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전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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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중엽 이후 스탈린이 추진한 인민전선(국민 연합) 정책은 파시즘에 반대해 부르주아 정치세력까지 포함한 모든 ‘민주’ 세력의 대연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과 동맹하는 정책은 노동자 계급이 반동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마비시킨다.

코민테른 제3차와 제4차 대회(각각 1921년과 1922년)에서 레닌과 트로츠키의 제의로 채택된 바 있고 1920년대 말 트로츠키가 반파시즘 투쟁의 기본 원리로서 다시금 강조한 공동전선이 코민테른 제7차 대회(1935년)에서 정식으로 채택된 인민전선과 어떻게 다른가를 알 필요가 있다.

공동전선이 노동계급 정당들 사이의 (부분적인) 행동 통일인 반면에, 인민전선은 부르주아 정당까지 포함하는 계급 협력 방침이다.

공동전선이 특정한 구체적 목표를 위해 싸운다는 실용적 합의에 바탕을 두는 반면, 인민전선은 부르주아 정부 수립을 지지하기 위한 공통의 선거 강령에 바탕을 두고 가동된다.

공동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완전한 정치적 독립성과 비판의 자유인 반면, 인민전선 속에서는 공산당이 동맹 관계에 있는 다른 정당들을 비판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공동전선은 혁명정당이 다른 활동을 계속해 나아가면서 수행하는, 당 활동의 단지 한 갈래일 뿐인 반면, 인민전선은 스탈린주의 정당의 총체적인 전략이다.

고전적 인민전선

프랑스에서는 1934년 봄부터 공산당과 사회당과 중간계급 자유주의 정당인 급진당 사이에 인민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35∼36년의 노동자 운동 고양에 힘입어 프랑스 인민전선은 1936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해 정부를 구성했다.

1936년 6월, 총파업과 광범한 공장 점거 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꼬뮌 이래 최대 규모의 노동자 운동이었다. 이 대규모 노동 쟁의는 인민전선 정부의 한계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인민전선 정부의 총리인 사회당 대표 레옹 블룸과 공산당은 어떻게든 이 투쟁을 제어해 ‘질서’를 회복하려 했다.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또레스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민전선은 혁명이 아닙니다. 파업을 시작했으면 끝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공산당과 사회당의 계급 협력 정책 때문에 갈피를 못 잡게 된 노동자들은 사기가 저하돼 작업 복귀했다. 환멸과 냉소에 빠진 프랑스 노동계급은 결국 1940년 나찌의 점령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스페인에서는 1931년에 왕정을 타도한 혁명이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이 파고 위에 올라탄 인민전선―공산당과 사회당과 마르크스주의적 통일 노동자당(이하 POUM)이라는 노동자 정당들과 두 개의 부르주아 정당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이 1936년 2월 선거에서 이겨 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1936년 7월, 파시스트인 프랑코 장군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내전이 시작됐다. 이에 즉각 대응해 노동자들은 주요 도시,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 권력을 창출했다. 파시스트들은 곳곳에서 패퇴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가 아닌 스페인은 지금 전진하고 있는 노동자 혁명을 철회하고 뒤로 후진해 부르주아 혁명부터 완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페인의 최대 노동자 정당인 아나키스트 노동조합주의자들의 전국노동자연맹(이하 CNT)은 지역별로 인민전선 정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민전선 정부가 노동자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돌려놔 스페인을 ‘정상화’시키는 데 아나키스트들이 협조했음을 뜻한다.

코민테른의 논리는 아주 단순했다. 프랑코부터 먼저 패퇴시키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사회주의 혁명에 착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코를 타도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지금 눈 앞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노동자 투쟁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인민전선 정부가 억압했으니 도대체 어떻게 프랑코를 타도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스탈린주의자들은 소련에서의 유혈 숙청을 스페인에서도 재연했다. 스페인 스탈린주의자들의 물리적 마녀사냥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범위를 넘어 POUM과 CNT의 당원들에게까지 미쳤다.

프랑코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권력이 노동자들의 혁명적 투쟁을 고무하고 농민에게 땅을 주고 모로코에 민족 독립을 허용해야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과 동맹한 인민전선 속에서 공산당이 수족이 묶여 버렸으니, 노동자 권력은 확대될 수도, 계속 존속할 수도 없었다. 프랑코의 승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비판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 방침이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그는 아나키스트 CNT와 반스탈린주의 극좌파 POUM도 인민전선에 참여했음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이 노동자 계급 전략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단순한 정체 폭로 차원이 아니라 이론적 논박이 필요한 문제라고 보았다.

