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5촌 살인 사건과 배후를 둘러싼 의혹들
〈노동자 연대〉 구독
북한 김정남 살해 사건 이후 ‘박근혜 5촌 간 살인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원한에 의한 친인척 살인 사건’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한
경찰은 박근혜의 5촌 조카인 박용수가 평소 자신을 무시하고 돈을 갚지 않던 박용철
그러나 주진우 기자와
박용철은 몸무게가 1백 킬로그램이 넘는 전직 유도 선수이고 용의자 박용수는 훨씬 체구가 작은데 박용철의 시체에서 별다른 방어흔이 발견되지 않은 점, 수차례 칼로 찌르고 둔기로 머리까지 가격해 죽인 방법이 전문가의 솜씨로 보인다는 점, 두 사람에게서 모두 졸피뎀
육영재단은 부동산 자산만 수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 계속됐다. 박근혜가 1982년 이사장으로 취임했지만 최태민이 모든 운영을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1990년에 박근혜의 동생들인 박근령과 박지만이 최태민의 비리를 문제 삼으며 들고일어나 박근혜가 이사장에서 사퇴하고 박근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박근령이 신동욱과 결혼하면서 재단의 운영권을 둘러싸고 박지만과 박근령의 갈등이 불거졌다. 급기야 2007년 11월에는 조직폭력배까지 동원된 폭력 사태가 벌어진 뒤, 박지만의 승리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박용철이 핵심적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동욱은 박용철이 요청해 중국으로 떠났다가 살해 위협을 받고 도망쳐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 후, 이 사건의 배후에 박지만이 있다고 주장했고, 박근혜의 묵인 하에 육영재단 강탈이 이뤄졌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됐다.
그런데 법정 증언을 20여 일 앞두고 박용철이 돌연 살해된 것이다. 박용철이 살해되고 난 뒤 증거 자료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는 그의 휴대폰이 사라진 것도 수상한 점이다.
실제로 박용철은 법원에 파일을 제출하겠다고 한 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 늘 경호원들을 대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2년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는 박용철을 경호했던 황 모씨가 라면을 먹다 천식으로 돌연 사망해 또 다른 의문을 남기고 있다.
박근혜가 임명한 경찰청장 이철성은 여전히 새로운 증거가 필요하다며 재수사를 거부하고 있다. 석연치 않은 죽음을 둘러싼 새로운 증언들과 의혹들은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