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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청소·주차·경비·시설 노동자들이‘최저임금 1만 원’ 투쟁에 나서다
학교 당국은 ‘재정 없다’는 거짓말 말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소속 17개 대학 청소·주차·경비·시설 노동자들은 올해 1월부터 무려 6개월간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며 사측(대학이 고용한 하청업체)과 교섭을 해 왔다. 그러나 5월 말에 열린 11차 교섭은 사측이 ‘시급 1백 원 인상’안을 제시해 결렬됐고, 이어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도 결렬됐다.

쟁의행위는 96.7퍼센트 찬성으로 가결됐다. 서경지부는 조정이 결렬되자, 6월 23일 ‘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경고 파업을 벌였다. 또, 대학 분회들은 원청인 각 대학 당국을 항의 방문했다.

힘들게 장시간 일하는데, 겨우 1백 원 인상이라니 6월 16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서경지부 결의대회 ⓒ이미진

쥐꼬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1백 원 인상안을 내놓고 사측이 생색을 내자 노동자들은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서경지부 연세대분회 이경자 조합원은 “청소한다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 1백 원이라니!” 하며 울분을 토했다.

노동자들의 임금 실태를 보면 이런 분노를 느끼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 대학 청소·주차·경비·시설 노동자는 대부분 가정의 생계를 위해 일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현재 임금(청소 노동자 기준 시급 6천9백50원)은 2~3인 가구 생계비 평균인 2백70만~3백44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저임금이 1만 원(월 2백9만 원)으로 올라도 여전히 턱없이 못 미친다.

예컨대, 경비 노동자들은 대체로 2교대제로 밤샘 장시간 노동을 하는데 기본급이 2백만 원을 겨우 웃돌 뿐이다. 사측은 기본급을 올리더라도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휴게시간을 늘리는 방식을 취해 왔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휴게시간에도 필요한 곳에 가서 일해야 한다. 사측이 어떻게든 임금을 적게 주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진짜 사장 대학이 책임져라

요지부동인 하청 뒤에는 진짜 사장 원청(대학 당국)이 있다. 많은 대학 당국들이 “[하청] 업체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발뺌한다. 그런데 “재정 부담으로 [임금 인상이] 어렵다”고도 한다. 노동자 임금 문제에서 원청의 강제력이 핵심임을 시인한 셈이다.

최경희 전 총장 퇴진 후 당선한 이화여대 김혜숙 현 총장은 ‘촛불 총장’이라는 호칭을 듣기도 했다. “돈이 실력”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정유라를 비호해 온 이대 당국이 바뀌길 바라는 염원이 크다. 노동자들은 처우 개선을 바랐다. 그러나 김혜숙 총장은 약속과 달리 노동자들에게 ‘기다려라’ 하는 말만 반복하며 면담조차 거부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이화여대 이월·적립금(대학·법인 합산)은 8천4백47억 원에 달한다. 이 돈이 아니더라도, 이화여대 정문부터 죽 늘어선 휘황찬란한 상업시설만 보더라도 학교 당국의 재정 부족 논리가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6월 23일 파업 선포 기자회견에서 서경지부 연세대분회 이기원 분회장은 “학교가 재정이 없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대학과 기업은 수천억 원을 쌓아 놓고, 왜 노동자들만 쥐어짜는 것이냐!” 하고 꼬집었다. 고려대 김보혁 부총학생회장도 “매년 학교 곳곳에 건물들이 지어진다. 학교가 재정 탓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다.

물가는 오르고 대학 당국의 주머니는 터질 지경인데, 노동자들의 임금은 2~3인 가구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한참 빠듯한 수준인 것이다.

나중 말고 지금

박근혜 퇴진 운동의 중요한 일부였던 노동자들의 삶이 이런데도, 이 운동의 수혜를 입어 당선한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친노동’적이지 않다.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도 2020년까지 시행하겠다는 수준이다. 그조차 ‘임기 내 시행’으로 후퇴할 조짐을 보인 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동자들도 한꺼번에 다 받아 내려고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 나가자” 하고 은근히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명목임금은 물가 상승에 이르지 못해, 실질임금이 줄어 왔다. 왜 이제껏 저임금으로 고통받아 온 노동자들이 계속 참아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입 개혁’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최저임금 1만 원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자유주의 언론들과 진보진영 일각은 ‘문재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적폐 세력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한다. 그러나 정부는 부자 증세, 법인세 인상 등의 수단을 쓸 수 있다. 결국 누구의 주머니로부터 재정을 충당할지는 정부가 선택할 문제다. 문재인에게 면죄부를 줄 수 없는 이유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각 대학에서 투쟁을 알리고 연대를 호소하는 캠페인, 본관 항의 방문, 집회 등을 조직하고 있다.

6월 21일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경비 노동자들은 집단교섭 투쟁을 통해 시급 8백30원 인상을 쟁취했다. 카이스트 하청업체는 악질적이게도 첫 교섭에서부터 도망 다니기 바빴는데 노동자들이 항의해 원청이 면담에 나서게 만들었다.

최저임금도 못 받던 카이스트 경비 노동자들이 꽤 높은 임금 인상을 쟁취하자, 다른 대학 노동자들도 “카이스트 노동자들처럼 우리도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며 고무돼 있다. 이화여대에서는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회 10곳,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이화여대 모임, 행동하는 이화인,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대분회가 ‘이화여대 비정규직 청소·경비·주차·시설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 연서명’을 공동으로 받기 시작했고 단 하루만에 40개 단체, 2백30여 명이 동참했다.

서경지부는 6월 30일에 열리는 민주노총 사회적 총파업에도 동참할 예정이다. 대학 청소·경비·주차·시설 노동자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