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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
여성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주력부대다

1908년 3월 8일 뉴욕 럿거스 광장에 모인 미국 여성 노동자 1만 5천 명이 소리 높여 외쳤다. “우리는 빵과 장미를 원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작업조건과 임금 인상(‘빵’)과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표할 권리(‘장미’)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109주년 세계여성의날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 "3월8일 3시 STOP"

1910년에 열린 국제 사회주의 회의에서 독일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클라라 체트킨은 뉴욕 여성 노동자들의 감동적인 투쟁이 벌어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삼아 매년 기념하자고 제안했다.

오늘날은 누구나 ‘여성의 날’을 기념한다. 박근혜 정부의 여성가족부나 자유한국당(새누리당)도 기념할 정도다. 심지어 기업들은 이날을 상품 판매 기회로 삼는다. 그러나 여성의 날의 기원은 착취와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날이다.

박근혜 퇴진 집회 때 자유발언대에서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서민들은 배추 한 포기가 비싸서 들었다 놨다 하는데, 순실이랑 박근혜는 수백억을 들었다 놨다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오늘날 여성들 사이의 뚜렷한 계급 격차를 드러냈다.

최순실 일가의 재산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2천억 원이다. 독일 수사기관은 최순실의 차명재산이 10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본다. 허리띠 졸라매며 평생을 모아도 1억 원을 손에 쥐기 힘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금액이다.

박근혜 대리인단이 “연약한 여성” 운운하면서 부와 권력을 누려 온 박근혜를 비호한 것은 정말이지 열불나는 일이다. 박근혜가 임기 내내 대다수 여성들의 삶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박근혜 정부 하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박근혜 정부는 여성 고용률 끌어올리기에 중점을 뒀지만, 겨우 1~2퍼센트 상승에 그쳤을 뿐이다. 여전히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55.7퍼센트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61.1퍼센트)을 밑돌며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여성 비정규직 비율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 노동자의 절반 넘는 수가 비정규직이다. 여성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며 일한다.

이 때문에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관련 기사: 여전한 성별 임금격차 100:64 ― 왜 이토록 불평등한가? 어떻게 싸워야 하나?)

육아 부담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 현상도 여전하다. 출산이나 결혼 경험이 있는 25세~59세 여성 두 명 중 한 명은 경력 단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 단절 기간이 짧아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경력 단절은 여성의 고용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출산·육아기 이후 여성이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하려 할 때 제공되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일-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하겠다면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것은 시간제 일자리 양산이었다.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고 출산율도 높이겠다는 목적이었다. 전체 노동계급의 노동조건을 떨어뜨려 착취율을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시간제 일자리는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일자리다. 시간제 노동자 10명 중 4명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는 경력 단절 상태인 여성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한다고 발표했다(‘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같은 조사에서 경력 단절 여성들은 시간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육아”와 “자녀교육”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 시설이 있고,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된다면 여성들이 시간제로 내몰릴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박근혜는 ‘무상보육’ 공약을 후퇴시키고, 누리과정 예산도 지역 교육청에 떠넘겼다. 지난 10년 간 80조 원을 투입했는데도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이 늘지 았았다고 불평하면서, ‘비취업맘’에게 전일 보육을 지원받을 권리를 빼앗았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규제를 완화해 민간 보육 시설 공급을 확대하고 보육 시장화를 확대했을 뿐, 질 좋은 공공 보육 시설을 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육 시설 운영을 민간 업자들이 맡다 보니 보육의 질이 보장되지 않았다. 특히 보육의 질과 직결되는 보육 교사 처우가 개선되지 않았다. 국공립 보육 시설 비율은 10년 넘게 제자리 걸음이어서, 부모들은 국공립 보육 시설에 들어가는 걸 ‘로또’ 당첨으로 여긴다.

그밖에도 노동개악, 민영화, 연금 공격 등 박근혜가 기업주들을 위해 추진한 모든 정책들이 여성 노동계급의 삶을 더한층 위태롭게 만들었다.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공격해 온 박근혜가 있어야 할 곳은 감옥뿐이다.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러나 노동자들이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학교 비정규직, 마트, 대학 청소 등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조직화해 투쟁을 벌였고, 여성 비율이 높은 보건의료 노동자들과 전교조도 각각 민영화와 연금 개악에 맞서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싸웠다.

무엇보다 켜켜이 쌓인 이런 불만들은 1천4백만 명이 참가한 박근혜 퇴진 운동으로 분출했다. 여성들은 퇴진 운동의 중요한 일부였다.

적폐 청산

이제 이 운동은 ‘제1의 적폐’ 박근혜 탄핵 심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 하는 대중의 염원이 실현되려면, 박근혜·황교안 퇴진뿐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적폐에 맞서 싸우는 데로 운동이 심화해야 한다.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얻은 자신감을 밑거름 삼아 남녀 노동계급이 고유의 의제와 투쟁 방식으로 싸울 수 있도록 고무하고 지지해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 반대, 노동개악 철회 등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개악들을 되돌리기 위해서뿐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 창출,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인상, 국공립 보육시설 대폭 확대, 출산·육아휴직 실질화 등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고스펙 여성의 눈높이가 저출산의 원인이라고?

여성은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저출산을 해결하겠다고 내놓은 여러 대책들 중에는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 의무가 있는 양 전제한 것들도 있었다.

얼마 전, 국책연구원인 보건사회연구원은 출산율을 높이려면 고스펙·고학력 여성의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내용의 황당한 보고서를 냈다. 그전에 행정안전부는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들어 올리는가 하면, 보건복지부는 낙태 처벌을 강화하려고도 했었다.

이런 것들은 미래 노동력 부족에 대한 지배계급의 우려를 반영한 것인 동시에,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은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결혼·출산은 오로지 여성 개인의 선택이어야 한다.

정부와 주류 정치인들, 언론들은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인 양 떠들어 댄다. 그러나 출산율 하락에는 교육 기회와 노동시장 진출 증가로, 여성의 사회적 성취 욕구가 높아진 것이 반영돼 있다. 젊은 여성들이 평생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희생하기를 거부하고 주체적 삶을 살겠다고 하는 건 좋은 일이다.

또한 저출산에는 양육 부담 등 경제적 문제들이 결합돼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일자리와 실질임금 하락, 치솟는 물가로 ‘나 하나 건사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시궁창 같은 이런 현실을 더 악화시켜 온 정부가 저출산을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니 욕지기가 솟는 것 같다.

양육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전면 책임지는 사회, 그리하여 양육 때문에 여성이 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때 여성은 진정한 선택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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