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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연합체제는 구조조정과 법인화의 일환

지난 7월 22일 전국의 거점 국립대 총장 10명 중 8명이 부산대에 모여 ‘국립대 연합체제’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신임 부산대 총장 전호환이 제안한 국립대 연합체제는 부산의 4개 국립대를 각 대학의 강점 분야로 특성화해(부산대·부경대·해양대·부산교대가 각각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특수인력양성대학, 교원양성대학이 된다), 궁극적으로 하나의 대학체제로 통합하는 안이다.

교육부의 총장직선제 폐지에 항의해 지난해 고故 김현철 교수가 투신하는 등 교수, 직원, 학생들이 대규모 투쟁을 벌였다. 전호환은 그 여파로 직선 선출된 총장이다. 그러나 그가 취임하자마자 추진하는 국립대학 개편 방안은 그동안 교육부가 제시해 온 국립대 구조조정 방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의 국립대학 연합체 제안은 올해 3월 22일 교육부가 발표한 국립대학 연합체 구상에 부응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같은 권역의 국립대를 묶어 각 대학을 전공별로 특성화하는 권역별 국립대 연합체제를 구상 중이다.

올봄 교육부 발표 뒤 지역별로 국립대학 총장들이 국립대 연합체제 형성을 논의해 왔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의 통합안은 그중 하나다. 이 안은 전호환이 취임 전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연간 예산 1조 원대의 거대 ‘연합대학’으로 거듭나면 서울대에 앞서는 국내 최고 대학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연합체제 방안이라 쓰고 법인화라 읽는다 국립대를 타 대학들과 경쟁시켜 대학을 더욱 시장화 하는 조처다. 2011년 4월 국립대 법인화 반대 집회. ⓒ이윤선

이렇게 시장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뤄지는 대학 간 통합 과정은 학생들의 필요를 무시하기 십상이다. 교수와 직원 등 인력의 구조조정도 뒤따를 것이다. 기존 4개 대학의 유사·중복학과는 통·폐합된다. 거점 국립대가 연구중심 대학이 되려면 학부 정원을 많이 줄이고 대학원 정원을 늘려야 한다.

물론 국립대 통합체제 구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부산의 4개 국립대를 통합하려는 시도는 2005년에도 있었지만 대학별 견해차가 커서 무산됐다. 올해 교육부가 내놓은 국립대학 연합체 구상에 대해 거점 국립대학은 대체로 찬성한 반면, 나머지 중소 국립대학들은 대체로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이해관계의 상충이 반영돼 국·공립대 총장들 사이에서 국립대학 연합체 방식에 대한 이견이 있다. 대규모 국립대인 거점 국립대 총장들은 자신들의 대학이 주도하는 권역별 연합을 주장하는 반면, 지역 중소 국·공립대들은 거점 국립대에 통합되는 방식에 반대하고 그 대신 지역별로 느슨한 연합을 추구한다.

국립대 구조조정

이런 이견들이 아직 조정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교육부의 국립대 연합체제 방안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8월 중에 정부의 ‘국립대 발전 계획’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립대 구조조정을 촉진하려는 계획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교육부는 국립대가 ‘자발적으로’ 연합대학 모델을 구성하면, 연합 강도에 따라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재정 지원을 미끼로 강도 높은 국립대 통폐합을 유도하려는 발상이다.

지난 6월에 나온 언론 보도를 보면, 교육부는 내년부터 향후 4년간 매년 1천억 원을 투입해 거점 국립대와 주변 소규모 대학들의 기능을 연계하는 국립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규모 국립대학들이 통합에서 주도권을 쥘 터이므로 거점 국립대학 총장들 사이에서 연합체 모델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립대 연합체안은 어떤 방안이 나와도 결국 대학 운영을 더욱 시장화하면서 돈줄을 쥔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립대학 시스템을 개편하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한국은 국립대학 비중이 전체 대학 가운데 고작 20퍼센트도 채 안 되면서(OECD 평균은 70~80퍼센트 수준) 국고 지원도 낮아 국립대 운영비의 절반가량만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2000년대 들어 국립대에서도 등록금이 대폭 올랐고,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증가하는 등 대학 공공성이 크게 후퇴했다. 이런 상황은 신자유주의적 대학 통폐합이 이뤄지면 더욱 악화될 것이다.

