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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기업 종속, 돈벌이 교육 심화시킬 미래융합대학 강행 중단하라

고려대학교 당국이 논란이 돼 온 ‘미래융합대학’ 설립을 강행하고 있다.

고려대 내에서 미래융합대학 설립은 학생뿐 아니라 교수들에게서도 큰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런데 11월 초 미래융합대학 기획·추진을 담당 기구인 ‘미래대학추진위원회’가 미래융합대학의 입학 정원을 확보하기 위해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하겠다고 통보하고 '크림슨 컬리지(가칭) 설립(안)'(이하 설립안)을 발표했다.

더 노골적인 산학협력

미래융합대학은 대학 교육을 기업의 필요에 종속시키고,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온 기존의 방향을 더한층 심화시킬 것이다.

고려대 당국이 지난 상반기 발표한 계획을 보면, 미래융합대학은 ‘데이터 융합, 사이버 보안, 금융 인프라, 엔터테인먼트 사이언스, 바이오 인포매틱스, 미래 에너지 환경’ 등 6개의 전공을 가르칠 것이었다. 기업이 바로 써먹기 좋은 이른바 ‘응용학문’들이다. 이번 설립안은 “무학과/무전공”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미래융합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할 커리큘럼에 6개 전공이 모두 녹아 들어 있다.

대학을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는 ‘취업 전문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설립안은 매우 노골적으로 미래융합대학이 산학협력을 위한 단과대임을 보여 준다. 설립안 ‘6장 산학연계’를 보면, 삼성, SK(주), CJ E&M, NHN, 네이버, 다음카카오, 구글코리아 등 대기업들이 미래융합대학과 파트너 관계를 맺을 것이다. “현장실무 경험이 풍부한 기업 및 정부 출신 등 전문 인력을 교원으로 특별 초빙”할 수 있는데, 이들은 전임교원이 된다.

설립안을 보면, 미래융합대학은 독립채산제(회계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형태)로 운영하며 ‘비등록금 회계재원’을 추가 확보할 수도 있다. 설립안은 이것이 "기업들의 교육 투자 적극 유치“를 위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그럴수록 대학 교육 전반에 기업의 입김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려대 당국이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인 ‘프라임 사업’(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육성 사업)에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프라임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자유전공학부 학생회는 미래융합대학이 사실상 “귀족대학” 키우기라고 비판했다. 문턱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설립안에 따르면, 미래융합대학의 등록금은 750만 원이다.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주겠다고 하지만 입학하는 것부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런데다 학생 선발 기준을 보면, ‘1단계 기초심사’에서 학업 성적뿐 아니라 수상경력, 특기 활동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고려대 당국은 정유라 같은 ‘인재’를 입학시키고 싶은 것일까? 높은 문턱 때문에 평범한 노동자·서민의 자녀들이 ‘인재’가 될 수 있는 기회는 훨씬 적을 것이다. 자유전공학부 학생들도 미래융합대학은 “제2의 정유라 만들기” 대학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개혁”에 발맞춘 정책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교육개혁”의 핵심은 “산업 수요 맞춤형”으로 대학을 재편하는 것이다.

그동안 염재호 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왔다. 지난 3월 고려대는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프로그램인 ‘코어 사업’(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에 선정돼 관련 수업을 개설한 바 있다(관련 기사: 인문학을 ‘산업 수요’에 끼워 맞추는 코어 사업 반대한다). 미래융합대학 설립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대학 교육을 ‘산업 수요’에 맞추라는 주문은 대학의 교육과정을 더욱 협소하게 만들고 획일화시키고 있다. 교육에 수익성 논리가 적용될수록, 비싼 등록금에 비해 수업의 질은 떨어지고, 상대평가제 등 학생 사이의 경쟁은 강화돼 왔다. 교직원과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도 임금 삭감이나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래융합대학 문제는 단지 폐지 위기에 처한 자유전공학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려대 학생들과 교직원 전체의 문제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의 “교육개혁”은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혔다. 대표적으로 이화여대에서 최경희 총장이 ‘미래라이프대학’을 추진하다 학생들의 거대한 항의에 직면해 이 계획을 철회해야만 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과의 부패 커넥션(달그닥 훅!)이 폭로되면서 불명예스럽게 사퇴해야 했다.

박근혜가 거의 모든 국민에게 지탄의 대상이 돼 “지금 당장 퇴진”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융합대학 설립은 더더욱 정당성이 없다.

학교 주최 토론회를 두 차례나 무산시키다

자유전공학부 학생들과 교수들은 항의 행동을 벌이고 있다.

11월 10일 분노한 학생·교수들은 학교 측이 주최한 미래융합대학 설립 관련 토론회장 입구를 막아 토론회를 무산시켰다. 11월 15일에 열릴 예정이던 2차 토론회도 학생·교수들의 항의로 또다시 무산됐다. 여기에는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이과대 학생회장, 보건과학대 학생회장, 노동자연대 고려대 모임도 연대했다. 자유전공학부 졸업생들도 동참했다.

2차 토론회 저지를 위해 인촌기념관 입구를 봉쇄한 학생·교수들. ⓒ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학생회

지난 1차 토론회 항의 행동 당시 한 자유전공학부 학생이 울분에 차 “입학생들도 고려대 학생이지만, 재학생들도 고려대 학생”이라고 외치자 미래융합대학 관계자는 “미친놈”이라고 욕설한 바 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 기획예산처장은 매우 수세적인 태도로 토론회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해야 했다.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단호한 항의 행동을 의식했을 것이다.

현재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비민주적 학사행정 대응본부’가 꾸려졌으며 대응본부는 자유전공학부 폐지 반대뿐 아니라 미래융합대학 반대를 분명히 내걸고 있다.

학교 당국은 미래융합대학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