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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퇴진 논쟁 Q&A

6·10 백만 촛불항쟁 이후 운동의 진로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몇 가지 논점들을 다룬다.

촛불을 끄고 제도권(국회)에서 해결하자?

최장집, 박상훈 같은 자유주의 학자들과, 촛불 항쟁의 지지를 받아 온 MBC, KBS, 〈경향신문〉 등도 이런 김빼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제도권 정치는 거리의 요구를 수렴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한 강부자 국회 아닌가. 민주당도 다른 의제는 둘째치고 쇠고기 문제만 봐도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 당 소속 의원들은 지난 16일 서울 강북구의회에서 ‘공공기관내 미국산쇠고기사용금지 결의안’조차 부결시켰다.

지금 중요한 것은 거리의 운동을 계속 유지 확대시키는 것이지, 부유층 대표자들의 토론 장소[의회]로 관심을 이동(또는 분산)할 때가 아니다.

왜 우리가 1백만 명이나 모이고도 요구 성취 전에 스스로 거리에서 물러나야 하는가?

이명박 퇴진 이후 대안이 없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현재는 촛불의 요구를 대변할 제도권 정치세력이 부재하다”고 했다. 진보신당 장석준 정책팀장은 “이명박 ‘이후’의 대안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이명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개악과 배신의 5년을 보낸 민주당, ‘짝퉁’ 한나라당인 자유선진당 등이 촛불 운동 참가자 측의 대안이 아님은 물론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아직 힘이 약하다. 그러나 대안을 반드시 제도권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다.

만일 우리가 강력한 투쟁으로 이명박을 퇴진시킨다면, 이후에 가장 큰 힘을 갖는 것은 바로 이 아래로부터의 운동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불신받은 미친 정책들을 다시 실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통해 진정한 개혁과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이 진정한 대안이며, 그 속에서 진보적 대안 권력과 정권의 문제도 모색될 수 있다.

퇴진 요구하면 혼란이 온다?

〈한겨레〉 김종철 논설위원은 “대통령의 퇴진은 실제로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사실 이런 걱정은 우파들이 먼저 해 온 것이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호(號)가 … 선장도 기관사도 항해사도 없이 키조차 망가진 채 흘러가고 있다”고 개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이 만들려는 ‘재벌천국 서민지옥’이야말로 진정한 혼란이다. 온갖 미친 정책들을 추진하려는 이명박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그 혼란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펼쳐질 가능성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정권 퇴진까지 낳은 아래로부터 거대한 투쟁 속에서 사회의 진보와 민주적 개혁이 가능했던 때가 종종 있었다.

이명박 퇴진 지지는 40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명박 퇴진은 아직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명박의 지지율은 이미 전임 대통령들(김영삼과 노무현)의 최저 지지율 기록을 경신했다.

또 중요한 것은 지지율 추락 속도다. 취임 넉 달도 안 돼 이명박의 지지율은 7퍼센트대로 곤두박질쳤다. 이렇게 봤을 때 이명박 퇴진 지지가 40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사실보다 벌써 40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더구나 운동이 더 강력해지거나 이명박과 그 패거리들 중 누구라도 실수를 할 경우 이명박 퇴진을 지지하지 않는 50퍼센트의 사람들 중 상당수가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정치 투쟁에서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6월 10일 1백만 명 시위는 이명박 지지율을 7퍼센트로 뚝 떨어뜨렸다. 이 타이밍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 퇴진을 내걸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주춤하는 동안 저들은 필사적으로 회생하려 한다. 이명박은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고, 조중동 등은 촛불 운동을 비난하고 분열·이간질하려 한다. 〈경향신문〉 등 자유주의 언론들도 퇴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해, 우리 운동 내에 혼란을 자아내고 있다.

KO승을 눈앞에 둔 권투 선수가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며 시간을 끌다가는 오히려 상대방이 기력을 회복할 시간만 벌어줄 수 있다.

이명박 퇴진은 ‘헌정 질서’에 어긋난다?

