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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꺼운 안희정의 보수 환심 사기

안희정은 민주당 대선 주자들 중 가장 오른쪽에 서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효과로 원심력이 커진 중도 보수층을 얻기 위해 민주당은 우클릭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집권까지 했던 기성 정당으로서 퇴진 운동 국면을 슬슬 정리해 정치 체제의 안정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차기 집권을 예상한다면,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활성화되는 게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 중 가장 오른쪽에 안희정이 있다. 안희정은 “탄핵 후 대연정으로 국론을 통합”해야 한다고 한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도 “개혁 과제에 동의한다”면 연정 대상이라는 것이다.

안희정은 민주당이 집권해도 여소야대 정부이므로 개혁 과제를 실현하려면 새누리당을 포함하는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지금도 민주당 의석이 절반을 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 국면에서 어떤 법 하나도 통과를 못 시키고 있다”고 짐짓 현실주의를 가장한다.

안희정은 ‘개혁에 동의한다면’이라고 전제 조건을 달았다고 변명하지만 새누리당은 적폐 그 자체로, 청산 대상이다. 그 당 의원들은 ‘박근혜가 탄핵되면 아스팔트에 피를 뿌리겠다’는 집회에 참가해 박근혜 정권의 연장을 목놓아 외쳤다. 진보 개혁에 관심이 있기는커녕 지난 9년 동안 사람까지 죽여 가며 그런 염원을 짓밟기 바빴던 이들에게 ‘개혁에 동의’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다.

우파와의 대연정으로는 애초에 진보적 개혁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연정(협치)을 하려면 상대방을 고려해야 하므로 ‘안희정 정권’은 적폐 청산 같은 개혁 과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저질스런 통치와 심지어 부패 범죄까지도 “선의”로 포장했다. 연합이 성립하려면 우선 상대의 선의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안희정식 대연정론의 논리적 귀결이다.

대연정

이런 이유로 안희정은 퇴진 운동의 저변에 깔린 계급적 불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하다. 즉,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 위기의 고통을 떠안고 일을 해도 소득 격차가 커지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불만 말이다.

연인원 1천6백만여 명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진상 규명 방해, 노동개악, 사드 배치, 문화계 블랙리스트, 국정교과서, ‘위안부 합의’, 언론 장악 등의 적폐를 해소하자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 덕분에 민주당의 지지율도 오르고 덩달아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지지율도 올랐다. 안희정은 뻔뻔하게도 그런 촛불 민심에 역행하는 것으로 정권 획득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희정이 제시하는 공약과 정책 기조들이, 지난 9년 새누리당 정권의 악행들을 청산하기는커녕 계승하는 것에 가까운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반도를 제국주의 갈등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으며 불안정을 부추길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 합의 존중’을 이유로 찬성한다. “공짜 밥” 운운하며 보편적 복지가 “청산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나 반값등록금에 반대한 것도 짜증난다. 차별금지법도 “아직 빨라요”라며 반대한다. 박근혜가 추진한 ‘탄력근무제 도입 및 재택근무 확대’를 여성의 경력 단절을 해결하겠다며 공약하는 것도 어이없다.

시장 경쟁이 필요하다며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고도 얘기한다. 길어지는 세계경제 위기 때문에 곳곳에서 자본주의와 시장에 대한 회의가 자라나는 지금, 이런 노선은 교조적 친기업주의이지, 진정한 의미의 현실주의도 못 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친기업, 친제국주의 정책 추진에 한몫해 ‘삼성 장학생’으로 악명 높았던 인물답다. 그래선지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으로 대중의 분노가 불타올랐던 1월, 안희정은 “돈이 많든 적든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반동적인 주장을 했다.

안희정은 “기존의 전통적 진영과 관점에서 본다면 제 얘기는 양쪽 모두에서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면서 자신이 고난을 무릅쓰는 선구자인 듯 행세한다. 또한 정권 퇴진이라는 심판을 받은 낡디 낡은 세력과 연합하겠다는 것을 그는 “새로운 정치”와 “시대 교체”로 포장한다. 역겨울 뿐이다.

안희정의 ‘시대 교체’에는 미래가 없고 안희정의 ‘새 정치’에는 거대한 거리 운동으로 표출된 평범한 사람들의 염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는, 한때의 신념을 잃고 제도정치에 들어가 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메스꺼운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