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과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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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최근 대안 사회 모델을 둘러싼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캐나다 사회주의자인 애비 바칸은 옛 소련이 사회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대체할 혁명적 대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주의하면 야만적인 스탈린주의 체제를 떠올린다. 20세기 대부분 동안 옛 소련과 동유럽을 지배한 스탈린주의 체제는 서방 자본주의보다 결코 더 나은 것이 아니었다.

전쟁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새 세대가 거리에서 투쟁을 벌이지만, 스탈린주의의 유산은 여전히 현재의 논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마르크스주의의 화신을 자처했다. 그러나 온갖 미사여구에도 그것은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체제였다.

우리는 조지 부시 정부가 민주주의에 대해 뭐라고 떠들어 대든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그들을 평가한다. 스탈린주의도 마찬가지다. 스탈린주의는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염원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었다.

스탈린은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한 체제를 잔혹하고 체계적인 착취 · 억압 체제로 바꿔놓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 노동자 · 빈민에게 영감을 줬다. 러시아 혁명은 주요 나라 가운데 최초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에서 영감을 얻어 일어난 혁명이었다.

차르 국가는 혁명 과정에서 분쇄됐고, 뒤따른 내전 과정에서 소수 특권층은 마침내 패배했다.

노동자 · 농민 · 병사 평의회가 주도하는 대중 정부는 지주와 민간 산업 자본가 계급을 철저히 타도했다.

러시아어로 “소비에트”라고 부른 이 평의회는 새롭고 진정으로 민주적인 노동자 국가의 진수였다. 노동자들은 소비에트를 통해 사회를 자신들에게 이롭게 운영하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생산은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이뤄졌다. 소비에트 대의원들은 그들을 선출한 사람들의 다수가 원하면 언제든 소환될 수 있었다.

또, 러시아 혁명은 제1차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서 전쟁을 끝낸,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반전 운동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야만을 대체할 진정한 대안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

스탈린의 반혁명은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이 죽은 후인 192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혁명 운동이 다른 나라[특히 독일]에서 실패하자 러시아는 정치 경제적으로 고립됐다.

서방 열강의 개입과 우익 세력들의 저항 때문에 야만적인 내전이 벌어졌고,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노동계급은 내전 중에 상당수가 살해됐다.

이 때문에 신흥 관료 계층이 스탈린 주위로 집결해 국가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국사회주의' 건설이 필요하며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서 완전히 낯선 이론이었다.

뻔뻔한 거짓말

소련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우겼다. 이는 나중에 국제적 모델이 돼서, 동유럽 · 중국 등지에서 모방됐다.

국가자본주의에서는 민간 자본가들이 아니라 국가가 자본을 축적하고 세계시장에서 이윤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새로운 자본가 계급 구실을 하는 국가 관료들이 반혁명을 주도했다.

혁명 이후 소련이 철저하게 고립되고 쇠약해진 상황에서 시간이 흐르자 이 신생 계급이 노동자들에 맞서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윤 추구와 자본축적을 향한 결정적 변화는 ‘제1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28년에 일어났다.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소련 관료는 의식적으로 국가자본주의적 지배계급으로 행동했다.

차르 정권에 대한 혁명적 도전을 이끈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박해받고 수감되고 살해되거나 망명했다.

농민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 노동수용소에 강제 수용됐고, 반항하면 고문당하고 살해됐다.

도시 노동자들은 파업권을 박탈당하고, 노동조합은 국가에 대한 독립성을 잃고 국가의 자본축적 확장에 필요한 생산 할당량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1920년대 초에도 소련은 경제 제재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에서 고립됐지만 볼셰비키는 국가와 작업장 관리자에 대한 노동조합의 독립성을 옹호했다.

당시에는 당 지역 기구, 노동자 공장위원회, 노동자 관리 하의 기술 전문가로 구성된 3자 위원회가 서로 협력하며 작업장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5개년 계획과 함께 노동자의 주도적 구실은 사라졌다. 오히려 관리자들 개인이 중앙 관료들이 지정한 생산 할당량에 따라 독단적으로 작업장을 운영했다.

