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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책벌레, 김하영:
한반도 위기의 근원을 밝힌다

이 책은 한반도 전쟁 위기, 김대중 햇볕 정책, 남북한 지배 권력의 관계, 북한 사회의 성격과 지배 이데올로기 등 북한과 관련된 초미의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먼저 저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가?” 하고 묻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1999년 서해교전 발발 전에 쓴 이 글은 한반도 주변의 긴장 격화와 그에 따른 전쟁 발발 가능성을 예측했다.

저자는 냉전 해체 뒤 불안정해진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냉전 해체 뒤 가속화한 “미국 제국주의 통제력의 위기” 때문에 미국은 잠재적 경쟁국들(중국, 일본)을 통제하기 위해 군사적 힘을 사용하려 한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이런 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점증하는 동아시아의 불안정이 자신의 통제력을 위협할까 봐 걱정이다. 행여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 중국과 일본의 군비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 때문에 미국은 북한을 하루 빨리 굴복시키고 동아시아에서 힘의 우위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핵사찰 압력은 온갖 위선으로 가득하다. 핵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핵무기 생산 능력조차 의심스러운 북한을 두고 핵사찰 압력을 넣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지목한 금창리 핵시설 의혹 현장은 “커다란 빈 동굴 단지”일 뿐이었다.

위선적인 것은 김대중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남북 화해를 추구한다고 하면서 “미국이 남한의 사거리 300킬로 미사일 개발을 허용하자 남한 정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자는 김대중의 햇볕정책 자체가 모순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한다. 김대중은 1998년 중순에 노동자 투쟁의 격화 가능성 때문에 정주영의 소 떼 방북 후에 벌어진 잠수함 사건을 “북한 위협 카드”로 써먹었다.

한 편 대북 관계의 정략적 이용조차도 미국의 대북 정책과 동북아 정세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 햇볕정책의 최대 성과로 꼽히는 남북정상회담조차 “제국주의 세계 질서 속에서 열강 간의 세력 균형”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모순이 작용한다. 일본의 TMD 가입으로 미국·일본 대 중국·러시아간의 세력 균형이 형성됐지만, 이는 동아시아에서 심각한 군비 경쟁을 예고하는 것으로 향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불안정의 씨앗이 될 것이다.

저자는 대북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게 김대중만의 수법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역대 남북한 지배자들은 자신의 지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남북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그것도 겉으로는 적대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서로서로 도왔다. 화해 제스처(“온풍”)와 강경 대응(“냉풍”) 모두 필요했다. 예컨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남한에선 유신 체제를, 북한에선 주석제를 추진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용됐다. 판문점 총격 사건은 남북한 지배자들이 서로 한통속이라는 걸 극명히 드러냈다.

이 쯤 되면 저자가 남북한 지배자들 모두에게 아무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한의 친북 좌파들은 북한 정권에 대한 모종의 환상 때문에 김정일의 협상 파트너인 김대중에게까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는 것이 남북한 지배자 모두에게서 독립적일 수 있는 길이다.

저자는 통념과 달리 북한 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통념상 사회주의는 국유화와 동일시됐다. 그러나 특정한 소유 형식으로 사회 성격을 판단할 수 없다. 이미 엥겔스는 비스마르크의 국유화를 두고 “가짜 사회주의”라 비판한 바 있다. 국유화를 사회주의라 한다면 후진국에서 급속한 공업 발전을 위해 국가가 생산수단과 자원을 통제하고 계획하는 구실을 담당하는 것도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과연 박정희도 사회주의자인가?

자본주의에서 자본 집중 경향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 일국 내의 경쟁을 제거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조차도 국제적 규모의 경제·군사 경쟁 체제에 얼마든지 속할 수 있다. 북한 경제야말로 이런 관점의 접근이 가능하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간 경쟁 체제에 종속되고, 남북한 사이의 경제·군사 경쟁 필요 때문에 관료들은 국유화와 계획 경제로 급속한 공업화를 달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때 주체 사상은 급속한 공업화를 위해 필요한 대중 동원 이데올로기 구실을 톡톡히 했다.

북한 사회의 성격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경제가 무엇을 동기로 해 운영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은 북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들은 생산의 계획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고,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도 못했다. 오히려 해방 뒤 꾸준히 성장한 관료들이 농업집산화를 통해 농촌으로부터 노동력을 이동시킨 뒤, 생산수단과 노동력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했다.

게다가 북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생산물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북한은 공업화 과정에서 대중의 소비에 필요한 물자 생산은 계속 줄여 나가면서, 생산수단에 대한 생산은 계속 늘렸다. 이는 북한 경제체제가 대중의 필요보다는 축적 동기에 의한 생산이 지배한 것임을 보여 준다.

저자의 결론은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료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집합적으로 착취하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북한도 엄연히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남한 좌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탈북자들을 과연 “사회부적응자”로 봐야 할까? 북한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가? 1989년 천안문 항쟁 때 중국 지배자들이 그랬듯이 김정일이 ‘사회주의’에 반기를 든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것을 지지할 것인가? 남북 민중의 이익을 위한 통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이 책은 한반도 변혁 문제와 관련된 수많은 질문들에 명료하게 답변해 주는 빼어난 실천지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