74.4퍼센트가 집중돼 있다.

게다가 오키나와의 카데나 기지는 미 공군의 주력 기지이며 캠프 슈와브와 후텐마 기지 등은 미 해병대의 전략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오키나와 주둔 미군의 75퍼센트가 해병대).

미군 범죄

아시아 지역에 배치된 미군 약 10만 명 중 약 2만 5천 명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에서는 미군 범죄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1955년 6세 여아 폭행 살인 사건, 1995년 미군 병사 세 명의 집단 성폭행 사건, 2004년 오키나와국제대학 헬기 추락 사고, 실탄 훈련에 따른 환경 파괴 문제 등.

반환 이후 44년 동안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미군 범죄는 6천 건에 육박하며(흉악 범죄만 5백75건), 추락·낙하 등의 사고는 약 7백 건에 달한다. ‘과부 제조기’, ‘하늘을 나는 관’이라 불리는 오스프리(미 해병대 수직이착륙 수송기)도 오키나와에 24기나 배치돼 있다.

이번 사건으로 오키나와 미군이 취한 대책은 금주 등의 자숙과 야간 외출 금지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기한을 한 달로 못 박았다. 일본 경찰이 내놓은 대책은 경찰 인원과 순찰을 늘리는 것이었다.

현민대회 참가자들은 이런 대책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군 범죄 문제는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미국뿐 아니라 미일동맹 강화의 한 축인 아베 정부도 제2의 가해자라고 지목하며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미·일 정부의 사죄와 완전한 보상, 미일(간 주둔군)지위협정의 근본적 개정,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전 없는 폐쇄와 철거를 요구했다. 특히 미군 기지를 대폭 정리·축소하고 미 해병대를 철수시키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오키나와 현민대회와 현의회가 ‘미 해병대 철수” 요구를 결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일동맹을 근본에서 재고하게 될 ‘미군 철수’ 요구는 그동안 극우 보수 세력까지 현민이라면 모두 함께하자는 기존의 기조 하에서는 채택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번 “철수” 요구 결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누적돼 온 슬픔과 분노가 “더는 안 된다”는 목소리로 터져나온 것이다.

동중국해

한편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등은 7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이번 대회에 불참했다. 일본 관방장관(국무총리에 해당)은 그러니 “올 오키나와가 아니”라며 오키나와의 투쟁을 폄하하려 한다.

그러나 오키나와 사람들의 바람은 아주 분명하다. “우리는 이 섬에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산책하고 싶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외출할 때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잘 다녀오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아무런 불안 없이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이를 위해 미일지위협정과 미일동맹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언제나 그랬듯이 이 바람을 무시하고 있다.

동중국해에 있는 오키나와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미국은 오키나와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들어 남·동중국해에서는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호주국립대학 태평양·아시아사학과 개번 매코맥 명예교수의 지적대로, “일본은 미국의 전략기지로서 하와이에서 희망봉까지 지구 절반을 뒷받침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일본을 잃는다면 미국은 더는 세계를 주도하는 초강대국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오바마가 위선적이게도 “핵 없는 세상”을 주장하며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찾아 일본 정부의 위신은 세워주면서도, 1945년 두 발의 핵탄두에 희생된 일본과 한국 등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일본 정부도 미국의 행보에 편승해 실질적인 지역 강국으로 발돋음한다는 숙원을 달성하려 한다.

경제 위기 시기 심화하는 제국주의간 경쟁은 동아시아 불안정을 키우며 오키나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같은 날 일본 각지 69곳에서 오키나와 투쟁에 연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도쿄에서만 1만여 명이 모였다. 아베 정권과 안보법에 반대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국의 노동자·학생·청년 들이 오키나와와 함께 ‘해병대 철수’ 목소리를 높였다.

“두 번 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이런 사건으로 현민대회를 열지 않기를 바란다”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키나와만의 투쟁’이 아닌 제국주의에 맞선 거대한 투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