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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를 이유로 구조조정 강요하는 박근혜:
경제 위기 고통 전가 반대한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보도 직후 박근혜가 던진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이제 더 머뭇거리고 물러날 곳이 없다.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해야 하는 엄중한 상황이다.”

영국인 다수가 복지삭감, 실업, 해고 등 긴축을 강요하는 유럽연합에 정면 도전하는 결정을 내리자, 전 세계 자본가들이 충격에 휩싸여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박근혜는 이것을 계기로 구조조정을 더한층 압박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언론들도 앞다퉈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더 심각한 위기로 빠져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유럽 선주들에 발주를 의존하고 있는 조선·해운업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꼽혔다. 브렉시트가 다른 나라들의 유럽연합 탈퇴 도미노를 부를 수 있고, “보호무역 확산의 불씨”가 돼 국제 교역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의 왜곡과 달리,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찍은 노동계급 대중은 “국수주의”,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박근혜를 비롯한 전 세계 지배자들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지한다. 극우정당(영국독립당)과 보수당의 주요 인사들이 탈퇴파의 한 축을 형성했다고 해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섣부르다.

물론 조선·해운업의 수주 물량 회복을 기대하는 것도 지나친 낙관일 것이다. 오히려 저성장이 지속되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더라도) 경제 위기 자체로 국제 교역량이 줄어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경제 위기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처음으로 2009년 전 세계 무역량을 12.3퍼센트 끌어내렸다. 조선·해운업이 직격탄을 맞아 한국에서도 수주 절벽이 생겨났다. 그 후폭풍으로 중소규모 조선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 뒤로 국제 교역량은 증가세로 전환했지만, 2012~15년 국제 교역량 증가율은 2~3퍼센트대로 매우 저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미국의 금리 인상 등까지 벌어진다면 2009년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박근혜를 비롯한 지배자들의 걱정은 여기서 비롯한다. 조선업체들이 당장 파산할 지경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고,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고용·임금의 유연성을 높이고 유동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지배자들의 심산이다.

6월 8일 구조조정 중단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서울에 모인 조선업 노동자들. ⓒ이미진

노동운동 내 일부는 구조조정이 ‘총선 패배 이후 노동개악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한 박근혜의 노림수’라며 이 문제를 부차적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조선업 구조조정에서 노동개악 추진의 동력을 얻고자 한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공격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부는 구조조정이 현대중공업 정기선 같은 ‘재벌 3세의 경영 세습을 위한 길 닦기’라는 주장도 한다. 사용자들이 이런 효과를 노릴 수 있지만, 이럴 때조차 진정한 목적이 구조조정 자체가 아니라고 여기면 공격에 단호하게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진보진영의 일부가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 투쟁에 강조점을 두기보다 재벌 개혁을 내세우는 것은 그런 위험을 보여 준다.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에게 구조조정은 사활적 과제다. 저들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확실하게 떠넘겨 기업주와 채권단을 살리려고 필사적이다. 그만큼 실질적인 투쟁을 건설해 맞서야 한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부실·비리의 책임을 져야 한다

“부실기업의 썩은 살”을 도려내겠다던 정부가 도리어 부실·비리의 주범이었다. 정부 소유 기업인 대우조선의 전 사장 고재호는 5조 4천억 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또 다른 전 사장 남상태는 측근에게 일감을 몰아주고 1백억 원을 챙긴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주채권 은행인 산업은행 경영진은 부패의 과실을 함께 누렸다. 산업은행은 퇴직한 임원들을 대우조선의 최고 재무책임자로 보내, 부실을 방치하고 대주주로서 이익을 챙겼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자 최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자체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부실·부패의 총체적 책임자인 박근혜 정부와 금융당국은 ‘혁신’ 대상에서 쏙 빠졌다.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이 모두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말이다. 청와대가 분식회계 사실을 몰랐을 리도 없다.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두 차례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정치권 실세들이 줄줄이 연루돼 검찰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 못했을 뿐이다.

이는 일각의 주장처럼 대우조선이 “주인 없는 기업”이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정경유착, 부정부패는 자본주의 체제에 깊이 아로새겨진 어두운 그림자다. 사장들은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부정 축재를 일삼고 끝없는 이윤 경쟁 속에서 정관계 로비에 힘쓴다.