노무현은 “정권 퇴진을 밀어붙이는 건 우리 헌정 질서의 원칙에서 맞지 않다”며 이명박의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최장집 교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명박 퇴진에 반대한다. ‘제도’를 통해 정권이 교체돼야지 ‘운동’을 통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조차 ‘운동’으로 정권을 끌어내린 “4·19혁명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즉, 국민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 이명박이 퇴진하면 헌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하면 될 일이다. 7퍼센트 지지율의 이명박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정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명박이 퇴진해도 잘못된 구조는 남는다?

폭력 경찰과 조중동, 한나라당 등으로 구성된 정치 구조 전체를 바꾸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물론 옳다. 재벌이 노동자를 쥐어짜고 서민을 천대하는 사회 구조도 물론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지금 그 구조의 핵심 행위주체인 이명박을 겨냥해야 한다.

국민 대중에 의해 이명박이 퇴진당한다면, 어떤 세력도 다시금 강부자 내각과 재벌 ‘프렌들리’ 정책을 지속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조중동 역시 입을 함부로 놀리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명박 퇴진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가진 강력한 힘을 확인하도록 만들 것이고, 이는 한국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명박의 언론 통제와 조중동부터 막아야 한다?

퇴진 요구를 내걸면 조중동 등이 이를 트집잡아 공격할 것이므로, 조중동과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부터 먼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것은 필요한 과제지만, 조중동의 시도가 언제나 성공할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언론에 의존하지만 동시에 나름의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조중동의 말을 믿은 사람은 별로 없다.

1987년 6월에도 독재정부는 언론 통제로 국민의 목소리를 누르려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명박이 양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운동이 이를 규탄하고 진실의 목소리를 낸다면, 조중동은 국민들로부터 더 외면받게 될 수 있다.

국민투표로 묻자?

진보신당은 최근 이명박의 주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회부하고 대통령 신임을 연계하자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국민투표는 효과적인 전술이 될 수 없다.

국민투표 부의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퇴진을 요구받는 당사자에게 투표 발의를 요청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명박이 국민투표를 수용케 할 정도의 압력이라면 그 힘으로 즉각 퇴진시키는 것이 더 낫다.

만약 이명박이 수용한다 해도 수개월 동안 시간을 벌면서 반대 여론을 가라앉히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코스타리카에서도 2007년 초 FTA에 반대하는 거리 반란에 밀린 정부가 FTA 찬반 국민투표를 수용했다. 궁지에 몰렸던 정부는 6개월 동안 반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결국, 투표율 59퍼센트, FTA 찬성 51.6퍼센트로 우리 편이 패배했다.

국민소환제 도입/주민소환제는 어떨까?

한신대 김상곤 교수나 ‘국민주권수호시민연대’처럼 국민소환제 도입을 대안으로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선출한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해도 통제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소환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운동의 요구를 국민소환제 도입으로 수렴시키면 정권 퇴진은 소환제 입법 후에나 이뤄져야 할 과제로 미뤄지게 된다. 다시금 이명박은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국민소환제 도입을 강제할 힘으로 그냥 퇴진시키는 것이 낫다.

한편, 이미 도입된 주민소환제로 지방자치단체가 대운하나 민영화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중앙집권제 국가인 한국에서 중앙 정부가 미친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지방 정부로 표적을 돌리는 것은 초점을 흐리는 것이다.

의제 확대 때문에 참가자 수가 줄었다?

조중동은 “의제 확대와 정권 퇴진 요구로 촛불이 변질되면서 규모가 줄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5월 초 ‘촛불 소녀’들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뿐 아니라 ‘0교시 부활’ 등도 규탄했다. 의료 민영화 반대 자유발언도 큰 호응을 얻었고 대운하 반대는 촛불 참가자들의 당연한 상식이었다. 촛불의 대열이 5월 초 1만 명에서 6월 10일 1백만 명으로 확대된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결합됐기 때문이었고, 1백만 명은 다 함께 “이명박은 물러나라”하고 외쳤다. 오히려 이런 자연스러운 불만과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억누를 때 규모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