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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논란:
정규직화 방안에서 후퇴한 서울지하철노조 집행회의 결과는 철회돼야 한다

서울지하철에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져 왔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노조 집행부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되 승진 등에서 차별을 두는 방안을 내놓았다.

관련 논의의 출발은 서울시가 발표한 정규직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서울교통공사 등 11개 투자·출연기관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2442명에 대해 “온전한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정원 외 인력’으로 관리돼 온 서울시 무기계약직 중 투자·출연기관에 한해 정규직 정원으로 통합하고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정규직 일부를 무기계약직화하거나 자회사로 고용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문재인의 비정규직 정책보다 진일보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서울시의 계획은 일부 투자·출연기관에만 한정된 정규직화일 뿐이고, 구체적인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각 기관들의 노사합의에 내맡겼다. 때문에 “온전한 정규직화”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투자·출연기관들의 사측은 새로운 직군 신설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조성주 서울시 노동협력관은 ‘우선 정규직으로 정원 통합이 중요’하다며 처우 개선은 점진적으로 시행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노조 한 간부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기존 7직급 체계에 포함하지 않고 8급을 새로 신설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는 정규직 정원에 포함은 하되 정규직 최하 직급(7급)보다 낮은 직급으로 두어 임금과 승진 등에서 여전히 차별을 두겠다는 것이다.

이는 차별 해소를 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염원에 비춰보면 턱없이 부족한 안이다. 따라서 서울지하철노조는 사측의 계획에 반대해 차별이 해소되는 진정으로 온전한 정규직화를 요구해야 했다.

동시에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노동조건에 후퇴가 없도록 정원 확대와 총인건비 증액 등을 함께 요구하며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꾀해야 했다. 사측에게 추가 예산을 배정하도록 요구하고, 서울시에게도 서울교통공사 사측을 강제하라고 요구하면서 말이다.

서울시는 정원 확대와 인건비 증가를 이유로 경영평가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행자부의 협조를 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확실히 강제해 투자·출연기관별로 꼼수 방안이 나오지 못하도록 책임을 져야 했다. 만약 투자기관들의 적자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을 해소할 예산 지원 방안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보수적 압력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울지하철노조 집행부는 차별 없는 정규직화를 굳건하게 요구하며 투쟁하기를 회피하더니, 급기야 후퇴한 안을 내놓았다.

10월 19일 서울지하철노조 집행회의(중앙 지도부와 지부장·지회장으로 구성된 회의)는 무기계약직을 7급으로 전환하되 ‘승진 유예기간’을 두는 것을 노조의 입장으로 결정했다(7급에서 6급으로 근속 승진 시 근속년수 5년이 필요한데, 이 기간을 기존 정규직보다 길게 두는 것). 유예 기간을 얼마로 둘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다수 집행회의 성원들은 사실상 정규직화를 반대한 일부 보수적 조합원들의 압력을 상당히 받은 듯하다. 이 보수적 조합원들은 ‘무분별한 정규직화에 반대’한다며 집단으로 노조를 탈퇴하겠다고 집행부를 압박했다.

일부 보수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정규직에 대한 역차별’이라거나 정규직과 동일한 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규직화는 모종의 ‘특혜’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없애자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다. 더구나 공공기관의 엄청난 채용 경쟁은 그동안 인력 충원을 줄여 온 정부와 공공기관의 책임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탓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차별 속에서도 공공서비스 제공에 기여해 온 만큼, 정규직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물론 서울지하철의 임금과 처우가 동종 업종보다 낮은 상황에서 적자를 내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의 자체 재정으로 정규직화 비용을 충당해야 하므로, 그 예산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앞으로 정규직의 임금이 오르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법하다.

지금 지하철 통합 이후 첫 번째 임단협 교섭이 진행되고 있는데, 사측은 노조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시는 지하철 통합 과정에서 합의에 따라 10월부터 적용하기로 한 임금인상분 지급을 연기시켰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통합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불만이 상당하다.

그런 점에서, 노조는 온전한 정규직화와 정원·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투쟁해야 했다. 제한된 예산을 두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전체의 몫을 늘리고자 힘을 모아야 했던 것이다. 그랬다면 조합원들의 지지를 확대하며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단결을 해치면 노조 조직도 약화된다

노조 집행회의의 이번 결정으로 정규직화에 반대한 조합원들의 집단 탈퇴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노조 조직의 약화를 막는 길이라고 보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은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 정규직과 노조를 통합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무기계약직 노동자 1445명 중 다수는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이다). 많은 정규직 조합원들도 이 결정에 상당히 착잡함을 느낄 것이다. 현장에서 함께 일해 온 비정규직 동료들의 손을 잡아 주지 못한 것에 마음이 무겁지 않은 조합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은 노조 선진 부위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우파를 강화하는 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이는 기아차와 전교조 사례에서도 확인됐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집행부의 퇴행적인 노조 분리 추진 이후, 이번 노조 선거에서 전 지부장은 조합원들의 심판을 받고 낙선했고 가장 우파적인 후보가 반사 이익을 얻었다.

전교조 중집이 기간제교사와 영전강 등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반대 입장을 결정한 뒤, 전교조는 노동운동 안팎에서 비판에 직면했고 상당수 활동가들이 좌절과 사기 저하를 겪고 있다. 기간제 교사와 강사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 투쟁에도 불리하다. 비정규직 차별 폐지에 눈 감은 이기적인 노조라는 비난에 위축되고 그 결과 자신의 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사기는 더 떨어져 비정규직 연대는 더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노조가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의 입장을 확고히 대변하면서 연대를 강화하려고 노력해야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을 이룰 수 있고, 노조도 강화될 수 있다.

차별 없는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들

이런 점들을 볼 때, 서울지하철노조 소속의 무기계약직 조합원들로 구성된 ‘서울교통공사 업무직협의체’(이하 업무직협의체)가 서울지하철노조 집행회의 결정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정당하다.

업무직협의체는 그동안 서울교통공사 최하 직급인 7급으로 통합되고 정규직 취업규칙에 따른 호봉 산정이 반영돼야 온전한 정규직화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 노동자들은 박원순 시장이 구의역 사고 이후 외주화된 업무를 직영으로 바꾸면서 ‘안전업무직’이라는 직군의 무기계약직이 됐지만, 미미한 처우 개선과 임금·승진 등 노동조건에서의 차별을 겪어 왔다.

업무직협의체는 집회와 서명운동 등 차별 없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해 나아갈 계획이다. 서울지하철노조와 도시철도노조의 정규직 활동가들은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고 집행부가 잘못된 입장을 철회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최근 지하철 정규직 활동가들은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없는 일터 만들기 서울교통공사 노동자 공동행동’을 구성했다.

서울지하철노조 집행회의 입장이 결정되기 전부터 이런 운동에 착수했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뒤늦은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자신이 ‘차별 없는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다짐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와 도시철도노조의 좌파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적극 연대하면서, 현장 조합원들 속에서 정규직화 지지를 확대하고 노조가 입장을 바꾸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