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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조 분리 총투표를 자성적으로 돌아봐야

기아차 노조 분리 총투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했다. 최근에는 일부 비정규직 운동 단체들(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이 토론회를 열었는데, ‘노동자는 하나인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붙였다.

이 토론회에서 논의는 대체로 투표 결과, 즉 정규직 노동자들의 ‘선택’에 대한 우려에서 출발했다. 대다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 배제” 의사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2006년 기아차 원하청 공동 투쟁 당시 비정규직 연대에 헌신했던 ‘금속노동자의 힘’ 활동가들의 맹목적 집행권 추구가 이들에게 독이 됐다.

물론 이런 주장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버렸다’는 식의 우파적 비난과는 달랐다. 이 동지들은 진지하게 이번 사태를 평가하고 노동자 단결을 모색하려 애썼다. 그럼에도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는 논의를 부정확한 개념을 전제로 해선 안 된다. 즉, 정규직이 “적극적 배제”를 택했다는 관측은 잘못된 것이다.

객관적 수치만 놓고 보면, 투표에 참가해 찬성표를 찍은 조합원은 61.7퍼센트였다. 하지만 김성락 집행부가 그토록 단호하게 밀어붙였음에도, 40퍼센트 가까이는 투표에 불참하거나 반대표를 찍었다는 점을 봐야 한다. 기아차 정규직의 다수가 집행부의 퇴행에 ‘적극’ 호응했다는 판단은 다소 피상적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김성락 집행부가 정규직·비정규직 모두를 향해 벌인 퇴행(반동!)이었다. 이번 총투표는 노동자 단결을 해칠 목적이 명백했으므로, 절차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따지기 전에 내용 자체가 비민주적이었다. 따라서 총투표 자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출발점이어야 한다.(총투표의 성격, 노동조합 관료주의에 대해서는 본지 206호 ‘기아차 노조 분리 총회의 교훈’을 보시오.)

투표가 진행된다면 집행부 안이 가결될 것은 충분히 예상됐었다. 현장 조합원들의 사기와 자신감 수준이 근래에 충분치 않아, 노동조합 내 상하 세력관계에서 집행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기아차 노동자들은 김성락 집행부의 거듭된 후퇴와 배신으로 최근에 사기가 좋지 않았다. 화성공장의 일부 좌파 활동가들이 보이콧을 선동하고 투표함 반출을 막으려 애썼던 것도 이 점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투표에 참가해 반대표를 찍자던 전직 위원장단과 활동가들도 결코 이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승철 전 위원장은 “현장 순회하면서 보니 활동가 조직들도 반대 선동에 소극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조합원들을 믿어 보자’는 것은 무책임한 책임 방기의 자세였다.

물론 이런 평가는 지도부가 저러니 어쩔 수 없었다는 숙명론적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김성락 집행부라는) 노동조합 관료의 개량주의 문제였지만, 논의를 여기서 멈춰서는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교훈을 올바로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현장 조합원들은 때로 노동조합 지도부의 후퇴나 배신에 반발할 수 있다. 관건은 기층에서 노동조합 관료에 맞설 대안이 굳건하게 존재하는가, 그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가의 문제다. 특히, 그동안 활동가들이 어떤 구실을 해 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연대의식은 어떻게 약화됐는가

이번 노조 분리 총투표의 핵심 쟁점인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투쟁을 보자. 이 문제에서도 원하청 연대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없었던 게 결코 아니다.

2015년 6월 기아차의 정규직·비정규직 활동가들은 집행부의 양보교섭에 반대해 교섭장 봉쇄 투쟁을 벌였는데, 집행부가 주간연속2교대제와 정규직 전환 문제에서 후퇴한 것(신규채용 추구)이 문제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백여 명이 모여 집회를 하는 등 오랜만에 투쟁에 기지개를 폈고, 일부 정규직 활동가들이 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활동은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적잖은 활동가들이 노조 지도자들의 후퇴와 배신에 맞서 독립적인(자주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했던 탓이다.

예컨대, 교섭장 봉쇄 투쟁의 주요 세력이었던 화성·소하리 공장의 ‘금속노동자의 힘’ 활동가들은 이듬해 집행부에 당선하면서 이제 반대편에 섰다. 집행부 자신이 신규채용 합의를 체결했고, 활동가들은 현실론을 들며 자기 집행부를 두둔하고 나섰다. 기아차 내 가장 규모가 큰 NL경향의 ‘민주현장’은 2015년 집행부 시절에 이미 신규채용 회의록을 작성한 당사자였다. 활동가들은 그 선을 넘지 못한 채, ‘김성락 집행부도, 분회의 정규직 전환 투쟁도 문제’라는 식의 양비론을 폈다.

