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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 분리 총회의 교훈

원통하게도 기아차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분리 총투표(총회)가 가결됐다. 노동운동 안팎에서 총투표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김성락 집행부는 눈과 귀를 막고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많은 언론이 말하는 것과 달리, 이번 결과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버린 사건’이 아니다. 〈노동자 연대〉가 애초부터 강조했듯이 문제는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부가 원하청 노동자 전체를 상대로 벌인 노골적 퇴행이었다. 즉, 노동조합 지도부의 관료주의 문제였다.

물론 투표 대상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정규직이었고, 비정규직의 다수가 반대표를 찍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서 찬반 양론이 갈리고 첨예한 투쟁이 벌어졌던 점을 봐야 한다.

그리고 진정 중요한 점은, 이번 총투표의 성격은 무엇이었는지, 이 투쟁에 어떤 기회가 있었고 어느 지점에서 그것이 가로막혔는지, 그로부터 이끌어내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총투표에 반대하며 노조 지도부에 항의한 기아차 활동가들 단호하게 투표 보이콧을 선동했다면 투쟁의 파장은 더욱 컸을 것이다

총투표의 성격

올바른 평가를 위한 첫 출발은 총투표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 기아차지부의 많은 활동가들은 초반에 총투표 중단을 촉구하다가, 막상 투표일이 가까워지자 투표에 참가해 반대표를 찍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전직 위원장단, 대부분의 “현장”조직들과 대의원들이 그랬다. 이들은 대체로 조합원 총투표라는 형식 절차를 민주주의로 착각하거나 모종의 “공인된 가치”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총투표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단순한 형식 절차 문제로 환원하지만,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이런 형식 논리를 반대한다.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자주적 활동·운동·투쟁, 즉 노동자 투쟁이 강력해지고 단결이 강화되는 것을 뜻한다.

지난 몇 해를 돌아보면, 기아차 노동자들은 정부와 사측의 공격 속에서 임금 인상률이 억제되고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등 불만을 쌓아 왔다. 노조 집행부는 사측의 공세에 단호하게 맞서기보다 양보와 배신을 거듭하며 노동자들이 진 빠지게 만들고 사기를 떨어뜨렸다. 안타깝게도 좌파적 구심도 상당히 취약해졌다.

더구나 사측은 비열하게도 ‘비정규직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기아차㈜의 직원이 아니니 성과급을 깎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이간질하며 비정규직의 조건을 더한층 공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성락 집행부는 현장조합원들의 불만을 악의적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돌리며 사측의 이간질 공격에 타협했다. 노동자들 사이에 연대의식을 갉아먹고 보수성을 부추겨 온 것이다. 이번 총투표는 그 절정이었다.

따라서 총투표는 노동계급의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총투표 자체를 거부해야 했다.

총투표를 막을 기회는 있었다

되새겨 볼 만한 사례가 있다. 2010년에 현대차지부 이경훈 집행부는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파업에 대한 금속노조의 연대파업 지침을 회피하려고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했다. 그 목적은 명백히 파업 파괴였다. 노동자들은 이를 “자살 총회”라고 불렀다.

2011년에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이 추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도 목적이 사악했다. 그는 ‘왜 노동자·민중의 복지에 세금을 쓰냐’며 기업주·부자들의 편에 서서 무상급식을 없애자고 했다.

그런데 이 두 경우에서 운동의 대응은 상반됐다. 현대차에서는 모든 “현장”조직들과 좌파 단체들이 “자살 총회” 거부가 아니라 투표에 참여해 파업 찬성표를 던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경훈은 투표함을 개봉하지 않은 채(“어차피 1백 퍼센트 부결”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압박해 점거 해제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반면, 오세훈에 맞선 운동의 대응은 단호했고 효과적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나쁜 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를 구성해 대대적으로 보이콧을 선동했다. 그 결과 실제 투표율이 단 25.7퍼센트밖에 되지 않아 투표가 무산됐다. 오세훈이 참패하는 쾌거를 이뤄 낸 것이다.

이번 경우에도 투표를 무산시키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중앙집행위원회, 정의당, 노동운동 단체들, 〈한겨레〉 등이 모두 총투표를 하지 말라고 했으므로, 정치적 명분과 대의는 충분했다.

더구나 화성 공장의 좌파 대의원·활동가 20여 명은 투표함이 돌지 못하도록 8시간 가까이 총투표 저지 행동을 벌이며 끝까지 분투했다. 유감스럽게도 장재형 화성지회 집행부가 힘으로 투표 용지를 빼돌렸지만 말이다.

만약 전직 위원장단과 주요 “현장”조직들, 사내하청분회가 모두 힘을 합쳐 보이콧을 선동하고 총투표 저지 행동에 나섰다면, 그 효과와 파장력은 매우 컸을 것이다. 주요 “현장”조직들에 속한 대의원만 전체의 과반이었는데, 이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면 투표율을 절반 밑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다수가 비효과적인 투표 참여 전술을 택했던 탓에, 사측이 총투표에 개입해 들어올 틈이 생겼다. 사측은 관리자들을 적극 동원해 투표를 독려하는가 하면, 생산관리자 협의회를 앞세워 총투표 저지 행동에 나선 몇몇 활동가들을 꼭 집어 비난했다. 투표에 불참하면 ‘골수분자’가 되는 것이라고 낙인 찍어 노동자들을 위축시키고 투표장으로 끌어내려 한 것이다.

