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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기아차:
여성 화장실·휴게실·샤워장 설치하라

최근 김포공항 청소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과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열악한 처우를 주저 없이 폭로하고 성추행 등의 만행에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 투쟁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 기아차에도 나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식당, 차량검사, 도장, 플라스틱, 사무실 등 곳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화성공장에만 9백여 명이나 된다.

이 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다. 특히 화장실을 청소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휴게실도, 샤워장도, 여성 화장실도 없이 매일 곤욕을 치른다.

지난해 말 나는 용기를 내 이런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을 개선해 달라고 대자보를 부착하고 유인물을 뿌리는 등 항의 행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교묘한 탄압을 받으며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장의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를 보내 줘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이를 발판 삼아 올해 초 기아차지부 대의원대회는 여성 노동자 처우개선 사업을 벌이기로 확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측은 내가 일하는 부서(소재공장)의 신축 건물이 완공되면 그 곳에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샤워장, 화장실, 휴게실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조(화성지회) 간부가 신축 건물 도면까지 보여 주며 이를 확인시켜 줬다.

그런데 반년이 넘게 시간이 흘러 소재공장 건물이 완공됐는데, 황당하게도 여성 휴게실과 샤워장은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다. 화장실만 설치된 것이다. 화성공장 전체로 보면, 개선된 곳은 거의 없는 상태다.

지난 여름,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는 동안 기아차 화성공장의 청소 노동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서 샤워는 고사하고, 에어컨도 없는 쪽방 같은 간이 휴게실에서 참고 또 참으며 지냈다.

화성공장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용 화장실 내 한 칸을 여성 화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 기아차 노동자

기초적 요구에 모두 나서야

그런데 막상 신축 건물에조차 편의시설을 마련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사측에 심한 배신감이 들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부·지회 집행부가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여성 편의시설 마련을 위한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이지 않은 것도 실망스러웠다. 사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노조 차원의 공식적인 항의 행동을 조직해야 할 텐데,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기아차는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이다. 사내유보금이 1백12조 원이나 되고, 본사 이전을 위해 한전 부지를 매입하는 데만 10조 원을 썼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주식 배당금으로만 8백23억 원을 챙겼다고 한다. 이런 회사가 지금 몸을 씻을 곳도, 살인적인 더위를 피할 곳도 없는 여성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는 이런 현실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노조가 항의 운동을 건설해 사측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 여성 화장실, 샤워장, 휴게실 설치는 최소한의 근무환경을 갖추고 여성으로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기초적 요구다.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사측에 맞서야 한다.

여러 괴롭힘과 약속 번복이 있었지만, 나는 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내하청 분회와 정규직 지회·지부, 더 많은 동료 조합원들의 지지를 모아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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