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오어 방한 특집 여성 차별에 어떻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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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오어

여성들은 성 상품화나 남녀 임금 격차처럼 삶의 온갖 측면에서 차별을 겪는다. 2013년에 발간된 <성과 권력>이라는 보고서는 영국 정치권에서 여성 대표자의 비율이 되레 줄고 있다고 밝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성들의 지위가 낮은 것에 정당하게 분노하며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리고 정치 행동에 참여하면서 흔히 페미니즘 사상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사회주의자는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한다. 우리는 낙태권을 지키고, 평등한 임금을 요구하고, 제도적 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을 함께 건설한다. 그러는 동시에 사회주의자들은 차별을 계급으로 환원해서는 안 되지만 여성 차별은 계급사회의 출현과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래 전부터 페미니즘에는 아주 다양한 정치 경향이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사회의 근본 분단선이 계급으로 나뉜다는 견해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사회를 이해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여성 차별과 관련해 새롭게 제기되는 쟁점도 있지만 과거에 제기된 주장이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차별이 남성과 맺는 개인적 관계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또, 남성이 여성 차별로 득을 본다고도 주장한다.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여성의 단결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남성이 여성 차별로 득을 보므로(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맡는 등) 단기적으로는 차별을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성 차별 등 성차별은 노동자들을 서로 대립하게 만들어 노동계급을 약화시킨다. 그러면 지배자들이 평범한 사람들(남녀 불문)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 수월해진다. 그 공격의 효과가 단기적인 것일지라도 말이다.

상이한 계급사회에서 가족제도가 한 구실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제도는 개별 남성들이 아니라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가족제도 덕분에 지배계급은 다음 세대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지배자들이 가족제도를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가족의 형태는 변하지만 가족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나 가족이 수행하는 경제적 구실은 변치 않는다. 전 영국 총리 캐머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좋은 복지제도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가족입니다.”

지배자들은 노동계급이 성별과 무관하게 모두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현 체제의 유지가 자신들에게도 이롭다고 생각하길 바란다.

지배자들은 남성이 체제 덕택에 득을 본다는 생각을 부추기고, 그 결과 일부 노동계급 남성은 여성 차별이 자신에게 득이 된다고 여긴다.

의식

그러나 일부 남성 노동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과 실제 현실이 그렇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썼듯이 “만약 사물의 현상과 본질이 일치한다면 과학은 불필요할 것이다.”

노동계급 남성의 객관적인 이익은 노동계급 여성과 단결해서 지배자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투쟁하는 데 있다.

체제가 아니라 개별 남성의 태도 문제에 치중하는 것은 여성 차별의 근원이 남성 권력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모든 남성이 여성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통칭 ‘가부장제’ 이론으로 불리는 이 관점은 사회의 겉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여성 차별이 어디에서 비롯했고, 그 본질은 무엇이고, 자본이 여성 차별로 어떻게 득을 보는지를 이해하는 데서는 도움이 못 된다.

가부장제 이론의 관점은 노동계급 내 파편화를 더욱 부추기고, 여성 차별을 인류 역사의 변치 않는 특징으로 본다. 그러면 변화의 가능성도 없어지게 된다.

여성 차별을 ‘특권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특권 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차별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여겨진다. 특권 이론의 기본 출발점은 누군가가 예컨대 백인이거나 남성이라면 사회의 “지배적” 부문에 속함으로써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에서 노동계급 백인 남성은 백인이고 남성이므로 특권을 누린다. 이런 식으로 보면 체계적 불평등과 차별을 개인 관계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환원시키고 사회 구조의 문제를 놓치게 된다.

또, 차별로 특권을 누린다는 그 사람들을 문제의 일부로만 여길 뿐, 그 사람들과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백인이나 남성이나 이성애자는 차별에 맞서는 투쟁에 동참하기 어렵다고 보며 중시하지 않는다.

특권 이론의 논리에 따르면, 백인 남성은 모두 이해관계가 같으므로 여성은 그들과 따로 조직돼야 하고, 마찬가지로 흑인 여성도 따로 조직돼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각종 차별 형태에 따라 끝없이 잘게 쪼개는 것은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을 약화시킬 뿐이다.

최대한 강하게

우리의 힘을 최대한 키운 상태에서 지배자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우리 편을 더 강하게 만든다. 사회주의자는 어디서든 성차별에 반대한다. 어떤 차별이든 지배자들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데 이용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중의 호민관이 돼 각종 전횡과 차별이 민중의 어느 계급이나 계층을 겨냥하든, 또 그런 전횡과 차별이 어디서 벌어지든 그에 맞서 싸워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사회를 나누는 결정적 기준은 계급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소득이나 직업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고 보지 않는다. 노동력을 파는 사람과 노동이 만든 잉여가치로 이윤을 취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계급을 나눈다.

이처럼 이윤을 위해 착취당한다는 점 때문에 노동자들은 체제의 핵심이 된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할 때,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은 체제를 개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체제 자체에도 도전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투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계급의식 수준이 높든 낮든 행동에 나서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투쟁에 나설 때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을 느낄 수 있고, 사장들에 맞서 모두 같은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보게 된다. 노동자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 잠재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노동계급이 여성을 대신해서 투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여성 대중이 노동계급으로서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바로 그 힘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

 
 

번역: 김종환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3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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