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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전선의 역사를 통해 본 나치 본색

프랑스 나치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5월 7일 치러지는 대선 결선에 진출한다. (본지 205호 기사 ‘나치 르펜이 결선에 진출한 프랑스 대선’을 참고하시오.)

2002년 이후 15년 만의 일인데 15년 전과는 정치 지형이 사뭇 다르다.

15년 전에는 국민전선 후보(마린 르펜의 아버지이자 국민전선 창립자 장마리 르펜)가 결선에 진출한 것이 놀라운 이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의 모두가 여러 달 전부터 국민전선의 결선 진출을 예상했다.

마린 르펜은 '정장 입은' 나치다

무엇보다 국민전선의 부상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15년 전보다 덜하다. 역대 최대인 7백70만 명(21퍼센트)에 달하는 국민전선 투표자들은 더 공공연하게 투표 사실을 드러낸다.

이런 변화는 단기간에 생긴 것이 아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프랑스 주류 정치권이 인종차별과 무슬림 혐오에 타협한 결과다. 주류 정치권이 2004년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편, 2011년 아버지한테서 당권을 넘겨받은 마린 르펜이 유대인 차별 발언을 반복하는 자기 아버지를 2015년에 제명하는 등의 제스처를 취한 것도 이미지 개선에 부분적으로 도움이 됐다.

탄생과 중핵

그러나 국민전선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파시즘 운동의 재건을 목표로 하는 나치 조직이다.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 편에 서서 레지스탕스를 소탕하고 히틀러의 무장친위대에서 활동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1960년대 프랑스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하고 강력한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를 건설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프랑스 노동계급이 1960년대 동안 활성화되면서 나치가 영향력을 키우기 어려웠다. 홀러코스트가 폭로된 상황에서 공공연히 나치를 자처하는 것도 문제가 됐다.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세력에 적극 부역한 집안 출신자 도미니크 베네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파시즘 운동이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원형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가망이 없다며, 변화된 상황에 맞게 더 유연한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급한 폭력 사용을 자제하고, 주류 보수 세력의 외피 속에 숨어서 세력을 키우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나치 이론가 프랑수아 뒤푸아는 이 전략을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는 소종파를 벗어나 주류 우파로 침투하려면 무모한 폭력을 잠시 삼갈 뿐 아니라, 선거를 이용해 지지자들을 획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치라는 딱지가 붙으면 주류 사회에서 배제될 것이므로, 공공연하게 나치를 표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혁명 조직[자신들을 일컫는 말]은 활동 자체가 아니라 목적에 의해 결정된다. 수단은 환경에 맞게 바뀔 수 있어야 한다.”

국민전선은 이런 전략에 따라 각종 극우 세력이 결집해서 1972년 전선체로 창립됐다. 장마리 르펜이 이 연합체의 초대 대표였다. 그는 1956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인물이자, 이후 알제리 독립 운동 진압에 참가한 장교이자, 히틀러 연설 등을 담은 음반을 판매하는 사업을 벌인 인물이었다. 극우 세력을 모으고 국민전선을 주류 우파 정치권 일부와 연계를 맺게 할 적임자였다.

장마리 르펜은 이 전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국민전선의 초창기 이론가 뒤푸아가 폭탄 테러로 죽은 지 40년이 다 돼 가는데, 르펜은 해마다 핵심 간부들을 이끌고 그의 묘를 찾았다.

한편 정계를 떠났던 베네는 2013년, 동성결혼 허용을 반대한다며 관광 명소에서 공개적으로 권총 자살을 했다. 당권을 아버지한테서 넘겨받은 마린 르펜은 그를 이렇게 기렸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의 마지막 정치적 행동은 모든 프랑스인들을 흔들어 깨우는 몸짓이었다.”

딸과 “정치적으로 절교”했다던 장마리 르펜은 이번 대선에서 선거 자금을 6백만 달러(70억 원)나 지원했다. 201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의 선거 자금을 조달하는 등 국민전선의 재정에 깊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레드릭 샤티용은 히틀러 탄신 기념일에 축하 파티를 열고 참가자들에게 강제수용소 유대인 복장을 입고 오도록 한 인물이다.

또한 2012년 총선에서 국민전선이 주도한 선거연합이 공천한 후보들 가운데는 폭력적 극우 성향자, 홀러코스트 부인자, “혁명적 민족주의자”(파시스트들이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들로 가득해서 “끔찍한 극우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르펜 부녀는 종종 ‘말 실수’를 가장해 홀러코스트를 우호적으로 언급한다. “홀러코스트는 제2차세계대전의 사소한 세부 사항에 불과하다”(장마리 르펜). “비시 정부 시절 유대인을 체포해 강제수용소로 넘긴 것은 프랑스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마린 르펜). 이런 발언이 있을 때마다 국민전선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친다. 그러나 이런 발언은 일부 외곽 지지자는 잃을지 몰라도 핵심 당원들은 더욱 결속하는 효과를 낸다.

