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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법정관리:
공공부채 감축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말라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법정관리 중인 한진해운의 아시아~미주 노선 운영권 매각을 결정했다.

미주 노선은 한진해운의 주력 사업 부문으로, 법정관리 직전까지 한진해운은 아시아~미주 항로의 7퍼센트를 차지하며 세계 4~5위에 올라 있었다. 결국 미주노선 운영권 매각이 완료되면, 한진해운은 파산하거나 기껏해야 연근해를 운영하는 중소 해운업체가 될 것이다.

한편, 산업은행이 최대 주주인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미주 노선 인수에 나섰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을 세계 수위의 해운회사로 끌어올리기 위해 자금 투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써 지난해 말 해운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부터 돌던 ‘정부가 양대 해운회사(한진해운·현대상선)를 합치려 한다’는 소문이 현실이 됐다.

물론 이 합병 과정에서 ‘물류 대란’이 정부 예상보다 크게 벌어지고 부산항의 물동량이 줄어들 것이 분명해지면서, 해운·항만업계 자본가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진해운 매출 가운데 한국 상품 수출입 비중이 20퍼센트밖에 안 돼, 법정관리로 가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진해운 선박들이 화물을 내리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바다에 고립돼 있으면서 한국의 국가 신인도 추락을 우려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수출 물량의 40퍼센트와 20퍼센트를 한진해운에 맡겨 왔는데, 부랴부랴 다른 해운회사를 찾느라 운송 비용이 급등하는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부산항 물동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항만업계 자본가들의 불만도 커졌다. 한진해운은 부산항 물량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물건을 내리고 다른 선박으로 옮겨 싣는 환적물량이 한진해운 전체 물량 가운데 절반가량인 1백4만 TEU(1TEU는 6미터짜리 컨테이너 1개)였다. 부산항만공사는 한진해운 환적물량 중 절반인 50만 TEU가 중국 상하이 등으로 옮겨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부산항만업계의 직접적인 피해액만 해도 4천4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국정 우선순위

물론 정부는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을 더 ‘매끄럽게’ 추진할 수도 있었다. 산업은행이 한진해운을 인수해 계속 운영하면서 현대상선과 합병하는 방법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물류 대란’과 부산항의 물동량 감소를 감수하면서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결정했다.

이처럼 예상되는 피해와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박근혜 정부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결정한 것은 공공부채 감축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공공부채를 줄이려면 몇몇 산업에서 피해를 보더라도 기업부채를 공공부채로 막아 주는 것을 최소로 줄여야 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는 앞으로 추가로 진행될 조선업 구조조정과 철강·정유·건설 구조조정 등에서도 기업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신호를 강력하게 주는 것이다.

공공기관 노동자 임금 삭감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2015년에 공공기관 총 부채를 16조 7천억 원 줄이는 등 최근 몇 년간 연속해서 공공부채를 감축한 것이나, 올해 추경과 내년 예산안에서 정부 지출을 최대한 억제한 것도 박근혜 정부가 공공부채 감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얼핏 보면 부채가 훨씬 큰 대우조선해양은 계속 지원하면서 한진해운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해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공공부채가 급증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진해운에 대한 국내 은행들의 익스포저(대출·투자금뿐 아니라 복잡한 파생상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총 손실 금액)는 1조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인 반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익스포저는 22조 원이 넘고 이 중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의 익스포저만도 19조 원이 넘는다. 금융위원장 임종룡은 “대우조선해양이 부도에 이르렀다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일시에 13조 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에 지원되는 자금은 주로 국내에서 사용되지만, 한진해운에 지원되는 자금은 대다수가 해외로 빠져나가게 된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부채 감축을 최우선 순위에 두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법정관리 여파로 이미 한진해운 미주·중국법인에서 4백 명이 해고됐고, 한진해운 본사 노동자 1천4백여 명의 상당수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또, 부산항 물량 감소로 항만업계 노동자 2천3백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구조조정 산업으로 지목된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더욱 완강하게 노동자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고 선박과 설비를 늘려 온 기업주들의 책임을 노동자들이 대신 져야 할 까닭은 없다. 정부가 한진해운 같은 부도 기업을 영구 국유화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라고 촉구하며 싸워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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