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이 아니라 분열을 낳을 ‘진보대통합당’ 안(案) 반대한다 1안과 2안 모두 폐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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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정치전략’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사실, 전략 투쟁 의제에 포함돼 있는 ‘재벌 체제’ 문제나 노동시간 단축도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다. 그런데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민주노총의 ‘정치전략’은 순전히 정당과 선거 대응 문제로 협소하게 한정돼 있다. 

민주노총 중집이 복수의 ‘정치전략’ 안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했다. 

  • 1안)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대중조직이 함께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건설 및 기존 진보정당의 통합 추진 여부 등을 포함한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치 방침을 2017년 정기대의원대회에 제출한다.”
  • 2안)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노.농.빈 대중조직이 함께하는, 기존 진보정당의 통합 및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포함한 진보대통합정당 건설을 추진한다.”

2안은 애써 행간의 뜻을 파악하려고 수고할 필요도 없이 “진보대통합정당 건설 추진”을 분명하게 표방한다. 반면, 1안은 해석의 노력을 요하는 모호한 문장으로 돼 있지만, 결국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시작”(1안 해설)하자는 것이다.

△ 진보대통합당 안은 지속 가능한 연합을 보장하지 못한다

2안이 ‘민주노총은 정당 건설을 향해 돌격 앞으로!’라면, 1안은 ‘신중하게 정당 건설하자’는 것으로 2안으로 가는 문을 열어 주는 안이다.

요컨대, 주도 세력, 속도,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두 안 모두 공통되게 민주노총이 주도해 새 정당을 건설하는 방향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1안과 2안 둘 다 민주노총의 ‘정치전략’이 돼서는 안 된다.

‘진보대통합당’ 안은 본질적으로 자민통계의 프로젝트

역사적으로 노동조합이 주도해 정당을 건설한 사례는 적잖다. 영국 노동당, 브라질 노동자당(PT), 한국 민주노동당 등. 이 정당들은 처음에는 급진적인 모습을 보여 줬지만, 근본에서 개혁주의의 틀 안에 있었다.

또, 현장조합원 중심의 정당 — 즉, 현장조합원이 통제하는 정당 — 이 아니라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정당이었다. 그래서 이 정당들이 급진적이고 좌파적일 때조차 혁명적인 당은 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도 초기에는 급진적 모습을 띠다 2005∼06년 운동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하자 급속히 개혁주의적 성격을 두드러지게 드러냈다.

그래서 민주노총 주도 새 정당 추진론자들이 아무리 “조합원들의 참여”를 내세울지라도, 본질적으로 현장조합원이 아니라 노동조합 상층 간부가 중심이 되는 개혁주의 정당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정당들이 개혁주의일 뿐이라며 초좌파적으로 일축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진지한 사회주의자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지지하는 그 정당을 지지하는 데서 출발해 대중적으로 그 정당의 개혁주의적 한계가 입증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공동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얘기를 넘어 지금 이곳의 구체적 현실에서 민주노총 주도 새 정당 건설은 심각한 문제점을 낳을 것이다.

현재 진보대통합당 안은 기존의 진보 정당들을 통합하거나 새로운 진보 정당을 건설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 이후 진보·좌파 정치 운동은 크게 정의당계와 자민통계로 분화했다.(노동당과 변혁당 등 급진좌파 정치 세력이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과 뒤이은 당권파 지지자들의 중앙위원회 폭력 행사가 분열의 직접적 계기였지만, 심층에서는 두 세력의 상이한 원칙·전략·조직문화 등이 있었다. 특히, 경제 위기와 계급투쟁,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간 제국주의적 긴장 고조와 북한 문제 등 아주 중요한 한국 정치 쟁점들에서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차이들은 여전히 해결되거나 완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래서 지난 총선 때처럼 선거 공동 대응은 하지만(선거에서 자본주의 정당 후보들이 어부지리를 얻지 못하도록 진보·좌파 정치 세력이 후보 단일화 등 공동 대응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전처럼 한 지붕(‘진보대통합당’) 아래에서 상시적 공동 당 운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정의당은 아직은 진보대통합당 안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존 진보 정당들의 통합’은 명분에 그칠 공산이 크고, 민주노총의 새 진보 정당 건설이 실질적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리 되면 민주노총에게 특정 정치 세력(자민통계)이 주도하는 정당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진보대통합당인가.

물론 자민통계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일부 개혁주의적 지도자들도 진보대통합당 안을 지지한다.(그런데 민중연합당 포함 문제가 둘 사이에 껄끄러운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진보대통합당을 만들어 정계 진출 통로를 확보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진보대통합당은 본질적으로 자민통계의 프로젝트다. 자민통계는 ‘민주노총 주도 새 정당’을 통해 민주노총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합법성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또한 진보대통합당은 자민통계의 인민전선 전략을 실현하는 데서 중요한 수단이다. 인민전선은 노동계급만으로는 신자유주의와 냉전 수구 반통일 세력에 맞설 수 없으므로 중간계급과 (심지어 부르주아지 일부와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자본주의 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전략은 선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각각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은 야권연대를 통해 선거적 실리를 거뒀다), 기본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계급 간 동맹은 노동자 투쟁의 힘을 약화시킨다. 

