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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착취와 억압의 12년: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올해 6월 30일을 기준으로 국내 거주 이주민 수가 2백만 명을 넘었다. 한국 전체 인구의 3.9퍼센트 정도다. 아직 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의 OECD 평균인 5.7퍼센트에는 못 미치지만, 법무부는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향후 5년 내에 OECD 평균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백만 명을 넘은 이주민 중 이주노동자가 약 1백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는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고용허가제이다. 한국 정부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아시아 16개국 이주노동자 약 27만 명이 현재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폐지하라! 고용허가제 시행 12년을 맞아 8월 21일 열린 집회. ⓒ조승진

한국 정부는 중소기업이나 영세 사업체, 농축산업 등에 부족한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런 일자리들은 저임금인 데다 위험하고 너무 열악해서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이제는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이른바 ‘뿌리산업(원자재를 소재나 부품으로 가공하는 기초공정산업)’을 이주노동자가 지탱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이는 제조업 비중이 큰 한국 경제에서 이주노동자의 기여가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그 노동력을 키워내는 데 드는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큰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를 쉽게 쓰고 버리는 기계 부품 취급한다. 고용허가제 도입 전까지 이주노동자 유입을 관리·통제하던 제도는 산업연수제였다. 산업연수제는 ‘현대판 노예제’로 악명을 떨쳤고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의 80퍼센트를 미등록 상태로 전락시켰다.

산업연수제 폐지 요구가 끊임없자 결국 2004년 노무현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했다.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유입은 늘리면서도 관리와 통제를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이었고, 이주노동자 운동 진영이 요구해 왔던 대안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마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

고용허가제는 전체적으로 노동권을 극도로 제약한다. 그 중에서 노동자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사업장 변경은 사용자의 승낙 하에 3년 체류 기간 동안 3회만 가능하다. 단, 고용주가 법률을 위반한 경우는 이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데, 이 때조차 임금체불, 폭언, 폭행, 성폭행 등 사용자의 불법 행위에 대한 입증 책임은 이주노동자에게 있다. 한국어, 한국의 법률과 제도에 어두운 이주노동자가 이를 해결하기란 매우 어렵다. 고용주에 대한 인신 종속을 법제화한 것이나 다름 없다.

한쪽 손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는 한 활동가가 전해 준 다음 사례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한 이주노동자가 일할 공장에 처음 방문해서 작업반장을 만났는데 그는 한쪽 손이 없었다고 한다. 이어서 업체 사장에게 인사하러 갔는데 그도 한쪽 손이 없었고, 심지어 그의 부인도 한쪽 손이 없었다. 이쯤 되면 누구나 이 공장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제한한 고용허가제 아래에서는 그럴 수 없다. 결국 그와 함께 일하던 이주노동자가 몇 달 후 기계 오작동으로 한쪽 손을 다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산업연수제 때 한국에 온 한 이주민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20년 전 이주노동자들이 겪었던 문제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직장을 선택할 자유가 없고 사업장에서 차별 받고 있으며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용허가제는 도입할 때부터 살인적인 단속추방과 한 묶음이었다는 점도 봐야 한다.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2004년부터 그 다음 해까지 무려 5만 7천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를 단속추방했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직·간접적인 단속 과정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가 알려진 사례만으로도 한 해 평균 2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찰청까지 동원하는 정부 합동 단속을 시행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1만 5천 명을 단속·추방했다. 2014년에 1만 8천 명, 2015년에 1만 9천 명을 단속한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혹독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야만적인 단속을 통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불만이 있어도 감내하도록 강요한다.

게다가 역대 정부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기업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방향으로 고용허가제를 개악해 왔다. 2012년에는 사업장을 변경할 때 이주노동자들이 회사를 직접 고르지 못하고 사업주들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개악했다. 2013년 말에는 미등록 체류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출국한 이후에만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사실상 퇴직금을 강탈하는 것이다.

대다수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은 처음부터 고용허가제를 반대했다. 2003년 말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중단과 고용허가제 반대를 내건 명동성당 농성 투쟁은 무려 3백80일 동안 지속됐고 이 투쟁을 통해 지금의 이주노조가 탄생했다. 이주노조는 역대 위원장들이 모두 단속·추방 당하는 탄압에도 끈질기게 투쟁을 벌인 끝에 지난해 노조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 언제든 노조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는 협박을 덧붙였다. 고용허가제가 노동3권을 보장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정부는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내세워 사업장 이동, 체류기간, 일할 수 있는 업종 제한 등을 정당화한다. 이주노동자 유입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성과연봉제, 민영화, 조선업 구조조정 등을 밀어붙이며 이에 맞서는 노조를 파괴하는 데 열을 올리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들이야말로 일자리와 임금을 빼앗는 진정한 적이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주들이 일자리와 임금을 줄이려는 것 때문에 노동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이주노동자들을 속죄양 삼는 정부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보수 언론이 말하듯 노동자들이 언제나 정해진 일자리 수, 정해진 임금 몫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이 악화된 것이 보여 주듯이 정부와 기업주들은 점점 더 적은 몫을 우리들에게 나눠 가지라고 한다. 대안은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투쟁해 노동자들의 몫을 전체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이주노동자 차별에 반대하고 나서야 노동자들의 단결을 강화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고용허가제 폐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최근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는 것이 당장 어려우니 고용허가제 개정을 통해 핵심적인 독소 조항을 제거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이 있는 듯하다.

예컨대 동포들에게는 고용허가제의 특례 규정(방문취업제)을 둬서 정부가 허용한 업종들 내에서 사업장 이동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런 방안을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확대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고용허가제 개정은 이미 꽤 오랫동안 시도됐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더민주당도 고용허가제 개정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짓밟으며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이들이 야당이 된 뒤에도 고용허가제의 “근간”을 제거하는 사업장 변경 허용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국회라 해도 더민주당이 중소기업 사용자를 비롯한 자본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추진하는 데 열의를 보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설사 야당 의원들 일부가 개정안 발의에 나선다 해도, 이 과정에서 애초 개정하려던 내용을 대폭 축소하라는 압력이 커질 것이다. 혹은 운동 내부에서도 야당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용을 조율해야 한다는 압력도 생겨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고용허가제의 핵심 독소 조항을 제거하는 효과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운동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이주노동자 운동에서 고용허가제 폐지냐 개정이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져 왔다. 개정 입장은 고용허가제 자체를 인정하는 한계 때문에 일관되게 고용허가제 반대 운동을 건설하는 데 걸림돌이 됐고, 고용허가제 개정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분명히 하면서 운동을 건설하고 연대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편, 지금은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한 투쟁보다는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통해 법, 제도 개선을 이룰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주노동자 조직화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조직화와 투쟁을 대립하거나 선후의 문제로 보면, 자칫 투쟁은 조직이 확대·강화된 뒤에나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2003~2004년 단속추방 반대와 고용허가제 폐지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 투쟁을 통해 이주노동자 운동의 단단한 간부 층이 형성됐고, 이것이 이주노조 설립으로 이어진 경험을 봐도 조직화와 투쟁은 결합돼 진행됐다. 이주노동자들의 이해를 일관되게 대변하고 투쟁의 구심을 형성하는 것이 조직화 확대에도 이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