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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국가 대사관과 다국적기업의 퀴어문화축제 참여는 위선이다

올해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7월 15일 개최 예정) 부스 선정에서 노동자연대가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탈락했다.(관련 기사: ‘퀴어조직위는 비민주적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주최 측은 노동자연대를 포함해 50여개 단체들을 부스 선정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퀴어조직위)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퀴어조직위는 영국, 프랑스, 유럽연합을 비롯한 13개국의 대사관과 구글코리아, 러쉬, 텐가 같은 기업들에게 부스를 허용했다. 영국계 다국적기업 러쉬는 아예 행진 차량 한 대를 이끌게 된다.

지난해 노동자연대는 퀴어조직위가 이렇게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사관을 초대하고 심지어 미국 대사에게 연단까지 허용한 것과 자본주의 기업들의 후원을 받은 것을 비판했다.

전략

퀴어조직위는 이미 2014년부터 미국 대사관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 대사관들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시켰고, 국가나 기업의 지원을 받으려고 애쓰며 그것이 충분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토로해 왔다. 심지어 2015년에는 “핑크워싱”[*]에 여념이 없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여러 유럽 대사관들과 함께 축제 개막식에 올렸다.(반면 2015년 서울인권영화제는 BDS[†]에 동참하는 의미로 이스라엘 성소수자 영화 상영을 거부한 바 있다.)

퀴어조직위가 초기부터 기업의 후원을 끌어들이려 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제국주의자들과 대기업의 퍼레이드 참가를 진보의 부산물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권력자들의 지원은 지독히 천대받는 사람들이 기성 사회로부터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는다고 여기게 해 줘 어느 정도 위안감을 준다는 점을 우리가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주류화 전략으로는 성소수자 해방을 성취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대기업들과 제국주의 국가들이 퀴어문화축제를 지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때만 성소수자 운동을 후원한다. 그 목적은 이미지 개선과 홍보다.

예컨대 구글코리아 사장 존 리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의 주범 옥시의 최고경영자(2005~2010년)를 지낸 자이기도 하다.(그때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많이 팔았을 때였다.) 옥시 제품 개발을 맡은 옥시 연구소의 전·현직 연구원들은 최고경영자에게 부작용 관련 사항과 유해성 실험 필요성을 꾸준히 보고해 왔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그래서 존 리가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

또한 구글은 세금을 제대로 안 내기로 유명한 기업이다. 법인세가 낮은 지역으로 매출을 돌려 조세를 회피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업계는 구글이 한국에서 1조 5천9백3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산하지만, 그만큼 세금을 냈는지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서구 지배자들은 ‘성소수자들의 친구’가 아니다 2016년 퀴어문화축제 ⓒ이미진

제국주의 국가들이 해외의 민간단체들을 지원할 때 그 목적은 언제나 자국 대외 정책의 본질을 감추고 해당 국가에 친제국주의적 세력을 육성하는 것이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성소수자 문제를 제국주의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데 이용해 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제국주의 국가들은 무슬림과 이슬람 혐오를 부추기는 수단의 하나로 성소수자 인권을 들먹였다. 그러나 서구 지배자들은 ‘성소수자들의 친구’임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체첸에서 박해받는 동성애자들의 난민 신청은 차갑게 외면했다.

섹슈얼리티에만 관심 있지 않고 사회 전체의 변화에도 관심 있는 성소수자 운동가들은 서구 지배자들의 이런 위선을 날카롭게 비판해 왔다. 예컨대 저명한 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는 2010년 독일 베를린 성소수자 행진(독일에선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 주최 측이 주는 ‘용감한 시민’ 상을 거절했다. 베를린 퍼레이드가 너무 상업화됐고 ‘핑크워싱’에 동조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버틀러는 수상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슬람 혐오를 이용해 이민자들을 공격하고, 군대를 동원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자들이 레즈비언, 게이, 퀴어 권리를 이용해 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 최근 유럽의 각 정부들은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보장돼야 하며 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배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에 반대합시다.”

제국주의 국가들이나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으려 애쓰는 것은 성소수자 차별을 근본적 사회 변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의를 지닌 엘리트를 통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천대받는 소수자들이 천대에 맞서, 기성 사회에 반대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고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동성을 부추긴다.