노조 상층 지도부의 보수성

이번 총투표 가결로 가장 기쁘게 웃고 있을 이는 정몽구일 것이다. 이미 현대·기아차 그룹사는 총투표 가결을 기회 삼아 대대적인 공격에 나설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차지부, 현대차지부를 포함한 정규직·대기업 노조들이 사회적·정치적으로 고립될 것”이라고 진단하고는, 노동조건에 관한 노조 개입을 “경영권 침해”로 규정해 약화시키고, “귀족노조” 비난으로 재벌을 향한 공격을 “희석”시키고, 임단투를 공격하겠다고 했다. 당장 비정규직에게도 정규직 전환의 꿈을 버리고 신규채용에 무릎 꿇으라고 강요할 것이 뻔하다.

이는 몇 해 전부터 수익성 하락에 처하고 특히 올해 들어 위기가 더 심각해진 사측의 처지를 반영한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사드 배치의 여파로 중국 판매량이 급감했다. 지난달에만 52퍼센트 넘게 줄었다. 1분기 예상영업이익률도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13.8퍼센트, 23.3퍼센트씩 줄었다.

현대차의 차량 결함을 폭로한 내부 고발 사건도 사측에겐 골칫거리다. 도요타, 폭스바겐 등이 대규모 리콜 사태로 치른 홍역을 떠올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강경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경제 위기는 노조 상층 지도자들을 더 한층의 보수성으로 내몰기 십상이다. 노조 지도부는 사측과 노동자들 사이를 줄타기 하며 타협(협상)을 중재해야 할 위치에 있는데, 위기가 심해지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그동안 누린 특권을 잃을까 봐 속을 태운다. 만약 아래로부터 노동자들의 압력이 강력하다면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 압력이 덜하면 정치적 타락 속도가 빨라지고 노골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성락 집행부의 퇴행은 단순히 그 집행부만의 돌출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진 2009년에도 노조 지도자들의 후퇴가 잇따랐던 것을 보면 말이다.

화성 공장에서 투표함을 막으며 연좌농성한 정규직 활동가들

소수지만 단단한 혁명가 조직

그렇다면 이런 노조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성(개량주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실 이는 지난 십수 년간 좌파가 해결하지 못하고 거듭 발목이 잡혀 온 핵심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투쟁에서 기아차지부의 전직 위원장단과 주요 “현장”조직 리더들이 보인 소극성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일단 김성락 집행부를 배출한 ‘금속노동자의 힘’(이하 금속힘)의 다수 활동가들은 노조 분리에 반대했지만, 정작 노동운동의 대의를 배신한 김성락을 자기 조직에서 제명하지 못하고 쩔쩔맸다. 화성·소하리·광주·판매·정비 등 전 지회 집행부들이 모두 금속힘이지만, 이들이 총투표를 거부하도록 강제하지도 격렬히 저항하지도 못했다.

다른 주요 “현장”조직 리더들도 과거 집행부 시절 그 자신이 신규채용 합의를 직접 추진했거나, 양보 교섭으로 현장 조합원들의 커다란 반발(예컨대, 교섭장 봉쇄 투쟁 등)에 직면하곤 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관료적 질서, 형식 절차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주요 “현장”조직 리더들이 김성락 집행부에게 대의원대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총투표를 막겠다는 헛발질에 공을 들이다가, 이것이 거부되자 총투표에 참가해 반대표를 찍자는 소심한 전술로 나아간 이유다.

많은 현장의 투사들이 노조 관료주의에 얽매이게 된 것은 2000년대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안착되고 현장 투쟁이 약화되면서 사기가 낮아지고 시야가 협소해진 탓이다. 아래로부터 노동자 투쟁을 건설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노동조합의 지도권을 잡고 사측으로부터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달콤한 유혹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렇게 집행부를 잡으면, 자신이 배출한 지도부를 감싸고 떠받치는 데 급급해 점점 더 온건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이런 문제를 극복할 대안은 소수지만 굳건한 혁명가들의 조직을 기층에서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좌파적 원칙에 입각해 노동자 단결을 위한 전술을 내놓고 투쟁을 조직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번에 노동자연대 기아차모임은 가장 먼저 총투표 중단을 촉구하며 비정규직 투쟁을 한 치의 유보 없이 지지하고 방어했다. 작은 톱니바퀴였지만 효과적으로 조직돼 있던 덕분에, 초기에 보수적 조합원들의 정서에 타협해 양비론을 펴거나 입장 발표조차 머뭇거리던 “현장”조직들과 대의원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비록 아직은 세력이 크지 않아 다수 활동가들이 보이콧 전술을 채택하도록 이끄는 데서는 시간상 역부족이었지만 말이다.

노동자 단결은 만고의 진리이지만, 그것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단단한 혁명가들이 투쟁 속에서 입증해 내고 쟁취해 내야 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