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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이유로 한 차별 금지 조항 담은:
서울대 학생들의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방해 중단하라

9월 7일 서울대학교 하반기 정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서울대학교 인권 가이드라인'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인권 가이드라인'은 서울대 구성원들(학부생, 대학원 학생, 교원, 직원, 연구원, 직간접 고용 노동자)의 '성별,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종교, 장애 ... 등 불합리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해 건강, 가족생활, 개인정보보호, 표현과 결사 집회의 자유, 교육, 연구, 노동, 학생자치 등 20가지 권리를 명시했다.

애초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은 2012년에 대학원생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자 인권센터가 주도해 제정을 준비했으나 세부적 내용을 둘러싸고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의견 차이로 쉽사리 제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 총학생회가 앞장서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학생회들의 의견을 수렴해 '인권 가이드라인'의 일종의 학생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번 전학대회에서 통과된 '인권 가이드라인'은 이후 대학 본부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총학생회는 “본부와의 협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수 있지만, 인권 가이드라인이 선언적 의미를 넘어 구속력을 지닐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종교와 표현의 자유?

그런데 우파 기독교 세력들이 ‘인권 가이드라인’의 차별 금지 조항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포함된 것과 '종교나 표현의 자유 행사가 다른 구성원에 대한 부당한 혐오의 표출이나 폭력이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공격하고 나섰다.

〈기독일보〉와 〈뉴스윈코리아〉는 "서울대에서 인권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교내에서 개인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따라 동성애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하고 반대하는 일이 '폭력' 행위로 금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종교와 양심에 따른 동성애 반대자들이 역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기독교총동문회와 서울대기독교수협의회도 "서울대가 동성애자들의 '인권' 운동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며 "9월부터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을 제지하기 위해 적극적 활동"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두 단체는 9월 21일과 28일에 차별금지법과 인권가이드라인 반대 토론회를 연다. 이 토론회에는 이전부터 ‘동성애반대 대책위원회’ 대표로 활동하거나 기독자유당의 리더이거나 동성애를 에이즈와 연결시키며 혐오를 부추겨 오던 인물들이 대거 발제자와 지정 토론자로 온다.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조장은 ‘종교나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지배계급은 언론과 출판을 자신들 유리한 대로 이용할 수 있고, 자신들의 사상과 관점을 훨씬 널리 퍼뜨리고 교육기관 등을 이용해 강요할 수도 있다. 이런 지배적 사상에 대응하려면 검열 없이 의견과 주장이 활발하게 오갈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게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더 이롭다. 즉, “누구의 자유이고 무엇을 하려는 자유인가”가 중요하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억압을 정당화하는 표현과 행동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할 수 없다. 어떻게 억압이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있겠는가?

또한, 종교의 자유는 국가가 특정 신앙을 강요하거나 탄압하지 말고, 오롯이 개인의 선택으로 두라는 의미다. 종교의 이름으로 혐오를 부추길 자유를 정당화할 순 없다.

성소수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엄청난 제도적 차별과 차별적 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이 때문에 동성애·양성애자 노동자 86.7퍼센트가 직장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고 살아간다(2015년 국가인권위 통계).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 시도율이 일반 청소년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차별” 운운하는 것은 성소수자 혐오론자들의 황당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동성애를 자유롭게 비판하고 반대하는 일”은 ‘표현의 자유’이기는커녕 이 사회의 성소수자 억압을 강화하는 일이기에 용납돼서는 안 된다.

우파 기독교 세력의 이런 황당한 논리가 서울대학교 구성원 대다수에 대한 영향력을 얻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서울대기독교수협의회는 “서울대 내에서 이러한 움직임[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움직임]에 관해 관심을 갖는 그룹은 기독교교수협의회뿐”이라며 한탄했다. 〈서울대 대학신문〉 보도를 보면, 이번 전학대회에 참관인으로 참석한 서울대기독교연합 조예상 대표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기독교 내에서 고민하고 결정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들어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에 반대했으나, 학생 대표자들의 반박이 이어졌고 결국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 조항이 담긴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을 지지한다. 서울대학교 본부는 학생들과 대학 구성원들의 뜻을 반영해 인권 가이드라인이 훼손 없이, 구속력 있게 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