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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정부 LGBT 퍼레이드 불허 통보:
터키의 성소수자들과 그들의 투쟁에 연대를 보낸다

6월 19일 터키 이스탄불의 경찰 수백 명이 탁심 공원을 에워싸고 ‘트랜스 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최루 가스와 고무총을 쐈다. 수명이 연행되고 다쳤다.

그 이틀 전 터키 정부는 “공공질서"와 "안전 문제"를 이유로 매해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트랜스 퍼레이드’와 LGBT* 퍼레이드(6월 26일 개최 예정)를 불허했다. 터키의 극우단체와 보수적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이 행사를 두고 "퇴폐적"이라며 물리적으로 막겠다고 위협한 뒤였다. 정부는 이 위협을 핑계 삼은 것이다.

이 행사가 이슬람의 라마단*과 겹쳤다는 것도 불허의 한 이유가 됐다. 지난해에도 터키 정부는 라마단을 이유로 ’LGBT 퍼레이드’를 불허했고 경찰은 폭력적으로 퍼레이드 참가자들을 공격했다. 이는 당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성소수자와 인권 단체들의 질타의 대상이 됐다.

이스탄불 LGBTI연대의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정부를 비판했다.

“축구 팬들은 그들이 원하는 때에 언제든 대회를 엽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행동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라마단은 핑계일 뿐입니다. 라마단을 존중한다면 똑같이 우리도 존중해야 합니다. 오직 365일 중 2시간일 뿐입니다.”

정부의 탄압에 맞서는 터키 LGBT 운동. ⓒ터키LGBT뉴스

지난해에도 이스탄불 LGBTI연대는 정부가 라마단을 이유로 퍼레이드를 불허한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옳게 비판한 바 있다.

“정부의 결정은 성소수자 정체성과 무슬림 신앙이 서로 충돌하기라도 하는 듯 연출하며 인위적으로 둘 사이에 긴장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성소수자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속해 있다는 것을 목적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중 앞에 성소수자를 악마화하고, 성소수자 개인들을 향한 공격을 예비하는 것이다.”

6월 20일 이스탄불 LGBT 퍼레이드 조직위원회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선동한 단체들을 형사고발하고, 정부의 LGBT 퍼레이드 금지 통보에 대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6월 20일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LGBT 자긍심 주간’의 다른 행사들(포럼, 워크숍, 전시회, 파티 등)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스탄불의 LGBT 퍼레이드는 터키 성소수자들의 축제이자 저항의 장이다. 매해 6월에 열리는 이스탄불의 LGBT 퍼레이드는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고(터키는 국민 96퍼센트 이상이 무슬림이다)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2003년에 30명으로 시작해 2011년과 2012년에는 1만 5천 명 규모로 성장했다. 탁심 게지 공원 재개발 반대로 시작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있었던 2013년에는 무려 10만 명의 사람들이 LGBT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성소수자들도 2013년 반정부 시위의 중요한 일부였기 때문이다. 십수 년간 안정적으로 집권해 온 정의개발당은 당시 시위로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내몰렸다. 현 정부에게 ‘LGBT 퍼레이드’는 눈엣가시일 것이다.

게다가 정의개발당은 성 문제에 특히 억압적 태도를 보여 왔다. 대통령 에르도안과 정의개발당 지도자들은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지 않다”, “여성은 아이를 세 명은 낳아야 한다”, “여자는 공공장소에서 웃으면 안 된다”는 등 온갖 성차별적 말을 서슴지 않는다. 에르도안은 낙태와 피임에 반대한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무엇보다 지금 터키 정부는 경제 위기와 특히 심각한 지정학적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인접 국가인 시리아에서의 혁명과 내전의 영향으로 터키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인들의 독립국가 요구가 높아졌다. 동시에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으로서 시리아에 개입해야 하는 처지다. 최근 터키에서는 정부의 쿠르드인 공격과 이에 대한 쿠르드인들의 보복 공격, ISIS의 폭탄 테러가 연이어 발생해 수백 명이 죽고 다쳤다.

이런 위기 속에서 터키 정부는 사회적으로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국토안보법’을 개정해 경찰이 임의로 사람들을 구금하고 총기를 사용해 시위를 진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언론의 자유도 심각하게 탄압하고 있다. 올해 터키 법원은 반정부 성향의 일간지 〈자만〉과 뉴스 통신사 〈시한통신〉이 ‘테러 조직’과 연계가 있다며 법정관리 결정을 내렸고, 정부가 이를 ‘접수’했다. 쿠르드와의 전쟁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크리스 스테펜손 등의 학자들을 체포·추방했다가 국제 연대 압력으로 일부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터키 정부가 지난해부터 LGBT 퍼레이드를 금지하고 강경하게 탄압한 것도 이런 현재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성소수자들의 집단 행동을 계기로 혹시 2013년과 같은 대규모 반정부 대중행동으로 확대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오바마 등의 미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한다고 떠들어왔지만 정작 터키 정부의 이런 탄압은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가 중동에 개입하는 데서 터키가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오바마는 에르도안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터키 정부의 안보 및 테러 관련 대응을 지지함을 밝혔다”(백악관 논평). 그런데 지금 터키 정부가 각종 탄압의 명분으로 삼는 것이 바로 그 ‘안보 및 테러 관련 대응’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세계 지배를 미화하는 장식품 정도로만 성소수자 권리를 여길 뿐 전혀 진지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성소수자 지지세력’ 운운하는 미국 지배자들의 위선에 기대를 품거나 환상을 조장하는 것은 성소수자 운동의 전진에 도움이 못 된다.

이스탄불 LGBTI연대는 19일 발표한 성명에서 터키 정부에게 억압받는 “쿠르드인, 알레비, 아르메니안, 터키계 그리스인, 로마인,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리고 “세계의 평등,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의 성소수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우리의 목소리가 단지 일 년에 하루가 아니라 매일매일 커지길 원한다.”

이는 전 세계 성소수자들의 외침이기도 하다. 터키의 LGBT 자긍심 주간을 축하하며, 터키의 성소수자들과 그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