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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선 후보 청년실업 정책:
공공 일자리 늘리고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 줄여서 청년실업 해결하라

장기 불황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공식 통계를 보면, 지난해에는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실업자가 1백만 명을 돌파했으며, 실업률은 3.6퍼센트로 지난 6년간 가장 높았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9.8퍼센트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론 이 수치조차도 현실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 실업 통계는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구직 활동을 4주간 하지 않으면 실업자가 아니라 ‘비경제활동인구’로 포함된다. 그리고 일주일에 1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된다. 그래서 ‘불완전 취업자’나 취업 준비 중인 사람 등까지 포함하면 체감 청년 실업률은 22퍼센트가 된다(통계청, 〈고용보조지표3〉). 하지만 이조차도 과소평가된 수치라는 주장이 많다. 많은 연구자들은 실질적인 청년실업률이 적어도 30퍼센트대라고 추정한다.

우익들은 ‘귀족 노동자가 일자리를 독점해서’ 청년실업이 생긴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청년 실업률의 고공행진은 전체 실업률이 상승하는 상황의 일부이다. 인력을 줄이기 원하는 자본가들이 우선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청년실업이 유독 높은 것이다.

또,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것도 청년 실업률이 유달리 높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저질·비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한 경력은 때로는 ‘낙인’이 돼 더 괜찮은 조건으로 취업하기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 구직자들은 취업 준비에 상당히 긴 시간을 쏟아붓는다. 따라서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전체 실업 증가와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라는 더 넓은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 최근 몇 년 동안 실업 문제는 조금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는 경쟁적 축적에 기반한 체제이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노동비용을 절감하려고 애쓰고, 그 과정에서 기계와 자동화로 노동자들을 대체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과정을 ‘자본 구성의 고도화’로 인한 ‘산업예비군’의 증가라고 불렀다.

다수의 자본들이 더 많은 이윤(잉여가치)을 얻으려 경쟁하는 자본주의에서 실업 발생은 예외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경기가 호황이면 전체 생산 자체가 확장하므로 생산구조가 바뀌더라도 실업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경제는 2008년 위기 이래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불황이 지속되는 시기에는 설비 투자가 줄어들고, 설비 가동률도 낮아져 일자리가 감소한다. 최악의 경우, 구조조정으로 기존 취업자들마저 실업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청년 창업이 대안이라고?

그런데 주요 대선 주자 중 상당수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시장’에 맡기려 한다.

바른정당 유승민은 ‘돌발노동’ 제한, 초과근로시간 제한 등을 얘기하고, 재벌이 일자리 창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청년 일자리 대안은 창업 전선에 뛰어들라는 말이었다. 그는 “노량진 고시원이 모두 스타트업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자리의 원천은 창업밖에 없”으며, “일자리는 시장에서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 주자 중에서 가장 대담하게 우클릭을 하고 있는 안희정도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문재인을 공격하면서, “세금 떨어지면 그 일자리도 없어진다”, “시장과 기업의 영역에서” 일자리 창출이 가장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도 “새로운 투자를 원활하게 만들어 일자리를 늘도록” 하는 법이라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옹호한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청년 고용을 늘리는 데 별다른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은 국제적 실증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됐다.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조건의 후퇴와 불평등의 심화를 낳는다는 점은 이제 거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안희정은 반동적이게도 비정규직법을 ‘고용 대책’의 일환으로 둔갑시키면서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도 대동소이하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어차피 기존 일자리 다수가 사라질 것처럼 말한다. 따라서 “청년 창업 열기”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학자 딘 베이커가 지적했듯이, 실업은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 엘리트들이 소득 불평등의 심화를 기술 발전과 같은 비인격적 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쉽지만, 사실이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AI·로봇공학의 발달을 과장할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요구를 내팽개치기 위한 정치인들의 미사여구일 뿐이란 것이다.

역대 최고 청년 실업률 청년들의 '눈높이'와 '귀족노동자' 탓하지 말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라. (노량진 고시 학원 계단을 바삐 오르는 한 청년.)

공공 일자리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

보수 성향 대선 주자들의 일자리 정책은 잘해 봐야 무책임하고 대개는 해악적이다. 게다가 공상적이기까지 한데, 세계적으로 낮은 이윤율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상황이라서 신생 자본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과 달리 청년 실업은 시장 영역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시장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일자리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기업들이 인력을 충원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한국의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은 OECD 평균인 21.3퍼센트에 한참 못 미치는 7.6퍼센트밖에 안 된다. 부족한 여러 사회서비스 인력만 충원해도 공공부문 일자리를 갑절로 늘릴 수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연평균 2천 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법정 연장노동 한도(주 52시간)를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자는 3백45만 명이며, 과로사 기준인 주 60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노동자만 1백13만 명이나 된다. 초과노동 포함 주 48시간 상한제를 적용하면 일자리를 1백1만 개 이상 늘릴 수 있다.

또,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 총액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금이 삭감되면 임금 부족을 메우려고 많은 노동자들이 초과노동이나 ‘투 잡’을 선택하는 쪽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 이런 노동시간 단축은 실업을 해결하기는커녕 역효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과 이재명

이와 유사한 요구를 내놓은 주요 대선 후보로는 문재인과 이재명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은 자신의 일자리 정책이 “비상 경제조치 수준의 특단의 대책”이라고 큰소리 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주 52시간을 상한선으로 삼고, 연차휴가를 다 쓰게 해서 일자리 5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데, 임금 보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81만 개를 만들겠다면서도 그 재원은 노동자도 분담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게다가 문재인 대선 캠프의 핵심 인물인 송영길은 이조차도 “메시지가 잘못 나갔다”고 비판하면서 시장의 구실을 강조했다. 이처럼 문재인 역시 자본가들을 자신의 기반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제한적인 개혁조차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적폐 청산 공정 국가’를 슬로건으로 걸고 있는 이재명은 문재인보다는 나은 점도 있다. 그는 노동운동이 지난 몇 년간 요구해 온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내놓은 기본소득 공약은 노동계급 청년들의 고통을 미약하게나마 경감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재원에 대해 함구하는 문재인에 견줘, 법인세 인상과 ‘슈퍼리치 증세’를 주장하는 것도 분명히 나은 측면이다. 그럼에도 노동시간 단축 등에 대해 문재인과 큰 차별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노동 프렌들리’를 천명한 정의당 심상정은 아직 일자리 공약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많지 않다. 다만 지난 총선 때 정의당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주류 야당 정당들보다 훨씬 나았음을 고려할 때, 그의 일자리 공약이 여야 주류 정당들보다 훨씬 담대하고 효과적인 정책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덧붙여, 아무리 대단한 일자리 정책들이 약속된다고 한들,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에게 경제 위기의 비용과 고통을 전가하려고 벼르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이 없이는 실질적인 개혁을 성취하긴 어렵다. 어떤 사람이 대선에서 승리하든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노동자 투쟁의 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