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이 누구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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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소추 사유’는 … 전혀 사실이 아니고, 그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으며 … 각하 또는 기각되어야 마땅 …
12월 16일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소추 답변서 일부다. 박근혜는 거대한 박근혜 퇴진 여론을 또다시 바보 취급했다.
다른 일당도 대장을 잘 따랐다. 재판과 국정조사 청문회 등에서 최순실, 김기춘, 우병우 등 핵심 실세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잡아뗐다.
이들은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려고 박근혜 헌재 심리와 최순실 등의 형사재판을 연계해 시간을 끌어 보려 한다. 그러나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고 형사재판의 사실 다툼에 종속돼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성과 해고제, 성과 연봉제를 강요하며 피눈물을 흘리게 하던 자들이 정작 자기들이 쫓겨날 때가 되자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물러나라고 하면 되냐’고 한다. 이 꼴을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박근혜가 뻔뻔한 답을 내놓는 것은 시간 끌기뿐 아니라, 자신의 우익 지지층에게 헌재를 압박할 논리와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11월부터 우익 기독교 세력과 접촉해 대형 기도회 등을 촉구했다는 의혹을
따라서 정권 퇴진 운동이 헌재에 조기 탄핵 결정을 압박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박근혜의 대타로 나서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를 이끄는 황교안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더러운 대선 개입 정치 공작
박근혜 정부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고 자본가 계급 전체의 이익을 수호하려고 탄생한 정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그 자체가 적폐다. 이 정부가 온갖 악행을 일삼으면서 내세운 것이 바로 ‘법과 질서’였다. 박근혜의 법치주의는 가진 자들에게서 못가진 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특권과 횡포에 항변하지 못하게 때려잡는, 가진 자들의 주먹이다.
바로 이 법치주의를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시작해 국무총리로서 떠받쳐 온 것이 황교안이다. 따라서 황교안이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부’를 이끄는 것도 그 자체로 박근혜의 적폐다. 퇴진 운동은 황교안과 장관들의 사퇴를 분명하게 주장하면서 싸워야 한다. 야당
야당의 동요
박근혜가 시간을 끄는 동안 황교안은 국정 역사교과서, 사드 배치, 노동 개악, 한일군사정보협정 등을강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협치’를 하자며 야당과의 개별 회담을 추진하는 것도 공작 정치의 재탕이다. 법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헌재소장 박한철의 임기 연장설을 흘린 것도 되치기 시점을 잡으려는 간 보기다. 지난 17일 서울 집회는 전과 달리 무장한 진압 경찰들이 경복궁역과 안국역 등에 전진 배치됐다.
지배계급은 거의 수직으로 솟구쳐 오른 대중 투쟁에 놀라서 우왕좌왕하다가 이제는 박근혜 개인을 제거하는 쪽으로 옮겨가는 듯 보인다. 그런 혼란과 당혹감 속에서도 그들 모두가 동의하는 점이 있다. 대부분 노동계급 성원인 시위 참가자와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힘에 대한 자기 확신을 유지하고 키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폭발적인 거리 시위는
지배계급이 우파 언론을 통해 박근혜 개인의 치부는 계속 폭로하면서도 야당들에 황교안 내각의 안정에 협조하라고 촉구하는 이유다. 대통령과는 달리 황교안은 야당 의원수만으로도 제거가 가능한데도
공식 야당들에게는 우파들과 타협해 공정한 대선 관리 내각이 돼 주는 게 더 중요하기도 할 것이다. 야권 후보들의 단일화를 조율할 시간도 필요하니, 대체로 3월 초로 예상되는 탄핵심판 시계가 더 빨라지는 것도 별로 바라지 않을 수 있다.
야당과의 공조가 우선돼선 안 된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한 번 정점을 찍은 뒤로, 운동 초기에 있었던 지배계급의 부분적 용인이 줄어드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이 운동에도 정치적 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박근혜 개인만을 제거하길 원하는 자들과 박근혜 정권을 제거하길 원하는 더 급진적인 자들 사이의 분화 말이다.
엔지오들은 민주당의 개혁파 정치인들을 밀어 정권 교체를 이루고 싶어하는 자신들 고유의 프로젝트 때문에라도 운동이 이제는 민주당
자본주의 야당들과 계급을 초월한 국민 연합 정권에 참여하길 바라는 자민통계는 거리 운동을 강조하면서도, 야당 비판을 삼가고 그들과 동맹하길 바라는 점에서는 엔지오들과 보조를 맞춘다.
정의당도 민주당과의 연립정부를 염두에 두느라 말을 아끼고 있다. 황교안 사퇴 요구와도 분명한 선을 긋고, 정략적 개헌 논의를 대놓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새만금에 카지노를 유치하려 한 국민의당을 비판한 정의당 전북도당을 중앙당이 견제하는 일도 벌어졌다.
민중의 힘
그러나 진보정치세력이나 노동운동이 한사코 자본주의 시스템을 고수하는 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세운다는 계획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전략이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는 그 수호자들로 하여금 가차없는 착취자·억압자가 되라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 침체가 계속될 것이므로, 진보 세력이 포함된 민주당 정부조차 고통전가 정책을 추진하라는 지배계급의 압력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진보 세력이 그 정부 안에 머물려고 하면, 투쟁 대상에 대한 정치적 혼란을 줘 노동자·민중이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데에 해가 된다.
지금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안에서 이런 전략은 ‘운동의 성공을 위해 야당 지지가 필요하니, 운동의 요구와 수위를 낮추자’는 압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틀린 주장이다.
첫째, 꼭 온건한 주장이 운동의 저변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지금처럼, 박근혜 개인뿐 아니라 그의 정부에 증오심을 갖고 불만과 분노가 분출하는 상황에서는 투쟁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 강력한 거리 운동이
둘째, 대중보다 오른쪽에 있으려는 정책은 패배를 자초하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퇴진 운동의 동력인 거대한 분노와 자신감을 운동이 온전히 표현하지 않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운동 자체가 가라앉고 그렇게 될수록 주류 야당들조차 운동의 요구에 냉담해질 것이다.
벌써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퇴진행동의 온건파들이 야당들을 압박하려고 22일 국회에서 연 “6대 긴급 현안 연내 해결 촉구 토론회”에 주류 야당 지도자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주최측은 야 2당의 원내대표들이 올 것을 기대했는데, 오지 않았다고 불만을 털어 놨다. 운동을 민주당의 집권을 뒷받침하는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대신 정치적 독립성을 추구하며 대중 투쟁 중심성을 유지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힘을 극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