트로츠키가 다룬 첫번째 이론적 논점은 인민전선이 러시아 멘셰비즘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산당과 사회당을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에 비유했다. 1917년에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카데츠(입헌민주당)를 포함한 상시적 동맹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임시정부라는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반면에, 볼셰비키는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소비에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볼셰비키는 임시정부에 양보하지 않았다. 볼셰비키의 요구는 임시정부라는 인민전선을 분쇄하는 것, 카데츠와의 동맹을 파괴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인민전선은 노동자 혁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 아니라, 반파시즘 투쟁의 효과적인 무기도 전혀 되지 못하는 도구이다. “인민전선 이론가들은 산수의 가장 기초인 덧셈을 넘어서지 못한다. ‘공산당+사회당+아나키스트+자유주의자=그 각각을 단순히 합한 것’이라는 부등식이 그들 지혜의 전부이다. 그러나 산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역학 또한 필요한 것이다. 힘의 합성을 뜻하는 평행사변형에서 합성되는 힘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면 합성력은 그만큼 짧아진다. 정치적 동맹들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면 합성력은 제로(零)가 될 수 있다.”“때때로 공통의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다른 노동계급 정치조직들의 동맹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특정 상황에서 그러한 블록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관계와 엇비슷한 이해관계를 갖는 피억압 쁘띠부르주아 대중을 끌어당길 수 있다. 그러한 블록의 연합된 힘은 각 성분의 힘들의 단순한 합계보다 훨씬 더 강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정치 연합은 그 기본 이해관계가 180도 반대인 두 계급 사이의 동맹인지라 프롤레타리아의 혁명 세력을 마비시키는 데에만 이바지할 뿐이다.”“내전에서는 적나라한 강압이 효과를 거의 못 거두기 때문에 내전의 양 당사자들에게 최고의 자기 절제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동자와 농민은 자기 자신의 해방을 위해 싸울 때만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 지도부에 예속시키는 것은 미리부터 내전에서의 패배를 확신시키는 것이 된다.”

중간계급과의 동맹

트로츠키가 다룬 두번째 이론적 논점은 후진국에서 농민이나 도시 중간계급과의 동맹 문제였다. 트로츠키는 자본주의 정당과의 협정에 의해서는 쁘띠부르주아지를 자기 편으로 끌어당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정당은 선거에서 주로 쁘띠부르주아지로부터 표를 끌어모으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와 도시 및 농촌 중간계급 사이의 동맹은 의회에서의 그들의 전통적인 대의체―즉, 자본주의 정당―와 비타협적으로 싸울 때만 실현될 수 있다. 농민을 노동자 편으로 견인하려면 농민을 급진당 정치가들로부터 떼어낼 필요가 있다.”중간계급은 극단주의에 놀라 뒤로 나가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강력하고 가장 결연한 지도를 제공하는 사회 세력에 끌린다. 그러므로 중간계급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파시스트들보다 강력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계급이 자기 역량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약화시키는 것은 중간계급을 반동 편에 넘겨 주는 것이다.

지배 계급의 구조

트로츠키가 다룬 세번째 이론적 논점은 지배계급의 구조와 관련돼 있다.

코민테른은 파시즘을 “금융자본의 테러 독재”라고 규정했다. 파시즘은 자본가 계급의 단지 일부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의 다른 분파들은 프롤레타리아의 반파시스트 동맹 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민주대연합” 또는 “반독점 동맹” 따위의 이론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의 인민전선은 “2백대 가문에 맞서는 국민의 투쟁”을 주장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비판했다. “물론, 인구의 98%는 아닐지라도 95%가 금융자본의 착취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착취는 위계적으로 편제돼 있다. 착취자-하위 착취자-하위 착취자의 하위 착취자 등등의 식으로. 이런 위계 체계를 통해 초착취자들이 국민의 대다수를 예속시킬 수 있다. 국민이 하나의 계급적 핵심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으려면 이념적으로 재편돼야 하는데 이것은 프롤레타리아가 ‘국민’ 또는 ‘민족’ 또는 ‘민중’으로 용해되지 않을 때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 ““급진당 정치인들이 프랑스를 지배하는 2백대 가문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인민 대중을 파렴치하게 기만하는 행위이다. 그 2백대 가문은 공중에 붕 떠 있는 게 아니라 금융자본 체제의 최고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2백대 가문을 타도하려면 경제 · 정치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그런데 급진당 정치인들인 에리오와 달라디에는 플랑댕이나 들라록끄 못지 않게 그 체제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프랑스공산당이 주장하듯이 한줌밖에 안 되는 재벌에 맞서는 국민적 투쟁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이 있어야 한다. 즉, 계급투쟁이 문제이며 이것은 오직 혁명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하나의 계급 전략으로서 인민전선이 전제로 삼고 있는 이론적 근거를 분쇄하기 위해 트로츠키가 살펴본 위의 세가지 이론적 논점들을 종합해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본가 계급 정당과 동맹하는 정책은 노동계급이 반동에 저항하지 못하게 마비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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