국립대 총장들의 연합체 추진 계획이 가시화되자, 부산대·전남대 총학생회는 국립대 연합체 추진에 반대한다는 옳은 입장을 밝혔다. 7월 26일 전남대 총학생회는 “연합대학이라 읽고 법인화라 불리는 국립대 통합 정책 당장 중단하라”며 연합체 계획을 법인화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부산대 총학생회와 단과대학 학생회들도 연합체가 기초학문 축소와 국립대 법인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김대중 정부 이래 국립대 통합은 법인화 계획과 맞물려 추진돼 왔다. 그러므로 부산대와 전남대 총학생회의 이런 비판과 우려는 당연하다. 국립대 법인화는 국가가 직접 통제하던 인사권과 재정 운영 등에서 대학 경영진의 자율성을 전보다 확대하고, 대학의 수익 사업도 허용하는 등, 국립대학 운영 전반에서 수익성 논리를 강화하는 시장화 정책이다.

반발

사실, 국립대교수회 등 교수들은 국립대 통합 정책의 최종 종착지는 법인화라며 일찍부터 교육부안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 회복의 필요성을 내세워 국립대 정원 감축,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래서 국립대의 권역별 연합대학 구성안은 이미 2000년부터 정부의 ‘국립대학 발전계획’에 포함돼 있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모두 국립대 통폐합,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법인화도 강행했다.

노무현 정부는 모든 국립대학을 한꺼번에 법인으로 전환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실패하자 울산과학기술대 같은 신설대학을 국립대법인으로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도 교수와 학생, 직원들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했는데, 서울대를 제외하고는 교수 등의 반발이 매우 커서 다 실패했다. 서울대 같은 명문 대학이 아니면 대학 법인화로 외부 자금을 끌어오기 힘든 데다, 법인화로 국고 지원이 줄어들면 심각한 재정난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대 법인화의 결과가 대학마다 동일하지는 않다. 서울대는 국립대법인으로 전환된 지 5년이 됐지만 아직도 가장 많은 국고 지원을 받고 있다. 2000년대에 강화된 정부의 대학 재정 차등 지원 속에 서울대는 법인화 뒤 국고 지원이 오히려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국립대법인인 인천대는 지난해 교수와 직원 인건비 60억 원을 마련하지 못해 임금 체불 위기에 빠질 정도로 법인화 이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어 왔다. 재정 위기 때문에 인천대는 2013년 시립대에서 국립대법인으로 전환했었지만 그 뒤에도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천대 법인 측이 전환 당시 마련한 대학운영비는 약 5백억 원에 불과했고, 법인화 직후 국회에 신청했던 국고보조금 2백50억 원은 전액 삭감됐다. 교육부는 2006년 인천시와 체결한 ‘인천대 국립대학 특수법인 양해각서’를 근거로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았다.(인천대가 법인으로 전환되고 6년이 지난 2018년에야 대학운영비를 정부가 지원한다.) 2017년이 되면, 운영을 보조하기 위해 시중은행에서 융자한 5백50억 원 상당의 차입금 상환까지 도래해 인천대의 재정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국가가 대학 서열에 따라 재정 지원을 달리하는 것은 국립대학 법인뿐 아니라 사립대학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부유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서울대와 대규모 명문 사립대들에 재정 지원을 집중해 왔다. 이런 엘리트주의는 비교육적일 뿐 아니라 계급 차별적인 것이다.

그러나 국립대 법인화의 문제점은 단지 인천대뿐 아니라 서울대에서도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재정 지원이 줄지는 않았지만 학생 등 대다수 구성원들의 바람과 반대로 갈수록 대학 당국이 교육보다 수익 창출(예식장 사업, 시흥캠퍼스 개발, 연구의 상업화 등)에 주력하며 비민주적 행정을 일삼았다. 특히, 산학협력 강화로 연구의 상업화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은 연구 부정의 위험성을 높여 사회 전반에 해악을 끼친다. 가습기 살균제 독성 실험 결과를 조작한 교수가 단적인 사례다.(둘 중 한 명이 서울대 교수였다.)

3월에 나온 교육부의 보도 자료는 대학연합의 긍정적 사례로 대학 간 연합기술지주회사 설립 및 운영을 예로 들었다. 결국 국립대 연합체 방안은 정부가 국립대를 국내외 대학들과 경쟁시키며 대학 운영을 더욱 시장화하는 구조조정 방안일 뿐이다.

교육부가 아니라 국립대 총장들이 주도하는 모양새를 취한다고 해서 그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며 국립대를 더욱 시장화하는 국립대 연합대학안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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