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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니 부리는 박근혜, 내분 겪는 여당, 눈치 보는 야당:
12일 이후에도 투쟁은 계속된다

박근혜는 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직후부터 열흘 새 두 번이나 대국민사과를 했다(10월 25일, 11월 4일). 11월 8일에는 국회의장 정세균을 만나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국회가 요구하는 사람을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했다.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던 박근혜가 두 번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계속 아쉬운 소리를 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 때문이다. 물론 늘 그랬듯이 책임 회피와 꼼수뿐인 거짓 사과였지만 말이다.

첫 번째 사과 이후 도리어 국정수행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폭락했다(한국갤럽 2주 연속 5퍼센트). 퇴진(탄핵 포함) 지지는 60퍼센트도 넘어섰다(리얼미터).

무엇보다 여론이 강력한 행동으로 보기 드물게 표출되고 있다. 11월 5일에는 약 20만 명이 광화문 일대에서 밤늦게까지 행진과 시위를 벌였다. 구호는 압도적으로 “박근혜 퇴진/하야”다. 국면 초기 역풍론이 무색하게도 투쟁이 커지고 퇴진 요구를 분명히 하면서 박근혜 지지율은 더 하락했다.

기회 ‘즉각 퇴진’을 목표로 대중투쟁을 강화하려 해야 한다. ⓒ사진 김명진

이 와중에도 새로운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박근혜가 기습적으로 임명하려 한 국민안전처 장관 박승주는 굿판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가 자신은 청와대에서 굿을 한 적이 없다고 굳이 해명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시늉뿐인 검찰 조사에서조차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기업주들이 죄다 ‘삥 뜯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데, 안종범은 기업 대상 모금이 박근혜의 지시였다고 자백했다. 김기춘이 정권 비판 세력 죽이기를 위한 공작 정치를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 자체가 범죄 집단이고, 청와대가 정경유착, 부정 축재의 사령탑이자 몸통인 것이다.

김기춘, 우병우 등 청와대 실세들과 최순실 등 ‘비선 실세’들이 정부 부처와 검찰 등 국가기관들을 움직여 기업들과 특혜를 거래하고 국가 예산을 자신들 호주머니로 옮겼다. 이것은 더한층의 매수와 특권 구축에 사용됐을 것이다. 다급해진 최순실, 장시호(최순실 조카), 차은택 등이 급매로 내놓은 부동산 시세만 5백억 원이 넘을 지경이다.

농단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선에서 한국 정부 예상과 달리 트럼프가 당선했다. 경제·안보 위기(불확실성)가 커지는데, 박근혜가 한국 국가를 다잡아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지 지배계급의 걱정도 커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이미 11월 아펙(APEC) 정상회의에도 불참하기로 했다. 한국 대통령의 불참은 아펙 정상회의 창설(1993년) 이래 처음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수습책을 놓고 여권 전체가 내분에 휩싸였다. 전 당대표 김무성은 박근혜의 탈당을 요구했고, 비박계는 당대표 이정현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서면, 친박이 모두 죽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정현과 친박계는 버티는 중이다. 그러나 ‘최순실을 모르는 게 거짓말’이라고 말한 게 김무성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농단을 알면서도 빌붙어 출세와 특권을 챙겨 온 새누리당 전체가 공범 집단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대구·경북에서조차 민주당에 뒤쳐지기 시작했다. 의원총회에서 서로 쌍욕이 오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정 운영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청와대는 당선 하루 만에 트럼프와 통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야당을 향한 국정 정상화 압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두 주류 야당들은 박근혜의 ‘2선 후퇴’만 요구하며 그에게 시간을 벌어 줬다. 특히, ‘문재인 당’인 민주당은 ‘책임총리’ 방안을 수용해 박근혜의 구원투수가 될 뻔했다.


박근혜는 한 걸음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박근혜 4년의 교훈 중 하나는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과 개인의 개성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계급의식적이지만 욕심과 의심도 많아, 재산뿐 아니라 권력도 측근 실세와만 농단하는 체제를 구축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죄의식도 없다. 그랬다면,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 문제에 그렇게까지 잔인하고 야비하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 공약 파기하고도 그토록 뻔뻔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부정 축재와 공작 정치가 결합된 형태인 이유이고, 기업주들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박근혜를 선택하고 지지한 이유다.

죄의식 박근혜는 천하의 모사꾼이다. 퇴진만이 답이다. ⓒ사진 조승진

그러니 ‘국회가 정해 주는 사람을 총리로 뽑고 내각 통할권까지 주겠다’는 박근혜의 방안도 의심해 봐야 한다. 총리의 내각 ‘통할’은 이미 단어 그대로 현행 헌법에 명문화돼 있다. 결국 헌법상 권한을 총리에게 주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성과연봉제 불법 도입에 앞장선 금융위원장 임종룡을 경제부총리로 임명한 것도 도발이다.

총리에게 내각 제청과 통할권을 주더라도, 대통령이 결제하고 총리 임면권도 갖고 있다.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권한을 회수할 수 있다. 이 방안은 조금도 후퇴가 아니다. 국정 마비 상황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고 분열시켜 보려는 “덫”일 뿐이다. 타고난 모사꾼답다.