현대중공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지난 한 해 알려진 비리만 해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정몽준 측근에 대한 특혜 의혹, ‘황제 골프·성접대’ 파문, 산업재해 은폐와 뇌물수수, 납품비리 등등. 정몽준은 추악하게 축재한 부를 물려주려고 아들 정기선을 초고속 승진시키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노동자들이 정부와 사용자에게 부실·비리 경영의 책임을 묻고 구조조정 중단을 촉구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진정으로 부정부패의 진상을 밝히고 정부와 사용자에게 구조조정의 책임을 물으려면 강력한 투쟁이 뒷받침돼야 한다.

일단 정부·여당은 정의당·더민주당·국민의당 등 야3당이 요구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관한 청문회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쏟아져 자칫 구조조정 추진에 차질을 빚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우조선·삼성중공업노조 지도부가 노동부 장관 이기권과 만남을 가진 것은 부적절했다. 쟁의 찬반투표까지 해 놓고 “노사정 대화”를 촉구한 것은 조합원들에게 혼란을 주고 지도부의 투쟁 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만들 수 있다.

주요 노조 지도자들은 여소야대 국면을 활용해 청문회를 비롯해 국회 차원의 사회적 논의를 해 볼 만하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에 기대서는 진정한 책임 추궁과 구조조정 중단을 강제하기 어렵다. 두 정당은 대선을 앞두고 민생·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려고 애쓰지만, 선제적 구조조정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우그룹 부도를 내놓고 공적자금 20조 원을 ‘먹튀’한 김우중을 봐준 전력도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생산관계 상에서 진정한 힘을 보여 줄 때 이런 야당들에게도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중공업노조 파업 결의

“분사화·임금삭감·비정규직해고 중단하라”

최근 조선업 노조들이 잇따라 구조조정 저지 파업을 결의하고 나서자, 박근혜 정부가 “기득권 지키기 파업 용납 못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파업을 강행할 경우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원에서 제외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 반대 투쟁은 “기득권”을 쥔 이들의 떼쓰기가 아니다. 조선업 위기를 만든 장본인은 정부와 사용자들이다. 수조 원의 분식회계와 비리를 일삼고, 단기적 이윤에 눈 멀어 저가 수주에 열을 올리고, 해양플랜트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것도 모두 이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 반대가 경제를 더한층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고용과 임금을 지키는 것이 ‘서민경제 살리기’이자 ‘생존권 사수’이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 등지에서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결코 위기에서 경제를 구출해 내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구조조정은 심화하는 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고통전가 정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조선·해운업에서 구조조정을 관철해 산업 전반에 구조조정과 민영화, 노동개악을 확대하려 한다. 조선업 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움에 나선다면, 정부의 반(反)노동 정책에 불만을 가진 수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조선업체들의 자구안은 실로 노동자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분사화는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조처로 고용을 위협한다. 또한 사측은 고정연장수당 폐지 등 20~30퍼센트가량의 임금 삭감도 노리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와 임금 삭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에선 2014년 말부터 지난 5월까지 1년 6개월 만에 1만 1천3백여 명이 해고됐다. 매월 평균 6백27명 꼴이다.

따라서 조선업 노동자들의 파업 결의는 완전히 정당하다. 박근혜 정부를 등에 업은 사측이 강력하게 공격에 나서는 만큼, 노동자들도 파업으로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효과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파업 전에라도 분사화와 고정연장수당 폐지를 막기 위한 행동에 돌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대중공업 사측의 공격 시점을 볼 때 7월 중순경 파업으로 대처하기에는 늦을 수 있다. 설비지원 노동자 일부가 사측의 회유·협박 속에서 전적 동의서에 서명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 큰 이탈이 생기기 전에 점거 농성에 돌입해야 한다.

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현대중공업의 정규직 활동가들과 사내하청지회·일반직지회 등이 투쟁 구축을 위해 결성한 ‘현장공동투쟁위원회’는 분사화·임금삭감 반대와 함께 하청 노동자 조직화에 함께 나서기로 결의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조선업은 정규직의 2~3배에 이르는 비정규직 대부분이 조직돼 있지 못하다. 조직된 정규직이 동료 비정규직의 고통에 반대해야 한다. 이는 파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