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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안정은 ‘신냉전’ 상황의 시작인가?

미국과 한국이 사드 배치를 추진하고, 동아시아에서 강대국 간 갈등이 점증하자 국내에서는 신냉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이 있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냉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과 러시아·중국 등이 주요 지정학적 지역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 대결 구도가 재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결

그러나 신냉전론은 여러모로 오늘날의 제국주의 상황의 일부 측면을 과장하는 면이 있다.

냉전 체제는 국가 간 경쟁이 미·소 양대 초강대국 진영이라는 양극적 틀 안으로 욱여넣어져 미·소 각각의 동맹국들이 그 질서에 복종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질서였다. 양대 초강대국 진영으로 세계가 분할된 것은 (일부 예외는 있었지만) 개별 국가들한테 동·서 양대 진영 중 하나의 이해관계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키도록 강제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이런 점에 비춰 보면, 냉전 질서가 오늘날 세계적 차원에서 다시 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을 ‘신냉전’ 상황이라고 보면, 국가 간 힘의 불균형이나 모순을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픽 조승진

오늘날 미국은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 냉전 때만큼의 압도적 패권(헤게모니)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으로 패권을 유지하려 애써 왔지만, 이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의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은 근본적으로 전 세계의 경제력 분포가 장기적으로 변화해 온 것과 관련이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하락해 온 반면, 유럽과 동아시아 일부 국가들(특히, 중국)은 역동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 왔다.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상대적 지위 하락과 중국의 부상이 맞물리면서 중대한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예컨대 미국의 만류에도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은 중국이 만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했다. 냉전 때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또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도 한국의 기성 정치권 내에서는 지금처럼 한미동맹 ‘올인’을 고수하는 게 수지타산이 맞는지를 두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즉,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동맹국들을 다루는 게 전보다 어려워진 것이다.

미국의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중국과 러시아 같은 국가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높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려고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다른 지역들로 역량을 분산시켜야 하는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지역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각국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증대해 온 것과 병행된 중국의 군비 증강은 이 지역의 바다를 지배해 온 미국의 패권에 직접적인 도전이 되고 있다.

집중

그러나 미국의 경쟁국들이 전보다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것을 두고 신냉전의 도래라고 규정하는 것은 섣부르다. 비록 소련 붕괴 직후에 견줘 러시아 경제가 일부 회복됐지만, 미국과의 격차는 아직도 매우 크다. 더구나 러시아 경제는 만성적으로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고, 세계 금융시장에 통합돼 있어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재 압박에 취약하다.

중국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지만,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여전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중국 경제가 앞으로 수십 년간 위기 없이 순탄하게 성장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나 실현 가능한 것이다.

중국이 자국의 “핵심이익”을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려 애쓰고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늘리고 있지만, 이런 행동은 다른 주변국들의 경계심도 높일 수 있다. 미국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을 자신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들이려 한다.

따라서 진보 진영 일각에서 현 질서를 “미국과 중국의 세력 교체 시기”라고 규정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 간에 놓인 현격한 힘의 격차를 간과하는 것이다.

현 세계 질서는 냉전 때처럼 국제 질서가 양극화한다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단극적 질서에서 제국주의 열강이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을 벌이며 다극화하는 양상으로 점차 발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세계 1·2·3위 경제대국들이 제국주의간 경쟁을 벌이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역내 국가들도 군비를 경쟁적으로 늘리며 거기에 가세하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드 배치 문제도 결국 역내에서 경제적·군사적·외교적 영향력을 제고해 중국의 도전을 꺾어 버리려는 미국의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질서가 신냉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세계가 평화롭고 자유롭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열강의 이해 각축으로 세계는 더욱 유동적이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중장기적 미래에 훨씬 더 심각한 위기를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신냉전론에 비판적인 까닭은 그것에 깔려 있는 정치적, 전략적 함의 ― 불안정성 ― 때문이다.


진보진영 일각의 신냉전론 ①: 중국은 제국주의가 아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냉전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이념 대결이었다고 여전히 오해한 채,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신자유주의’·‘제국주의적 패권 정책’과 중국의 ‘대안 경제 모델’·‘패권 견제’가 맞부딪히고 있다고 이해한다.

이런 주장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미국 제국주의를 견제하는 진보적 세력이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다. 진영 논리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군비 증강이 미국 군사력을 견제하는 구실을 한다고 긍정적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냉전’은 미국과 중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 체제가 아니라 “미·중 세력교체기”라는 전환점을 뒤집으려고 미국이 획책하는 전략이나 음모로 보게 된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근 국면으로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이지, 미국 같은 특정 국가로 환원되는 게 아니다. 중국은 자본 축적을 지속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의 위협을 과장해선 안 되지만,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위계 질서 속에서 꼭대기에 도전하는 국가를 두고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중국이 국제 관계에서 진보적 구실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반제국주의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데도 나쁜 영향을 준다. 그리고 한국 지배계급 내에도 중국과 연계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으므로, 중국에 기대를 품는 것은 반제국주의 운동이 반자본주의적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자칫 자국 지배계급 일부와 동맹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진보진영 일각의 신냉전론 ②: 대안은 평화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진영 논리를 받아들이면서도, 동아시아와 한반도가 “신냉전” 구도로 고착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진보진영 일각에 적지 않다. 한반도와 그 주변 질서가 “한·미·일 대 북·중·러”로 굳어지고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묶이면, 남북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 지경에 이르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가 또다시 냉전적 대결의 무대가 될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것이다.

이런 염려의 근저에는 한·미 동맹에 관한 정당한 불신과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염원이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곧장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 실현 등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 신냉전이 고착되기 전에 남북 관계 개선을 이뤄 내야 한반도에서 신냉전 위기가 폭발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남북 관계 개선을 지렛대 삼아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로서 냉전 구도를 해체하고 동북아 다자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섞여 있다.

그러나 국가 간 외교 협상 촉구 같은 요구를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의 요구로 채택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선, 평화협정 체결 등 자본주의 국가들의 외교 협상을 통해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수밖에 없다. 현존 제국주의 체제가 온존하는 한, 그 어떤 형태의 국가 간 협정이나 약속이 맺어져도 동아시아와 한반도 불안정을 항구적으로 억제하지 못한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국가들이 평화 정착의 주체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엄청난 수준의 군비 경쟁을 벌이는 이 국가들은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데다, 2008년 세계 경제 공황 이후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 간의 관계는 이미 매우 악화했다.

국가 간 외교 협상을 촉구하는 데 주력하다 보면, 기존 정당의 정책 자문 구실을 하려 하거나 정부 외교 정책을 견제하는 제도권 야당 구실을 하기 쉽다. 더 나아가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외교적 노력을 제대로 수행할 개혁주의 정부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태거나 아예 그런 정부에 들어가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외교 관계 중심의 접근법을 기피하는 것이다.

맺으며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견해를 개진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중국 정부에 기대거나 외교적 해결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사람들과 실천에서 협력하는 한편, 왜 미국뿐 아니라 중국·러시아도 제국주의 국가이고 우리가 결코 기댈 수 없는 세력인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는 어떻게 체계적으로 연관돼 있는지, 그래서 진정한 평화 운동은 왜 결국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적 노동자 운동과 만나야 하는지를 참을성 있게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