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포장지만 바꾼 의료 민영화

기재부 장관 후보자 김동연은 인사청문회에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이하 규제프리존법)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두 법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 규제 완화, 의료 민영화 법안으로 악명 높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까다로운 국회 통과 절차를 피하려고 시행령과 가이드라인 등 각종 우회적 조처를 활용했다. 그런데 그 조처들은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혀 그 내용이 일부 완화됐다.

박근혜는 애초 의도한 효과가 충분히 나지 않자, 포괄적 규제 완화 법안인 서비스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서비스법에 따르면, 기재부 장관의 주도로 각종 민영화를 자유 자재로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런데 서비스법도 저항에 부딪혀 국회 통과가 불확실해지자 박근혜 정부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규제프리존법은 서비스법이 담고 있던 포괄적 규제 완화 조처를 수십 가지 항목으로 세분화해 구체적 규제 완화 조처들을 명시한 법이다. 규제프리존법은 ‘지역 개발’ 논리를 내세워 지자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을 회유하려는 꼼수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기재부 장관 후보자가 이 법안들에 동의한 것이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모든 규제에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한국경제〉 6월 11일치). 법에 명시된 것을 제외한 규제를 모두 풀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의료 민영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말로 들릴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서비스법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야당 시절에도 내세운 논리로, 당시 의료 민영화 저지 운동 진영으로부터 큰 반발을 산 바 있다. 서비스법이 대단히 포괄적인 규제 완화 조처를 담고 있어서, 단순히 법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제외하는 것으로는 의료 민영화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료관광호텔(메디텔) 관련 규정은 관광업 분야인지 보건의료 분야인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미 허용된 병원의 영리 자회사들도 사업 내용에 따라 보건의료 분야가 아닌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게다가 서비스법은 일반법의 상위법인 ‘기본법’이다 보니 나중에 기존 의료법 등을 개악하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의료 민영화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서비스법은 철도 등 다른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서비스법의 ‘지역화 버전’으로 불린다.

네거티브 식 규제 완화

이처럼 문재인과 민주당이 박근혜의 의료 민영화와 단절하지 못할 것임을 보여 주는 조짐은 야당 시절부터 계속 발견됐다. 야당 시절 민주당은 여러 차례에 걸쳐 서비스법 통과를 약속했고 안희정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은 규제프리존특별법을 통과시키려 했다. 심지어 2016년에는 병원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2016년 4월 총선이 끝나 다수당이 된 민주당은 규제프리존 특별법 제정에 합의한 바 있다

대선 당시 보건의료단체연합이 발표한 주요 대선 후보 보건의료 정책 공약 평가에서 문재인은 심상정(87.5점)에 크게 뒤처진 52.5점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대선 2주 전까지도 보건의료 공약을 발표하지 않더니, 결국 발표한 공약은 2012년 공약보다도 크게 후퇴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장기화되는 경기 침체 속에서 국내외 자본에 보건의료 ‘시장’을 새로운 투자처로 제시하려 했다. 그런데 ‘적폐’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도 이러저리 눈치를 살피며 같은 정책을 추진하려 하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가 ‘투자활성화대책’이라며 의료 민영화 정책을 줄줄이 밀어붙였다면 문재인 정부는 비슷한 정책에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문재인은 대선 공약에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등 각종 산업 정책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제약·바이오·의료기기 산업 육성’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처럼 의료와 직결된 부분을 정부가 책임지지 않고 민간에 내맡기면 다른 공공의료 정책도 쉽게 무력화된다.

예컨대 박근혜는 신약 개발을 지원한다며 병원의 임상시험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는 제약회사의 이윤을 위해 환자들의 안전을 저버리는 짓이다. 이 규제 완화 결과로 요즘 지하철에는 각종 임상시험 자원자 모집 광고가 넘쳐 나고 있다. 경제 위기 하에서 고통받는 청년들과 노인들에게 몸이라도 팔아 연명하라고 유인하는 꼴이다. 바이오 산업 육성 계획도 박근혜가 추진한 ‘첨단재생의료’(줄기세포) 개발 정책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인 듯하다.

의료 민영화 반대 운동 진영은 새 정부의 의료 민영화 추진 움직임을 경계하며 지금부터 투쟁할 준비를 해야 한다.

2016년 5월 16일 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