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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판박이’ 스텔라데이지 호:
선거와 정권 교체 속에서 가려진 비극

“저희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실종 선원들의 수색 재개가 조속히 이루어질 것으로 매우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후 일주일이 지나도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 선원의 수색 재개는 전혀 진전이 없습니다. … 제발 도와 주세요.”

"대통령을 만나게 해 주세요" 경찰에 가로막힌 실종자 가족 ⓒ조승진

5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스텔라데이지 호 선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 허경주 씨가 한 가슴 절절한 호소다.

초대형 화물선 스텔라데이지 호는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온 3월 31일 남대서양에서 침몰했다.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2명이 실종됐다.

원인은 무리한 선박 개조와 노후화에 따른 선체 균열로 추정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한국선급의 허술한 선박 안전 검사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평소 선원들은 스텔라데이지 호를 “언제 침몰해도 이상하지 않은 ‘똥배’”라고 불렀다.

스텔라데이지 호의 실종 선원들은 침몰 직후 구명벌(자체 동력이 없는 구조 보트)을 이용해 탈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구명벌에는 3일치 식량과 낚시 도구 등 생존에 필요한 장비가 구비돼 있다. 만약 사고 즉시 주변 해역을 수색했다면 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사는 사고가 발생한 지 12시간이나 지나서야 한국 해경과 외교부에 사고 사실을 알렸다. 사고의 파장을 축소하고 책임을 조금이라도 더는 데 급급해 선원들의 목숨은 뒷전에 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해수부와 외교부도 사고 사실을 안 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에게 보고하기까지 8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수색의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브라질 공군이 사고 발생 28시간 뒤에 수색을 시작했지만 남대서양 망망대해 어딘가로 휩쓸려 간 구명벌은 사고 발생 두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4월 3일 해수부 장관 김영석은 “가족들이 양해할 때까지 끝까지 수색하겠다”고 했지만, 이 약속은 금세 깨졌다. 해수부는 수색 해역을 통과하는 국가 소유 선박을 수색에 투입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 국토 면적 정도 되는 바다를 선박 3~4척이 수색하는 꼴이다. 산꼭대기에서 산 아래에 있는 가방 찾기와 다르지 않다. 위성도, 심해 수색 장비도 갖추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실종자 가족)

비상대책반 담당 부서인 외교부는 실종자 가족에게 정례 브리핑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특이 사항이 있을 때 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실종자 수색 상황실 공간도 정부가 아니라 선사가 마련하도록 했다. 그나마도 선사는 5월 초 사무실 임대 계약이 끝났다며 퇴거를 통지했다.

결국 새 대통령이 당선한 5월 9일, 외교부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실종자 가족 대표에게 수색 종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선사는 회사 경영을 이유로 수색에 투입했던 자사 선박들을 일방으로 철수시켰다. 그러면서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특별 위로금”을 꺼내 들었다. 아직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는 가족들을 ‘유가족’ 취급하며, 수색을 중단하는 대신 보상금 협상을 하자는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외쳤던 “생명보다 돈이 먼저냐”는 절규가 또다시 스텔라데이지 호 실종자 가족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정부를 믿은 거겠죠. 책임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피해자만 있어요.” 황교안 정부로부터 잔인하게 버림받은 실종자 가족들은,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 시절 “당선하면 스텔라데이지 호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겠다”고 한 약속에 기대를 걸었다.

“대통령만 바뀌었지 변한 게 없다”

그러나 5월 26일 대통령 면담 요청 민원을 전달하려고 청와대를 찾은 실종자 가족들은 경찰 1백여 명에게 가로막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스텔라데이지 호 선원 가족협의회 공동대표 허경주 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저희는 (정부의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 사항 10가지를 제출했지만 정부 부처들은 단 한 개의 답변도 준비해 오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도] 정부는 집중 수색은커녕 선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초점 흐리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4·16가족협의회 심리생계지원분과장 ‘재욱 엄마’ 홍영미 씨가 연대 발언을 했다.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스텔라데이지 호 사고가 발생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와는 다르리라고 믿는 현 정부에게 요구합니다. 지금이라도 조속히 구조 수색 작업의 책임을 다하십시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경찰들 앞에 가로막히자 한 실종자 가족이 오열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게 해 주세요. 김정숙 여사라도 만나게 해 주세요. 여사도 아들을 키우시니 제 마음을 알 거잖아요. 내 아들은 26살밖에 안 됐습니다. 내 목숨을 내놓을 테니 아들 좀 찾아 주세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3주 가까이 지났다. 재난 대처와 안전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5·18 광주항쟁 기념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눈앞의 피해자들을 외면하면서 어떻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수색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 수색에 투입될 돈과 행정적 노력을 아까워하는 것은 아닌가?

중단된 수색을 즉각 재개하고 남대서양을 지나는 국가 소유 선박들을 수색 작업에 동참시켜라. 브라질 정부 등과 소통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도 동원하라.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지키고 실종자 가족들의 면담 요청에 응하라. 하루하루 가족의 생존 소식만을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들을 더는 외면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