이렇게 여전히 국민전선의 핵심부에는 골수 나치가 자리잡고 있다.

이중 전략

국민전선은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도 당원들을 결속시키려 한다. 창당 당시의 문건은 이렇게 쓰고 있다.

“아직 우리는 지지자들이 당국의 허락에 연연하지 않고 가두 시위를 벌일 수 있도록 훈련하지 못했는데, 아주 중요한 과제다. 단지 우리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우리의 힘을 외부로 보일 수 있어야 하고, 거리에서 우리의 주장을 외쳐야 하고, 남들이 우리의 행동대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규모와 결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의 지지자들은 전투적 행동과 전투가 어떤 맛인지 느끼고, 더는 고립된 활동가로 방치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행진과 시위를 통해 지지자를 결속하는 것은 파시즘의 핵심 특징으로서,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강조한 바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지난해 국민전선이 프랑스를 찾은 난민들에 항의하는 시위를 여러 도시들에서 벌인 것은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심지어 국민전선은 좌파에 도전하고 강경한 간부를 육성하려고 오래 전부터 노동절에 독자적 가두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근래에는 선거를 통한 외연 확장에 치중하면서 직접적인 폭력 사용은 자제하고 있지만, 국민전선 산하의 “보안 서비스” 부서에는 각종 무기로 무장한 깡패 1천5백 명이 소속돼 있다. 이는 파시즘의 전형적인 이중 전략의 한 측면을 보여 준다. 이 자들은 상황이 변하면 돌격대로서 이주민과 노동조합원과 좌파 등을 공격할 것이다.

국민전선은 투표에 악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당과 구별되는 유관단체들을 두고 있다. 예컨대, 인종차별적 폭행을 일삼는 극우 청년 조직, 정체성 블록(BI)이 있다. 흔히 이 조직의 지역 책임자는 국민전선 소속 지방의원이 된다.

광범한 지지층이 겁먹게 하지 않는 것도 국민전선에 중요하다. 그래서 한 역사가가 폭로한 국민전선 내부 교육자료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사람들을 유혹하려면 그들을 겁줘선 안 된다. … 모든 말은 똑같은 힘을 담고서도 얼마든지 대중이 받아들일 주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 예컨대, ‘깜둥이들을 바다에 내던지자’라고 말하지 말고 ‘제3세계 이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조직해야 한다’고 말하자.”

국민전선이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는 방식이 바로 이렇다. 자신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합리적으로 종교를 문제 삼는 것이고, 특히 공화주의의 가치인 세속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공화주의의 공공연한 적’이라는 비난에 시달렸었던 국민전선은 프랑스 좌파가 세속주의를 잘못 이해하는 것을 이용해 ‘공화주의 가치의 수호자’로 거듭나려 한다. (본지 205호 기사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살펴보는 무슬림 혐오, 세속주의, 프랑스 좌파’를 참고하시오.)

마린 르펜은 파시스트답게 오늘날 프랑스 경제가 엉망인 이유가 “은행들의 독재” 때문이라고 맹비난하며, 어이없게도 이를 “도금칠 된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자신들만이 “잊혀진 계급인 중간계급, 인민계급을 대변하는 … 반체제 후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긴축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전선은 강경한 이데올로기와 활동으로 단련된 간부층을 은밀하게 육성하면서도, 정교하게 선택된 언어를 사용해 중간계급의 불만과 절망을 파고들어 그들 사이에서 광범한 지지를 건설하고 있다.

국민전선은 대중을 사로잡을 거대 규모의 거리 행진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다짐한다. “완전한 격변의 때가 오면 … 사람들의 입장이 놀라울 정도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프랑스인들의 머릿속에서 그들이 믿었던 모든 세력이 나쁜 놈으로 보일 때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세력[이 돼야 한다.]”(국민전선의 이론지 《정체성》)

좌파는 이런 국민전선에 맞서 싸울 때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1920~30년대에 분석한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파시스트들은 거리 시위로 세를 과시하고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만큼 무엇보다 거리에서 강력한 대중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트로츠키는 반파시즘 공동전선을 제안했다. 혁명적 노동자 조직이 개혁주의적 노동자 조직과 함께 파시즘에 맞서 공동 행동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이 전술은 오늘날 영국과 그리스 등지에서 적용돼 파시스트를 격퇴하는 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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