김성락 집행부가 추구해 온 사회연대전략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과 반목을 키운 또 다른 쟁점이었다. 집행부는 당선하자마자 비정규직의 성과급 삭감을 요구하는 사측에 맞서 투쟁하기를 포기하고, 도리어 정규직의 임금 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을 위해 내놓자고 제안했다. 노동자 몫을 늘리기 위해 투쟁을 확대하는 게 아니라, 사측이 강요한 줄어든 파이를 놓고 노동자들끼리 아옹다옹 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일부 정규직의 보수성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노동자 연대〉와 노동자연대 기아차모임이 일찌감치 비판했듯이, 사회연대전략은 원하청 연대를 고무하기보다 거꾸로 연대의식을 갉아먹고 서로를 원망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활동가들은 대체로 이 문제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예컨대, 〈한겨레〉, 〈매일노동뉴스〉, 비정규직운동 활동가,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등은 당시에는 김성락 집행부를 두고 “아름다운 연대”라고 추켜세우기 바빴다. 기아차의 대다수 활동가들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눈치를 보며 이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정작 비정규직의 성과급 삭감에는 눈을 감았다. 그것이 원하청 연대에 왜 해로운지를 설득하지도 못했다. 이 속에서 김성락 집행부가 일부의 보수성을 자극하며 파고들 틈이 생겼던 것이다.

화성 사내하청분회 김수억 집행부는 옳게도 신규채용 합의를 끝까지 거부하며 싸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원하청 연대를 강화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초기부터 비정규직의 독자적인 투쟁에 역점을 두었다. 더욱이 이 투사들이 과거에 1사1노조에 반대했던 것을 조합원들이 모르지 않기에(그리고 김성락 집행부도 그 점을 파고 들었기에), 과거의 잘못을 반성적으로 평가하면서 기층에서 연대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했다.

좌파 활동가들은 이런 과정을 차분하게 돌아보면서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한다. 오늘날 많은 현장 활동가들이 노동조합 지도권을 잡고 그것을 떠받치느라고 노조 지도자들의 관료적 이해관계에 젖어들고 불필요한 타협을 거듭해 왔던 점을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 단결과 투쟁을 강화하려는 혁명가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다. 혁명적 좌파는 단결을 위한 정치를 일관되게 내놓고 개량주의에 의해 쉽게 동요되지 않는 조직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핵심을 비켜선 대안들

‘노동자는 하나인가’ 토론회에서 주 발표자였던 철폐연대 김혜진 동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위한 힘은 “광범한 조직화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이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렇게 “비정규직이 사회적으로 힘을 갖고 있다고 인정될 때, 정규직도 시혜적 태도를 버리고 공동 투쟁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힘이 있어야 대등한 동료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근본적 이해관계를 달리하지 않는 이상 임금이나 조직력의 격차가 단결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은 아닐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싸울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조직된 정규직의 연대는 그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기아차에서도 2000년대 중반에 비정규직의 조직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적었지만, 정규직 활동가들이 발벗고 연대해 투쟁이 성과를 내고 조직이 확대될 수 있었다. 현대차와 달리 노조가 통합돼 있던 덕분에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노조로 조직돼 있었다.

김혜진 동지는 단위 사업장 차원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 차원에서 “큰 규모의 공동행동, 비정규직 의제를 중심으로 한 투쟁”을 만들고 조직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지난 30여년간 쌓아 온 조직력을 우회하는 것은 현명치 않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공운수노조 조성덕 부위원장이 지적했듯이, “지금 노조가 있는 대기업·대공장의 조직력”을 활용해 투쟁을 발전시키고 조직화를 확대해야 더 커다란 효과를 낼 수 있다. 더구나 민주노총 전체 규모의 커다란 투쟁을 추구하더라도 결국 주요 산별노조 차원에서 이를 얼마나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연대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대공장 정규직의 임단투를 백번 반복해도 연대적 계급의식은 형성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장의 담벼락에 갇히지 말고 비정규직 철폐, 재벌개혁 등을 걸고 “정치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한다.

조직 노동자들은 자기의 힘을 더 불리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 지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는 재벌개혁 요구가 효과적인가 하는 점은 문제 삼지 않기로 하자.) 그러나 이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투쟁을 터부시하거나 ‘요구’를 변경하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달성될 수 없는 과제다.

사실 기아차 노동자들은 지난 몇 년간 임단투를 잘 해서가 아니라 집행부가 이 투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굴복하거나 회피해서 사기가 낮아지고 부문주의가 강화돼 왔다. ‘내 코가 석자’라는 생각이 커져 온 것이다.

좌파 활동가들은 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요구를 갖고라도 후퇴하지 말고 잘 싸울 수 있도록 지지하고 고무하면서, 동시에 그 힘을 비정규직 연대를 위해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진보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