사실 두 번의 대국민 사과도 고개는 숙였지만, 기만적이었다. 빼도 박도 못할 사실만 인정했고 자신의 연루 혐의는 축소·부인하며 최순실 개인 비리로 떠넘겼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이제는 잘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국민담화가 오히려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이고, 검찰이 최순실에게 대국민담화를 보여 준 것은 공범끼리 소통하게 해 준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따라서 2선후퇴론, 책임총리론 등 박근혜 퇴진을 전제로 하지 않는 수습책은 아무 의미가 없고 단지 기만일 뿐이다. 즉각 퇴진을 위한 대중 투쟁을 이어가며 강화해야 하는 까닭이다.


주류 야당은 박근혜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박근혜의 뻔한 수작을 덥썩 물으려 한 것은 민주당 현 지도부와 문재인이 내년 대선을 중립적으로 관리할 ‘중립’ 내각 수립에 온통 관심이 가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은근슬쩍 이를 묵인했다.

고통전가, 세월호, 복지 축소, 노동 개악, 사드, 민주적 권리 침해 등 4년 동안 눌려 왔던 대중의 분노가 분출하는 시기에 박근혜·새누리당과 협조해 그 분노를 가로막겠다는 것이다.

국민의당도 안철수·박지원이 서로 역할 분담하며 눈치 보기를 하다가 10일에야 박근혜 퇴진으로 당론을 정했다. 게다가 이 틈에 중립내각 총리 자리를 한 번 누려 보려고 야당의 퇴진 요구에 반대하는 손학규 같은 자들도 있다.

자본주의 야당들은 집권해도 경제 상황 때문에 고통전가 정책을 펴야 하는 처지에서 지금의 운동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기층의 압력 때문에 결국 야 3당 대표가 박근혜 제안을 거절하고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 당 차원에서 참가하기로 결정했다.(야3당 지지율 합계보다 퇴진/탄핵 지지율이 더 높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총궐기에 함께할 것을 민주당에 촉구하고 서울시 차원에서 집회·행진에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좋은 일이지만, 두 야당이 정략적으로, 그것도 이제야 운동에 올라타서는 대 여권 (협상) 압박용으로만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여태까지 뒤통수쳐 온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 거리의 대중 운동도 박근혜를 살려 준 어설픈 수습책에 만족할 것 같지는 않다. 12일 민중총궐기는 근래 보기 드물게 크고 정치적인 시위가 될 것 같다. 이는 운동이 수도권 바깥으로도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12일 집회의 성공은 박근혜를 더 위협하겠지만, 박근혜는 시간을 벌며 반격을 준비할 것이다. 다행히 이후에도 대중 투쟁 계획이 잡혀 있다. 대중의 자력 투쟁이 진짜 해법이다.


좌파가 자기 색깔 드러내지 말라는 주장은 틀렸다

박근혜 퇴진 운동 일각에서는 ‘운동권’(좌파)이 운동에 정치적 길라잡이 구실을 하려 하는 것은 시민의 자발성을 억누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9일 출범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같은 단체들도 시민의 자발성을 보조하는 구실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와 ‘리더십’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를 대중의 자발성 또는 ‘순수 운동’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는 운동주의적 주장이다. 운동의 단결을 위해 정치를 배제하자는 견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 운동의 성격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정권 퇴진 운동이라는 성격상 처음부터 정치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래서 초기부터 민주노총, 노동자연대와 진보연대를 비롯한 정치 좌파, 정의당·노동당·민중연합당 등이 적극적인 일원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초기에 좌파의 주도력이 오히려 대중의 자발성에 부합하고 그것을 더 북돋웠다. 10월 29일 집회가 그 예다. 당시 퇴진 요구를 꺼렸거나, 과단성 있게 행진을 조직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대중의 자발성을 억누른 결과가 됐을 것이다.

책임

온건한 진보 시민단체들도 주류 ‘야당’들과 연결돼 있다. 이 당들도 운동 바깥에서 언론 등 다양한 수단으로 운동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참가자들도 기성 야당들부터 좌파들까지 정치적 주장과 계획에 관심이 크다. 정치적 지도가 필요함을 이해하기 때문에 통일된 구호(“퇴진/하야”), 중앙집중적 행진, 좌파와 노조의 깃발에도 거부감이 별로 없다.

따라서 이 운동의 성공에 일조하려는 정치세력들은 전망과 과제를 내놓아야 한다. 즉, 운동의 성격에 걸맞게 정치적 리더십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다.

이처럼, 정치와 리더십을 배제하자는 주장은 운동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을 떼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공상적이다.

따라서 온건 개혁 세력이 대중의 정서를 확인하고 뒤늦게라도 운동에 합류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무임승차하자마자 막무가내로 운전대부터 뺏으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노동운동과 선명 좌파의 주도력을 제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운동의 주도권을 농단하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 누구나 실천에서 입증 받으며 정직하게 기회를 노려야 한다.

물론 지금 박근혜 퇴진 운동 참가자들 다수가 좌파적 강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래서 좌파는 개방적이면서도 급진적으로 운동을 이끌려고 노력해야 한다.

운동이 더 보편적이 되고 (사회적 내용 면에서) 심화하도록 노동자 투쟁과 연결되는 것도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