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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근혜 무너지다》:
‘기레기’이길 거부한 기자들 이야기

△《박근혜 무너지다》 정철운 지음, 메디치미디어, 300쪽, 15,000원

지난 몇 달간 뉴스나 신문을 보면서 ‘내가 〈내부자들〉 같은 영화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하고 느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입수, 〈한겨레〉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인터뷰, 〈TV조선〉의 최순실 의상실 CCTV 보도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충격적인 특종 보도들이 연쇄 폭탄처럼 터졌기 때문이다. 저녁 8시가 되면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서 “월드컵처럼 뉴스를 보는” 이색 풍경도 펼쳐졌다.

신간 《박근혜 무너지다》는 〈미디어 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청와대에 맞선 기자들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특히 저자는 ‘박근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보수 언론이 이탈하고 분열한 장면들을 흥미진진하게 보여 준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의 최초 실마리는 〈조선일보〉〈TV조선〉이 민정수석 우병우와 검사 진경준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제공했다. 저자는 이러한 보수 언론의 이탈 뒤에는 보수 언론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한 박근혜의 ‘불통’ 스타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저자도 지적하듯 〈조선일보〉는 “권력 무너지는 냄새를 맡”기 전까진 줄곧 “박근혜 정권의 내부자”였다. 상황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최근 박근혜 정권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같이 봐야 한다.

왜 ‘내부자’는 돌변했나

박근혜는 집권 여당의 4월 총선 참패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회복은커녕 집권 여당의 분열은 깊어졌다. 총선 직후 박근혜는 경제 위기와 구조조정을 부각하며 지지율 회복을 노렸지만 구조조정의 속도와 방법, 책임 소재 등을 둘러싸고 지배계급 내 이해 다툼은 거세졌다. 구조조정 대상인 대우조선해양과 구조조정 컨트롤 타워였던 청와대 서별관 회의 사이의 갈등이 한 예였다.

비슷한 시기 〈TV조선〉은 친박이 공천에 개입한 사실과, 넥슨이 민정수석 우병우 처의 부동산을 구입할 때 검사장 진경준이 다리를 놨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조선일보〉는 끊임없는 부패 스캔들과 인사 참사, 유승민 찍어내기, 메르스 사태 등 “상식을 벗어난 일이 거듭되면 공분을 일으킨다”며, 레임덕에 처한 보수 정권의 안정을 위해 박근혜가 자중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근혜와 청와대는 우병우 건을 취재한 기자를 고소하고 그 기자에게 정보를 흘린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공개 비판하며 특별감찰관실을 공중분해시켰다. 〈조선일보〉가 이에 항의하며 나서자 박근혜는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과 대우조선해양 사이의 비리를 맞폭로해 〈조선일보〉의 무릎을 꿇렸다. 저자는 당시 〈조선일보〉 기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고 전한다. 지배계급의 일부이자 권력의 일부인 〈조선일보〉로서는, 자신들이 포장해서 만들어 놓은 정부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니 억울하고 분했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최순실 관련 보도를 멈췄다. 그러나 이 열린 틈을 비집고 9월 20일부터 〈한겨레〉〈JTBC〉가 등장했다. 특히 〈JTBC〉는 최순실 태블릿을 폭로하면서 박근혜가 시정연설에서 꺼내 든 개헌 카드를 묻어 버렸다. 친박은 송민순 회고록을 꺼내 들었지만, 최순실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실이 폭로되고 곧이어 터진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 사퇴로 묻혀 버렸다. 상황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정권의 위기로 치달았다.

박근혜는 한때 자신을 “형광등 1백 개 켜 놓은 아우라가 있다”며 떠받들던 보수 언론과 치고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진실의 틈’이 열렸다. 이는 경제 위기 탈출과 노동자 투쟁 제어라는 사명을 띠고 출범한 보수 정권이 그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채 위기에 빠지자 지배자들이 서로 싸우며 분열한 한 상황의 단면이다.

△정권의 위기와 보수 분열을 보며 대중을 자신감을 얻었다. ⓒ사진 조승진

언론이 싸울 수 있는 동력

한편 저자는 언론이 청와대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응원과 지지 덕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독자들과 평범한 대중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관점은 좋다.

그런데 저자는 퇴진 운동이 벌어지기 전부터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워 온 운동과 그 운동을 건설해 온 세력들에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신 저자는 보수 언론의 분열과 정권의 위기를 SNS 해시태그 운동(‘#그런데_최순실은’)이 키웠다고 본다. 시민들은 “조직과 깃발이 없어도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한 뉴스피드와 좋아요”로 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벌어진 다양한 참여는 퇴진 운동에 대한 큰 관심과 지지의 한 반영이다.

퇴진 운동이 폭발한 출발은 민주노총 중심의 민중총궐기 투쟁 본부가 개최한 10월 29일 집회였고, 민중총궐기는 지난 수년간 이어진 노동개악 반대 투쟁, 세월호 운동, 사드 배치 반대 운동 등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었다. 1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도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다.

2011년 이집트 혁명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SNS 혁명’이라고 불렀다. 시위 과정에 ‘우리 모두 칼레드 사이드(경찰 폭력에 죽은 한 이집트인)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적극 활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이 페이지를 만든 와엘 고님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이집트 혁명을 페이스북 혁명이라고 말하는데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혁명이었습니다. 인터넷이 없었을 때도 혁명은 있었습니다.”

이집트 활동가 기기 이브라힘은 페이스북와 이메일은 예전부터 사용됐지만, 1월 15일 이후 비할 바 없이 큰 규모의 동원이 가능했던 것은 활동가들이 국가 탄압을 피해 리플릿을 반포하고 구호를 외치는 등의 체계적인 노력과 결합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적했다.

SNS의 구실에 대한 과장된 관점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정권 내부자에서 정권 심판자로 돌변한” 〈조선일보〉의 이중성을 속시원하게 비판하고, 퇴진 운동에서 평범한 대중이 한 역할을 강조하는 등 올바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아쉬울 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치명적 치부를 드러내며 무너져 간 박근혜와, 무너지는 권력의 틈을 비집고 신나게 취재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기자들, 언론사들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경쟁과 협력의 에피소드들이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