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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대병원·서울대병원 등:
기회를 붙잡아 파업해 승리한 병원 노동자들

박근혜의 위기를 이용해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 11월 8일 파업 거리 행진 중인 을지대병원 노동자들. ⓒ사진 출처 보건의료노조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기회 삼아 일부 노동조합들은 단호한 투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다.

11월 11일 대전 을지대병원 노동자들이 파업 16일 만에 커다란 승리를 거뒀다.

사측은 교섭 당시 ‘파업에 참가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냐’며 할 테면 해보라는 듯이 비웃었지만, 첫날 2백 명으로 시작한 파업 대열은 둘째 날 3백 명, 셋째 날 4백 명으로 급속히 불어났다. 중환자실과 신생아실 등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된 곳을 제외한 병원 업무 전체가 거의 마비됐다. 파업 6일차 노조 소식지에는 “파업 참여자가 계속 늘어나는 바람에 [농성장] 공간이 너무 협소해져서 … 하루 종일 불편하고 힘들어도 … 참을 수 있습니다” 하는 기쁜 소식이 담겼다.

“병원은 공익 사업장이라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된 부분이 있어서 완전히 스톱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외래 파트 조합원들이 전원 파업에 참가했어요. 병동도 10곳 중에 6곳이 완전 폐쇄됐고요. 제대로 돌아가는 병동은 한 곳뿐이었습니다. 파업 막바지에는 재원 환자가 9백 병상 중 2백50명밖에 안 됐어요.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된] 중환자실, 신생아실, 분만실 빼고는 완전히 멈췄다고 봐야죠. 오죽하면 사측이 ‘이렇게까지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할 정도였어요.”(신문수 을지대학교병원지부장)

을지대병원 노동자들은 1998년 사측의 공격으로 노조가 와해된 지 18년 만에 노조 설립에 성공한 데 이어, 첫 파업으로 임금 8.37퍼센트 인상, 체불된 통상임금 3년 4개월치의 50퍼센트 일시 지급, 노조 활동 보장(사무실과 비품 제공, 조합원과 대의원 유급 공가 보장) 등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1998년 노조가 없어진 뒤 우리 임금은 사립대학 병원 중 최하위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임금 불만이 굉장히 컸고 근로조건도 엉망이었어요. 일부 부서에서는 비정규직이 40퍼센트나 되기도 하고요. 의사와 용역 등을 제외하면 전체 직원이 9백50명 정도 되는데요. 오죽하면 지난 3년 동안 6백 명이 일을 그만뒀을까요.”

을지대병원 노동자들은 필수업무유지 제도에도 불구하고 파업이 병원 노동자들에게도 가장 효과적인 투쟁 수단임을 보여 줬다. 특히, 이 파업이 박근혜 퇴진 운동이 분출한 상황과 맞물린 것이 노동자들의 승리에 큰 영향을 끼친 듯하다.

마비

한창 파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박근혜 부패와 퇴진 운동 소식에 파업 소식이 “파묻힌” 것처럼 보여 아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주류 언론조차 ‘정부가 멈춰섰다’고 한 상황이 사측에 끼친 영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 노동 개악을 밀어붙이며 사측이 양보하지 않도록 채근하던 정부가 순식간에 마비되자 사측은 갑자기 버팀목이 사라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게다가 조합원들은 파업 9일차인 11월 4일 처음으로 병원 밖 집회와 거리 행진을 한 데 이어, 11월 8일에는 ‘대전 지역 박근혜 하야 촉구 촛불행진’에 2백여 명이 참가했다. 11월 9일 을지대병원지부 노동자 4백76명이 연명해 박근혜 퇴진 시국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 파업이 박근혜 퇴진 운동과 연결되는 상황은 사측과 정부를 물러서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된 듯하다. 11월 초까지도 “불법행위를 동반한 파업에 대해 법과 사규에 따라 엄정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교섭을 일절 거부하던 사측은 11월 8일 갑자기 태도를 바꿔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때 ‘성과연봉제 도입 없이는 교섭도 없다’며 교섭을 거부하던 보훈병원 사측도 파업 전날 밤 태도를 바꿔 성과연봉제를 제외한 임단협에 잠정합의했다. 보건의료노조 보훈병원 지부는 사측의 성과연봉제 도입 시도에 맞서 11월 10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었다.(제보와 추가 취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보훈병원 사측은 이사회를 통해 성과연봉제를 통과시켜 놓은 상태다. 2016.11.22.)

이보다 조금 앞선 10월 25일에는 고대의료원 지부가 파업 예고로 사측의 임금피크제 도입 시도를 좌절시켰다. 9월 27일에는 서울대병원 노동자들도 성과연봉제 도입 시도에 맞서 파업에 나선 지 18일 만에 사측으로부터 “성과연봉제를 내년까지 도입하지 않는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백남기 농민 사망 항의 투쟁이 승리에 도움을 줬을 듯하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보여 줬듯이 조직 노동자들은 박근혜 퇴진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노동자들은 박근혜의 위기를 이용해 자신들의 고유한 요구도 쟁취해야 한다.

박근혜는 위기 속에서도 핵심 지지 기반을 다시 결집시키려 각종 개악(노동개악, 국정교과서, 세월호 진상 규명 회피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배계급의 다른 일원들에게 자신이 여전히 쓸모 있음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의 각종 개악을 좌절시키는 것이야말로 박근혜의 최종 버팀목도 넘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