진보대통합당 안(案)의 문제점① 
정의당은 노동자 진보 정당 아니다?

자민통계가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 안을 주장하는 것은 현재 “노동 중심”의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정의당을 진보 정당(또는 노동자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관련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데, 정의당을 지지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무시하거나 그들과의 공동 행동을 고려하지 않는 종파주의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노동조합과 맺는 관계가 과거 민주노동당만큼 밀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또, 정의당의 비례 후보 경선에서 노동계 리더 출신자가 후순위에 배정돼 ‘노동을 홀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의당이 노동자 정당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 당의 당원과 투표 기반은 주로 노동계급이다. 또, 이정미 의원이 갑을오토텍 점거 파업 지원에 적극 나서 노동자들한테서 환대를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사드 배치 결정을 반대해 정의당 지도부가 성주로 총출동했다.(총선 이후 높아진 정의당의 위상에 자민통계 등이 두려움과 초조감을 느끼며 무리하게 진보대통합당 안을 추진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 갑을오토텍 공장 사수 투쟁 지지 연설을 하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

물론 정의당 지도부와 정책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해서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헌법 안의 진보”), 그 당은 “자본주의적 노동자당”(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이 한 말)이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적 정경 분업 원칙 — 파업이나 임금 인상 등 경제적 쟁점들은 주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다루고, 주로 선거 문제로 여겨지는 정치적 쟁점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소속 의원들이 다루자는 것 — 에 따라 민주노총과 역할 분담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 민주노총과의 단절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경 분리는 정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을 사용하는 것을 삼감으로써,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부문주의적 약점을 강화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진보대통합당 안(案)의 문제점② 
노동조합의 분열 위험성

민주노총에 특정 정당 지지 방침을 채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킬 것이다. 물론 노동조합이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정치적 쟁점을 회피하는 것은 좋지 않다. 노동조합이 세월호 참사, 여성·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속죄양 삼기 등에 반대하고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안에는 정치적 차이들이 존재한다. 계급의식이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안에 복수의 진보·좌파 정당들이 존재한다. 즉, 원칙, 강령, 전략, 당면 전망, 전술, 정치·조직 문화, 정치적 강조점 등이 다른 세력들이 실재한다. 다시 말해, 주요한 정치 문제들에 대해 정치 조직들이 대처하는 방식이 첨예하게 다르다는 뜻이다.

이때 정치적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 민주노총이 주도해 단일한 정당을 건설하자고 밀어붙인다면 내부에서 엄청난 분란을 낳을 것이다.

원한만 깊어지게 할 것이다. 노동조합이 조직상의 분열까지 나아가지 않을지라도 노동조합 쟁점에서 상호 협력하거나 행동 통일 하는 것이 어렵게 될 수도 있다. 과연 정당 지지 문제로 노동조합이 분열해 단결력과 투쟁력이 약화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진보대통합당이 아니라 선거연합정당

4월 총선 참패 여파에서 회복하기는커녕, 박근혜 정부의 정치 위기가 확연하다. 새누리당의 분열이 그렇게 공공연하고 격렬한 까닭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대선에서 정권을 잃겠다 싶은 범여권의 위기의식이 큰 탓이다.

반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좀스러움과 졸렬함은 눈뜨고 봐줄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보 정당이 주요 야당으로 성장해 의회에서 노동자들을 대변해 개혁을 해 주기를 바란다.

물론 자본주의 정당들에 도전하는 실로 중요한 방식은 노동현장과 거리 그리고 대학교에서 노동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벌이는 집단적 저항이다. 갑을오토텍, 성주, 이화여대에서 전개되는 투쟁들이 참으로 값지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투쟁하지는 않으므로, 비혁명적 시기에 변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대개 진보 정당을 자본주의 정당의 대안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진보대통합당 안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지속 가능한 연합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연합을 요구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선거에서 진보·좌파 정치 세력들이 분열해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들이 득을 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끝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선거 시기에 노동계급의 단결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느슨한 선거연합정당이다. 이 정당의 모습을 대략 그려 보면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든 총선공투본을 정당 형태로 발전시킨 모습 정도일 수 있겠다. 그리고 소속된 단체들은 각각 예컨대 ○○당(정의당), ○○당(진보연대), ○○당(**당) 하는 식으로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이 가하는 공격에 맞서 단결해 공동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노동계 정당들과 차별 받은 사회 집단들의 조직들이 제한된 특정 쟁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안별 연대체(공동전선)를 통해 공동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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