차별에 맞서 광범한 진보적·급진적 연대를 구축해야

서구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그나마 전진한 것은 1960년대 이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서였지 권력자들의 선의 덕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부와 1970년대 전반부에 분출했던 성소수자 투쟁은 별개의 독자적 투쟁만을 고집하지 않고 당시에 일어난 노동계급 운동과 다른 여러 급진적 운동과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성장한 것이다.

특히, 한국의 민중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경험과, 대기업과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원 때문에 제국주의 열강의 위선에 대한 정당한 반감을 갖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서구 대사관들의 지원을 받고 다국적기업의 후원을 받는 것은 스스로 다른 저항세력들과 연대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성소수자 차별을 없애려면 성소수자 운동이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세력들과 연결돼 진정한 진보적·급진적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군형법 92조의6 폐지나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개혁 요구조차 성취하기가 만만한 일이 아니다. UN 같은 국제기구가 한국 정부에 군형법 92조6 폐지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여러 차례 권고했지만, 한국 정부는 계속 무시해 왔다. 서구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를 봐도, 기본적인 법제도 개선을 이루기 위해서도 대규모 저항이 뒷받침돼야 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 천대는 단지 개인들의 편견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와 작동 방식과 관련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본주의 사회 가족의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기능과 관련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자들은 이윤을 위해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이성애 가족에 떠넘기고, 지배계급은 이런 가족을 이상화하면서 그런 규범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부추긴다. 또, 노동계급을 서로 이간질하기 위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도 한다.

우리 편의 힘을 만만찮게 키우려면 천대와 차별에 맞서 광범한 진보적·급진적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성소수자의 다수는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 노동자 계급은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일자리, 임금 삭감, 복지 부족 등으로 비슷하게 고통받고,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단결해 투쟁하는 것이 득이 된다.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폭넓은 진보적 연대로 성소수자들이 어느 정도 개혁을 성취한 서구에서도 성소수자 해방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성소수자 다수는 실업과 빈곤, 복지 축소 등으로 각종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성 개방 풍조와 함께, 이윤 논리에 따른 상품화도 유력해지면서 성소수자들의 섹슈얼리티도 고정관념에 의한 왜곡을 겪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서구의 대중 운동이 후퇴한 시기에 성소수자 운동의 투쟁성도 약화됐다. 신자유주의 친시장 논리가 확산되면서 급기야 최근의 퀴어 퍼레이드는 대기업과 국가기구의 후원을 많이 받기 시작했다. 일부 성소수자 운동가들은 아예 ‘핑크 경제’의 성장을 성소수자들의 자유 확대로 여겼다. 이는 어느 정도 돈과 권력이 있는 성소수자들(주로 중산층 이상의 백인 게이)에게는 자유와 위안을 줄 수 있었을지 몰라도, 긴축과 인종차별로 고통받는 대다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서구의 성소수자 운동 안에서도 퀴어 퍼레이드의 상업화와 우경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서 지적한 버틀러의 연설이 한 사례이다. 며칠 전 미국 워싱턴DC의 ‘퀴어 퍼레이드’에서도 그런 행동이 있었다. 이 대회에서 ‘정의 없이는 자긍심도 없다’(No Justice No Pride)의 활동가들이 경찰과 기업들이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것에 항의해 그들의 행진을 가로막았다. 미국과 캐나다의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활동가들도 몇 년째 경찰들의 퍼레이드 참가에 항의하고 있다.

진정한 진보를 염원하는 한국의 성소수자들과 좌파 단체들은 퀴어문화축제가 갈수록 상업화하고 주최 측이 제국주의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친제국주의적·친기업적인 활동 방식은 성소수자 운동과 노동운동 모두의 발전에 해롭다.



[*] 핑크워싱이란 자본주의 기업이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돈벌이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성소수자 친화적 언사를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자유주의자들이나 때로는 심지어 우익이 전쟁이나 긴축 정책 등을 정당화하고자 성소수자 친화적 행세를 종종 한다.

[†] BDS는 Boycott(불매)·Divestment(투자중단)·Sanctions(제재)의 약자이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사지 말고 이스라엘에 투자하지 말고 국제적인 제재를 가하자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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