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 기자회견:
“대통령만 바뀌었지 변한 게 없다” ― 수색을 조속히 재개하라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 요청과 조속한 실종자 수색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5월 26일 오후 2시,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들이, 현재 농성 중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해 대통령 면담 요청 민원을 전달하려다 경찰 1백여 명에 의해 가로막혔다.

스텔라데이지 호는 초대형 화물선으로, 2017년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2명이 실종됐다.

실종자들은 구명벌(자체 동력이 없는 구조 보트)를 이용해 탈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사고 직후 한참이 지나서야 수색이 시작돼, 남대서양 망망대해 어딘가로 휩쓸려 간 구명벌은 사고 발생 이후 50일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발견되지 못했다. (관련 기사: ‘세월호 판박이’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들이 문재인에게 요구한다- 수색을 즉각 재개하고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설치하라)

기자회견 사회자로서 마이크를 잡은 스텔라데이지 호 선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 허경주 씨는 기자회견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저희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24일 오후 3시 정부에서는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었는데 … 저희는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 사항 10가지를 제출했지만, 3일동안 준비했다던 정부 부처들은 단 한 개의 답변도 준비해 오지 않았고 3시간에 걸친 브리핑은 시간 낭비에 불과했습니다.

“전문가들은 3개월 동안 구명벌에서 [실종자들이] 생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줬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쓸데 없는 논의만 하면서 이 중요한 시기를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요구와 달리] 정부는 집중 수색은커녕 선사(폴라리스쉬핑)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초점 흐리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첫 발언을 한 대한변협 황필규 변호사는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재난이란 국가 차원의 대처가 필요한 사안을 말한다. 스텔라데이지 호 사건을 재난으로 본다면 폴라리스쉬핑만 압수수색할 것이 아니라 관련 정부 부처들도 수사 대상입니다” 하고 말했다.

스텔라데이지 호 침몰 사고의 배경에는 한국 선급의 허술한 선박 안전 검사, 사고 사실을 안 뒤 권한대행 황교안에게 보고하기까지 8시간을 허비한 외교부와 해수부 등 정부 책임이 있다.

사고 직후 해수부 장관 김영석은 “가족들이 양해할 때까지 끝까지 수색하겠다”고 했고, 비상대책반 담당 부서인 외교부는 실종자 가족을 위해 정례 브리핑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약속들은 금세 깨졌고 정부의 수색은 매우 부실했다. 결국 정부는 새 대통령이 당선한 5월 9일, 실종자 가족 대표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수색 종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세월호 유가족의 연대 발언도 있었다. 4.16가족협의회 심리생계지원분과장 ‘재욱 엄마’ 홍영미 씨는 말했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스텔라데이지 호 사고가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 박근혜와는 다르리라고 믿는 현 정부에게 요구합니다. 지금이라도 조속히 구조 수색 작업의 책임을 다하십시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발언을 듣는 동안 옆에 서있던 한 실종자 가족이 눈물을 터뜨리며 흐느꼈다. 홍영미 씨도 실종자 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3년 만에 뼛조각으로 돌아오고 있는 미수습자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 눈시울을 붉혔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며, 실종자 가족 대표 허경주 씨는 “새 정부가 들어서기만을 기다렸던 우리 가족들의 희망은 깨져버렸습니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정부 부처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주십시오!”

기자회견 이후 실종자 가족과 그에 연대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문재인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청와대 방면으로 현수막을 들고 걸어갔다. 하지만 몇 발걸음 옮기기도 전에 경찰 1백여 명이 기자회견 참가자 십여 명을 신속하게 막아 섰다. 채증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를 향해 가는 길을 경찰이 가로막았다

청와대에서는 사회혁신수석실 보좌관이 나와서 “기자회견을 하셨으니 대통령이 그 뜻을 알 것”이라며 민원 전달조차 못하게 막았다. 가족들이 항의하자 “나는 결정 권한이 없다”며 회피했다.

한 경찰 간부가 민원 전달을 막으라고 지시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유가족”이라고 칭하자 가족들이 격렬하게 항의했다. 아직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는 가족들을 ‘유가족’ 취급하는 것은 수색을 중단하는 대신 보상금 협상을 하자며 회유 시도를 하고 있는 선사 측의 수작이다.

경찰들 앞에 가로막히자 한 실종자 가족이 오열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게 해주세요. 김정숙 여사라도 만나게 해주세요. 여사도 아들을 키우시니 제 마음을 알 거잖아요. 내 아들은 26살밖에 안 됐습니다. 내 목숨을 내놓을 테니 아들 좀 찾아주세요.”

경찰에 가로막혀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

3년 전 5월,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수많은 경찰들에 가로막혀 땅을 치며 오열하던 세월호 유가족의 모습이 떠올라 겹쳐 보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2주일이 지났다. 재난 대처와 안전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겠다고 했다. 5.18 광주 항쟁 기념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당장의 피해자들을 외면하면서 어떻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수색이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수색에 투여될 돈과 행정적 노력을 아까워하는 것은 아닌가?

실종자 가족 대표 허경주 씨는 문재인이 당선한 날 밤 선거 유세 차량에 올라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님 공약에 청와대 중심의 재난 사고 대응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투명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해 주십시오.” 문재인은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중단된 수색을 즉각 재개하고 남대서양을 지나는 국가 소유 선박들을 그 작업에 동참시켜야 한다. 브라질 등과 소통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도 동원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전달하고자 하는 가족들의 면담 요청에 응하라. 하루하루 가족의 생존 소식만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

경찰에 가로막힌 실종자 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경찰에 가로막힌 실종자 가족들에게 변명하고 있는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실 보좌관
경찰에 가로막혀 땅에 주저앉은 실종자 가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