소련에서 스탈린주의는 60년 간 지속됐다. 1953년 스탈린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았다. 그것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종식됐다. 자본주의는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다른 형태로 유지되고 있지만, 이제 그 곳의 지배계급은 그 체제를 더는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소련 국가자본주의는 미국이나 다른 서방 국가들의 자본주의와 똑같지 않았다. 소련 경제는 특정한 방식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5개년 계획이 거듭될 때마다 생산 목표는 서방과의 군비 경쟁에 대응해 매번 사후 조정됐다.

모든 재산은 국유화됐다. 민간 자본가 계급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자본주의였다.

스탈린주의적 계획에서는 군비 확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소련은 영국과 독일 등 세계 열강의 위협을 받았다. 군비 확대는 노동자 착취 강화를 수반했다.

착취율을 결정한 것은 당시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열강인 미국과의 경쟁 ― ‘총에는 총으로, 총알에는 총알로, 폭탄에는 폭탄으로' 식의 ― 이었다.

이 세계적 군비 경쟁이 냉전의 기초가 됐다. 러시아 혁명이 파괴되자, 사회주의가 수많은 사람에게 보여 준 희망은 절망과 혼란으로 바뀌었다.

각국 공산당은 러시아 혁명에 연대한다는 대의로 가장 헌신적인 활동가들과 급진적 작가들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1920년대 말에 이르면 각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스탈린주의 러시아의 외교 정책 도구 노릇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혹독한 비판을 당하고 축출됐다.

중국 · 독일 · 스페인 · 쿠바 등지의 공산당은 노동자 권력을 향한 혁명적 전망을 비극적으로 배신했다.

러시아 혁명, 그 성공과 패배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실천에서 매우 중요하다.

국제사회주의(IS) 경향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창시자인 토니 클리프는 1947년에 쓴 ≪소련 국가자본주의≫에서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해방

소련 내부의 계급 모순을 이해하는 것은 캄캄한 터널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덕분에 서방의 극소수 사회주의자들은 아주 어려운 시기에도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정신 ― 노동계급 자기해방에 근거한 인간 해방을 위한 현실적 과학 ― 을 보존할 수 있었다.

오늘날 스탈린주의의 영향력은 냉전 때보다 훨씬 미약하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좌파들은 러시아 혁명 초기에 영감을 불러일으킨 인간 해방의 이상을 많이 잃었다.

오늘날 사회주의에 관한 논쟁을 하면 사람들은 인류가 자본주의의 독재에서 해방될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실재했던 사회주의'의 사례를 지적하기 바쁘다.

자본주의의 모순, 세계를 바꾸고 새롭고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노동자와 빈민 들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주의적 대안에 대해 얘기할 때 많은 사람은 흔히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나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모델로 든다. 이들 국가는 미국 제국주의에 용감하게 맞서고 있다. 그들은 반전 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에 심대한 영감을 줬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급진적 정부의 정책조차 조지 부시 정부의 끝없는 군사 위협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사회주의는 그런 위협이 사라진 세계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미국 · 쿠바 · 베네수엘라와 전 세계의 노동계급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회를 집단적으로 조직할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원래 제시한 사회주의 개념은 사회 전체의 혁명적 변혁에 기초한 자유와 해방의 사상이다.

평생 협력자인 엥겔스와 함께 마르크스는 인류 해방을 위해 착취의 종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삶의 물질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을 뜻했다.

이는 단순한 부의 재분배와는 다르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또한 인간의 잠재력을 해방하는 것도 목표로 삼는 것이다.

이는 의식적 · 창조적 · 생산적 노동 능력을 개발하고 천대와 소외가 없는 인간 관계를 발전시킬 가능성을 포함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도전은 아래로부터 와야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혁명의 결과와 혁명의 과정 ― 자본주의의 착취에 도전하는 의식적 · 집단적 저항 ― 을 분리하지 않았다.

초기 볼셰비키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는 스탈린주의가 혁명을 패배시키기 전 혁명적 시기의 역사에 기록돼 있다.

사회주의 운동은 스탈린주의 때문에 이런 이상 중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것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힘과 그래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새롭고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스탈린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주의적 이상을 부활시킬 수 있다.

맑시즘2017: 17년 전통의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 7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서울 / 주최: 노동자연대 맑시즘2017: 17년 전통의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 7월 20일(목) ~ 23일(일) / 장소: 서울 / 주최: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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