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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구조조정:
노동자가 아니라 위기를 낳은 정부와 기업주가 책임져라

11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져 상장폐지에 몰린 대우조선해양에 2조 8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산업은행이 1조 8천억 원을 출자전환 하고, 수출입은행은 영구채 1조 원을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써 정부가 10월 31일 내놓은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추진할 것임이 분명해졌다.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은 빅3 체제(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를 유지하고, 조선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까지 정부 지원 등으로 ‘버티기’를 하겠다는 방안이다.

박근혜의 정치 위기를 이용해 구조조정에 맞서야 한다 10월 29일 거제에서 열린 조선하청 노동자 대행진. ⓒ조승진

이 방안이 발표되자 지배자들(대기업과 고위 국가관료)의 일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며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대우조선을 청산하면 금융권과 협력업체 등에 50조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며 지원해야만 한다는 견해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지배자들 사이의 갈등은 이뿐이 아니다. 정부는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도 공급 과잉 업종이라며 기업 간 인수합병과 설비 폐쇄 등으로 과잉 설비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올 3분기에 포스코는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기며 4년 만에 최대 수익을 냈고, 현대제철은 부채비율을 빠르게 낮추며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렸다. 그러자 철강 설비를 감축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이 힘을 잃고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 석유화학제품의 가격이 오르면서 석유화학 기업들도 합병과 설비 감축에 저항하고 있다.

일부 지배자들은 과잉 설비를 지금 감축하지 않으면 앞으로 감당하기 힘든 피해가 올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다른 지배자들은 중국·일본 등이 설비 감축에 나서고 있으니 조금만 버티면 더 큰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며 반발하는 것이다. 이런 논란은 구조조정 방향을 둘러싸고 지배자들 사이의 갈등이 매우 첨예하다는 점을 다시금 보여 줬다. 이런 갈등이 최근 정치 위기의 한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다.

한 목소리

지배자들은 어느 기업을 죽이고 어떤 설비를 폐쇄할지를 두고 첨예하게 갈등을 빚지만,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고통을 떠넘기는 데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직영 인력을 6만 2천 명에서 4만 2천 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우조선은 지난달 ‘희망퇴직’을 시행해 1천2백 명을 해고하기로 했고, 추가로 3백 명을 추가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분사화로 수천 명을 비정규직화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대우조선 노조에 11월 16일까지 구조조정 수용과 무파업 등을 약속하는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대중공업도 해고와 분사화 등으로 수천 명을 감축하고 임금을 삭감한 데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전자, 건설장비 부문을 분사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추가로 7천~8천 명이 비정규직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조선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조선 하청업체들이 폐업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고 체불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다. 조선회사들은 이 자리를 임금이 더 낮은 단기 하청, 일당직 등으로 채우고 있다.

△조선업 노동자들은 산재 위험과 고용·임금 불안에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조승진

그러나 조선 노동자들은 위기에 책임이 없다. 한편으로 정부는 해양플랜트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우리 산업의 핵심 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조선회사의 저가 수주를 부추겨 위기를 키웠다. 다른 한편, 2004~13년 동안 현대중공업은 23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고, 그룹 총수 정몽준은 3천억 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받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은 별로 늘지 않았다.

그런데 위기가 오자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따라서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고 저가 수주를 늘려 온 정부와 기업주들에 맞서 조선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구조조정에 맞서 매주 한 차례씩 4시간 파업을 하고, 이 투쟁을 박근혜 퇴진 투쟁과 결합하기로 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도 ‘일방적 자구안 완전철폐’, ‘노동자 총고용 보장’, ‘분사 결사반대’ 등을 내세우고 있고, 대우조선 노조도 구조조정 동의서를 거부하고 사업부문 분사와 해고 등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다시금 투쟁에 나설 자신감을 심어 주고 있다. 이런 투쟁이 노동자들의 박근혜 퇴진 시위 참가와 파업으로 발전해 생산을 실질적으로 마비시켜야 기업주와 정부의 공격을 물리치고, 임금과 고용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