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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성별 임금격차 100:64:
왜 이토록 불평등한가? 어떻게 싸워야 하나?

올해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노동자들은 고질적인 남녀 임금격차를 해소하라고 요구하며 행진한다. 2016년 8월 기준, 여성의 월 임금총액 평균(1백76만 원)은 남성(2백85만 원)의 61.7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최근 발표된 OECD 자료를 보더라도, 한국은 OECD 중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64퍼센트)다. 이 격차는 16년째 변함없다.

109주년 세계여성의날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 "3월8일 3시 STOP"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여성의 낮은 임금이 그저 개인의 능력 차이를 반영한다며 임금 격차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여성의 능력이 남성보다 뒤처진다는 근거는 없다. 오히려 2009년 이래로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남성을 앞지르고 있고, 여성의 각종 고시 합격률도 증가하고 있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진출도 계속 증가 추세이다. 이런 변화 때문에 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는 드높지만, 변함없는 저임금과 높은 육아 부담 때문에 여성들의 분노가 깊어지고 있다. 여성이 저임금 일자리를 ‘선호’한다는 말이 가당찮은 까닭이다.

남녀 임금격차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성차별의 결과다. 고용주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고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한다. 특히, 이들에겐 잘 교육받고 건강한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길러내는 일이 매우 중요한데, 그 막대한 부담의 대부분을 여성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사활적으로 큰 이익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게 되는 근본적 배경이다.

여성이 임신과 육아를 시작하는 30대 이전까지는 고용률, 임금, 비정규직 비율 등 모든 측면에서 남성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육아기를 거친 후 모든 게 달라진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2016년 경력 단절여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전히 기혼 여성의 절반가량이 임신, 육아, 가족 돌봄 때문에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경력 단절 후 재취업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8.3년이나 됐고, 경력 단절 후 임금은 27만 원가량 줄었다. 경력 단절 경험이 있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월 임금이 무려 76만 원이나 적었다.

경력 단절 후 여성 노동자들이 구할 수 있는 일은 흔히 비정규직이고, 이는 저임금의 원인이 된다. 여성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여성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2016년 54.5퍼센트). 그리고 2016년 현재 비정규직의 월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기혼여성 중 ‘경력 단절 후 첫 일자리가 시간제’인 비중이 3년 전에 비해 곱절이나 늘었다. 이것은 박근혜 표 적폐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의 결과로 2002년 5.9퍼센트에 그쳤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2016년에는 무려 12.7퍼센트로 급증했다. 시간제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총액은 71만 원으로 정규직의 24퍼센트에 불과하다. 시간제 확대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의 심각한 걸림돌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으로 여성들은 더욱더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2016년 여성일자리박람회.

성별 직종분리 현상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여성이 집중된 직종이 존재하고, 이런 직종의 임금 수준이 대체로 낮다. 여성 집중 직종이 실제로 하찮고 주변적인 일이어서 임금이 낮은 게 아니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성차별적 편견이 이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자본가들은 자신이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반찬 값이나 벌러 나온’ 것인 양 취급하며 임금을 후려치는 것을 정당화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여전히 쟁취해야 할 요구

여성들은 동일 사업장 내에서 같거나 유사한 일을 해도 임금 차별을 받는다. 1989년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요구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포함됐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온갖 방식으로 이를 무력화해 왔다.

여성 노동자들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실제 구현되려면 여행원제·여사원제와 같은 성별분리호봉제가 폐지돼야 한다고 요구했고, 여행원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 후에도 기업주들이 여성 노동자 임금은 올리지 않고 남성 신입사원의 초봉만 삭감하는 꼼수를 쓴다든지, 인사제도의 이름만 바꿔 임금·승진 차별을 지속했다. 2000년대 들어서 금융권에 도입된 분리직군제는 여행원제의 부활이라 할 수 있다. 이 분리직군에 속한 노동자들의 압도 다수가 여성이고, 분리직군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슷한 업무를 하지만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는다.

대기업인 효성의 울산공장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과 똑같은 공정에서 일하는데도 임금이 남성의 60퍼센트밖에 안 되는 현실을 폭로하며 소송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결국 기업주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의 역사를 보더라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소송에서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승소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주들이 분류만 조금 바꿔 ‘다른 일’이라고 우기면 그만인 것이다.

박근혜가 생색내는 공공기관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화’도 그 실체는 무기계약직으로 만들어 임금과 승진 차별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 역시 동일노동 동일임금법을 회피하는 것이다.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달리 ‘보조’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는 일이 거의 같거나 기존에 정규직이 하던 업무를 분류만 ‘보조 업무’로 바꾸는 식일 뿐이었다. 이 밖에도 KTX 여승무원의 사례처럼, 남성 정규직과 유사한 일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간접고용으로 돌려 동일노동 동일임금법을 회피하는 일도 흔하다.

직무급제는 임금격차 해소의 대안이 될 수 있나? [i]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일부는 오랫동안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라고 여겨 왔다. 이들은 한국 자본가 계급이 없애고 싶어 하는 연공급제가 노동자들의 처지에서도 문제가 된다고 본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는 고용이 안정적인 남성 노동자에게나 해당되기 때문에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의 일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공정한 직무 평가를 통해 차별을 줄이자는 취지가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직무급제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성과급과는 그 내용이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의 대안에는 몇 가지 난점이 있다. 정부와 기업주들은 “직무 가치의 공정한 평가”를 통한 여성 차별 해소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해 전체 노동계급의 조건을 하향평준화하는 데만 관심 있을 뿐이다. 결국 직무급제는 기존의 여성 차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데만 이용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운동 일부가 제시하는 직무급제 논의는 대체로 대기업·정규직·남성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무급제로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하락하더라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이들이 제안하는 직무급제는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대안이 되기가 어렵다.

