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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악한 처지 강요하는:
계절 이주노동자 제도 전면 시행 중단하라

정부가 계절 이주노동자 제도를 전면 확대 시행하려 한다. 법무부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이번 달 13일부터 전체 지방자체단체를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2015년부터 일부 지역에서 농·어업을 대상으로 이 제도의 시범사업을 실시해 왔다.

기존의 고용허가제 아래에서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특히 열악했다. 기숙사라며 비닐하우스가 제공됐고 그 비용을 임금에서 강제로 떼였다. 게다가 이주노동자들은 폭언과 폭행, 성희롱과 성폭행, 불법파견 등으로 고통받아 왔다.

기존에도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라고 제공받으며 그 비용까지 떼여 왔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 시행은 그들의 처지를 더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체류 기간이 3~6개월로 제한되고 사업장 이동 역시 불가능한 계절노동자 제도를 확대 시행하면 가뜩이나 열악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처지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시범사업을 실시한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0시간씩 일하고도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 심지어 90일 동안 하루도 안 쉬고 일하고도 월 1백60만 원을 받은 사례도 있다.

농축산·어업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근로기준법의 허점 때문에 근로계약서에는 근로 시간도 명시되지 않았다. 아예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체류 기간이 90일에 불과해 건강보험 가입도 불가능하다. 산재보험 가입은 권장 사항에 그칠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관심은 노동조건 개선이 아니라 미등록 체류 방지에 있다. 미등록 체류를 막겠다며 내놓은 대책들이 정말 가관이다.

법무부가 각 지방자치단체들에 배포한 ‘계절근로자 도입 의향서 작성 요령’을 보면, 미등록 체류 방지 목적으로 계절 이주노동자의 출신 지역 지방정부에게 우리 돈 1천6백75만 원에 달하는 담보를 제공하게 한 괴산군의 “불법체류 예방” 대책 사례가 버젓이 적혀 있다. 계절 이주노동자의 출신 지역 지자체에게 감시 인원을 파견하도록 한다는 예시, 한국에 있는 결혼 이주민의 친인척 자격으로 계절노동자로 선정된 경우 미등록 체류 방지 서약서를 그 결혼 이주민에게 받는다는 예시도 있다. 가족끼리도 감시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강원도 양구군에서는 임금의 80퍼센트를 중개인에게 줬다가 출국할 때에야 이주노동자에게 지급하고, 심지어 군청이 여권을 압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역 언론에 됐다.

정부는 계절노동자 제도를 시행하면서, 미등록 체류 발생률에 따라 다음해 계절노동자 배정 숫자를 정하도록 해 각 지자체들이 계절 이주노동자들을 감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등록 체류 발생의 책임은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에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3개월 동안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는 왕복 교통비조차 벌기 어려울 것이다. 짧은 체류 기간 탓에 언어와 한국의 제도에 익숙지 않은 계절노동자들이 열악한 조건을 문제제기하지도 못하고 미등록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크다.

정부는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노동력 수요 때문에 계절노동자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지만 정작 시범사업 기간에 3개월이었던 체류 기간은 최장 6개월까지 늘어났다. “계절근로자”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그나마 3개월이 되면 1개월 동안 본국에 돌아갔다 와야 3개월을 더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업종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법무부가 발표한 도입 업종을 살펴보면 제조업이나 다름 없는 공장식 시설재배나 식품가공업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이 제도에서 “어업”으로 분류된 업종들은 고용허가제에서 제조업으로 분류되는 업종들이다. 그러므로 다른 제조업이나 관광업, 건설업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

요컨대 이주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면서도 “계절적” 수요라는 명분을 들어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의 매우 유연한 노동력을 기업주들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하려는 것이다. 이는 숙련도 등에 따라 더욱 세분화하고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자 도입 정책을 개편해 착취와 억압을 강화하려는 계획의 일부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계절노동자는 가장 밑바닥의 노동자 층을 이루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경기변동이나 업황, 단기적 수요 변화에 따라 기업주들의 노동력 수요는 늘거나 줄 수 있다. 이런 변덕에 노동자들이 내맡겨진다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노동자 계층이 확대되면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는 압력으로도 이용될 것이다.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나 기존의 노동자 모두에게 해로운 계절노동자 제도 도입은 중단돼야 한다. 또한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이 생겨나면 제도 폐지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함께 투쟁하고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