직무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이 자동으로 평등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직무 평가의 칼자루가 고용주들에게 쥐어져 있는 한, 그들은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직무급제를 이용할 수 있다. 분리직군을 만들어 동일한 업무가 아니라면서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고, 직무능력과 성과에 따라 개인별로 ‘평등한’ 임금을 주겠다며 임금 삭감의 명분으로 삼는 식으로 말이다. 설사 노조가 직무 가치 평가를 위한 협상테이블에 포함될 수 있다 해도, 차별 제거의 진정한 동력은 협상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 사이의 힘 관계에 달려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근거로 직무급제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노동운동의 또 다른 일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실제로는 차별 구조를 정당화하고 정부의 임금체계 개악에 이용될 뿐이라며 이 요구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이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 위에서도 살펴봤듯, 고용주들은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의 무기를 악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 자체를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목욕물 버리다 애까지 버리는 격이 될 수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여성만 임금이 적다든지, 비정규직만 근속과 수당, 사회보험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든지 등의 명백한 차별에 맞서 동일한 처우를 요구하는 것은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를 위한 것으로 지극히 정당하다. 이런 차별 반대 투쟁을 할 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투쟁의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법률이나 사측이 제시한 ‘동일노동’의 기준을 그대로 따를 순 없다. 국제 노동자 투쟁의 경험을 보면, 강력한 투쟁이 있을 때만 노동자들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1970년 남성 임금의 63퍼센트(딱 현재 한국 수준)였던 영국 여성의 임금이 크게 오른 것은 1969년~1975년 노동자 투쟁 고양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동일임금 쟁취 투쟁을 벌인 덕분이었다. 당시 포드 재봉공들의 동일임금 파업을 비롯해 수많은 동일임금 파업이 벌어졌다. 이 투쟁은 3주 동안 포드 자동차 생산을 완전히 멈추면서, 여성 임금을 남성의 92퍼센트로 올렸다.”(김하영, 《임금, 임금격차, 연대》, 2016)

한편, 성별 직종분리로 인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는 이제 별로 소용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성별 직종분리가 여전히 심해서 같은 사업장 내에서 일하지 않거나 일의 종류 자체가 달라 ‘동일성’을 평가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남성 노동자의 직무 가치와 여성 보육 교사의 직무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누가 무슨 기준으로 직무 평가를 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같은 사업장 내에서 같거나 거의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 명백한데도 임금 차별을 당하는 현실이 공존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과 분리된 작업장에서만 일하지는 않는다. 사무, 금융, 공공서비스, 제조업 등 꽤 광범한 영역에서 남성과 함께, 유사한 일을 한다. 따라서 성별 임금격차 문제를 성별 직종분리 문제로만 환원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여성 집중 직종의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는 요구도 필요하고, 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을 차별 받을 경우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함께 요구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의 투쟁 잠재력

여성이 차별의 결과로 저임금 일자리에 많이 편입됐다 해서 여성 일자리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데서 덜 중요한 주변적인 일자리라는 뜻은 아니고, 스스로 싸울 능력이 없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은 단지 희생자가 아니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스스로 투쟁할 능력과 잠재력이 있다. 임금격차는 고질적이지만, 여러 천대와 어려움 속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해 임금 인상을 쟁취해 왔다. 청소, 학교 비정규직, 마트 등 곳곳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맞서 투쟁해 성과를 거둬 왔다.

한편, 여성운동 일부에서는 여성이 저임금 직종에 집중돼 있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아예 성별에 따라 노동시장이 분절돼서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이 단결하기 어렵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 내에 격차가 있을지라도 이것이 고정불변인 것도 아니고, 이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단적으로, 박근혜 정부 하에서 대기업·공공부문·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은 연금 삭감, 성과연봉제, 퇴출제 등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은 집단이었고,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연장노동을 밥 먹듯 하며 살인적 노동시간으로 고통 받는다. 이들의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고, 사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자본주의의 경기 변동 때문에 모든 노동계급은 불안정성을 겪는다.

또한 남성 노동자가 여성에 견줘 상대적으로 더 나은 처지라 할지라도, 노동계급 남성이 여성의 저임금과 차별 대우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여성 차별은 계급 분열의 효과 때문에 남성 노동자 전체에게 해롭게 작용한다. 여성의 저임금은 남성의 임금 인상을 제한하기 위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여성이 저임금 일자리에서 고통 받으면 그의 남성 가족도 생계 유지에 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임금에 대한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집단의 임금 추이를 봐도 알 수 있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 보면, 최근까지도 여성과 남성 임금은 (비록 격차는 있지만) 동반 등락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은 흔히 남성 조직 노동자들의 연대와 지지를 받았고, 바로 이런 단결된 투쟁 속에서 성차별적 편견이 도전 받기도 쉽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나은 남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면서도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을 지지한다면,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성별 임금격차를 낳는 또 다른 주요 요인 하나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낳는 과중한 육아부담인데, 이 역시 단결된 투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국공립보육시설 대폭 확충, 육아휴직 확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과 같이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 모두에게 이로운 요구를 내걸고 단결해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


[i] 아래 두 절은 김하영, 《임금, 임금격차, 연대》(노동자연대), 2016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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