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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진보 진영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야 하는가?

최근 경제 위기의 격화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진보 진영 일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에 효과적인지에 대해 진보 진영 내에서도 논쟁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한국 진보 진영의 다양한 입장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을 시작으로 <레프트21>은 앞으로도 진보 진영 내의 건설적인 토론과 논쟁을 활성화하는 기획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주32시간제’와 ‘국가고용책임제’로 일자리 유지해야

임동수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올해 교섭 요구안에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의 경우, 세제 감면과 최소한 단축분에 해당되는 통상임금 삭감분 이상을 지원하도록 ‘고용안정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의 요구안으로 주35시간 노동제와 노동시간 상한제, 교대제 개선과 월급제로 임금체계 전환을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주32시간제’ 전면 도입과 ‘국가고용책임제’를 통한 일자리 유지를 검토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저성장·고실업 경제 구조와 공황에 맞서 현재의 일자리 규모를 유지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에서 양질의 ‘사회공공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주창하고 있지만, 4백만 실업자와 생산 감축, 자영업자 몰락으로 증가할 실업자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정리해고에 처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현재의 일자리를 유지할 방안이 더욱 절박하다.

둘째, 자본은 경제 공황의 손실을 일차적으로 해고를 통한 비용 감소로 유지하며, 2차로 전사회적 비용 증대(예컨대 공적자금 등을 통한 보전)로 극복해 왔다. 이런 손실 부담의 폭력적인 전가에 맞서 최소한의 방어권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제기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회보장이 부실한 경우, 체제 안전을 위해서라도 일자리 유지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말고는 경제 공황 시기에 맞서 일자리를 유지할 방안이 없다. 자본주의에 내재된 모순의 필연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경제 공황 시기에 노동계급의 요구를 사회 전면에 내세우는 매우 심각한 이데올로기 투쟁이기도 하다. 그간의 노동운동은 시민권 차원에서 진행돼 왔다. 즉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구호는 우리 사회에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던 침묵과 굴종의 노동자들에게도 정당한 시민권을 달라는 요구였다. 법에 따라 노조를 조직할 권리, 노사간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리 등을 보장해 달라는 ‘청원’ 수준의 요구와 생존권이었다.

노동권을 전 사회적 최우선 요구로

이제는 ‘노동권’을 시민권 차원에서가 아니라 전 사회적 최우선적 요구로 격상시켜 나가야 한다. 경제 공황의 책임을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자본에 맞서 경제위기 극복과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전 국민적 요구를 대표하는 것으로 노동계급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적극화돼야 한다.

지난 시기 주40시간 노동제 요구는 대기업 위주로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점차 하층 노동시장으로 왜곡돼 온 과정이었다. 주40시간 노동시간 단축이 실노동시간 감소와 정규직 일자리 증가로 나타나지 못한 채,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에게 모든 짐을 떠안기듯 진행됐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거꾸로 진행돼야 한다. 가장 첨예하게 실업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위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유지가 선행되면서, 점차로 대기업으로 확대돼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보전을 국가가 책임지며, 이에 따르는 사회적 참여와 감시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공적자금을 조성해 ‘고용대책’에 쏟아부어야 한다. 왜 공적자금을 은행과 대기업에만 퍼부어야 하는가?

한편,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반대급부인 노동비용 하락과 하청 생산의 확대라는 자본의 대응으로 이어져 오히려 그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 비약이다. 왜냐하면, 노동시간 단축과는 별개로 IMF 이후 노동관리의 강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비용 감소는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자본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금 인상 요구가 자본의 노동강도 증가로 상쇄한다고 해서 그 요구 자체가 잘못이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임금 인상 투쟁이 다양한 내용으로 발전하며 궁극적인 투쟁으로 발전하듯이, ‘노동시간 단축’ 투쟁 또한 현장의 요구에 기초한 풍부한 내용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벽에 봉착하듯이, 더 근원적인 노동계급의 정치투쟁으로 발전돼야 할 내용으로 봐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창출에 유효한가로 논쟁할 문제가 아니다. 경제 공황 시기 실업으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다. 계급적 능력의 문제는 별개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함정

경제 위기와 일자리 나누기 ─ 해고금지특별법을 만들자!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노동위원

최근 경제 위기로 일자리 나누기 방안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금속노조는 올 초부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고, 여러 정부 연구 기관 역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하고 있다. 물론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금속노조는 교대제 개선, 월급제 실시 등을 통한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고, 자본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반드시 임금삭감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본의 입장은 사실 노동시간 단축이 핵심은 아니다. 자본은 줄어든 노동비용을 노동자들이 원한다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끼리 나눠 가져 보라는 것이다. 노동자를 필요할 때 부리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자본의 속성이 뻔히 보인다.

한편, 금속노조를 비롯한 진보 진영이 주장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1998년 이후 진행된 광범위한 노동유연화로 인해 노동시간 단축이 총 노동자 차원의 일자리 나누기보다는 저임금 하청노동자의 증가와 노동강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미 2004년부터 시작된 법정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 역시 이러한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몇 가지 데이터를 살펴보자. 제조업 대기업들은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며 외주 하청 비율을 크게 늘렸는데, 그 결과 1992년 제조업에서 16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던 영업 총비용 중 인건비 비중은 1999년 이후 11퍼센트까지 하락했다. 자동차와 조선업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아예 제작을 외부에서 하는 모듈 생산 비중이 전체 생산 중 30퍼센트까지 증가했고, 대우조선해양은 사내하도급인력이 직고용 노동자의 1백30퍼센트를 넘어섰다. 더욱 문제는 법정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진 2004년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됐다는 것이다.

즉 노동시간이 단축돼 직고용 노동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자본은 직고용 노동자의 생산량 감소분을 외주 하청의 증가로 대체해 나갔다는 것이다. 제조업 대기업들의 인건비 비중은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조금 더 하락했다.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증가가 아니라 위와 같은 일자리 이동으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중소 제조업체와 대규모 제조업체의 상용직 증감 추이를 봐도 알 수 있다. 노동부 통계를 보면 2004년 이후 하청 (용역) 생산을 담당하는 중소 제조업체의 상용직 노동자는 늘어났지만 대기업 상용직 노동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요컨대, 생산과 노동의 외주화라는 노동조건은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증가가 아니라 일자리 이동으로 만들었으며, 경제 위기 속에서 ‘사활을 건’ 생산 비용 감소를 계획하는 자본을 상대로 한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다시 한 번 저임금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증가 또는 비정규직의 확대로 악용될 여지가 더욱 크다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해고금지특별법”을 제정하자

이미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현재 핵심 문제는 해고다. 노동시간 단축 주장 역시 해고를 피해 보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재 현장은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일할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물량 확보를 위한 노동자간 경쟁으로 뜨겁다. 더 오래 일하기 위해서 노사 교섭을 하고, 노동자간 협의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노동자 운동은 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자본이 노동자를 마음대로 해고하지 못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GM대우, 만도 위니아, 한일파카 등에서 불거지고 있는 외국자본의 철수와 이로 인한 휴폐업 상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해고’ 그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제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최근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한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해고금지특별법’ 제정 운동을 논의하고 있다. 해고금지특별법은 첫째, 파산 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노동조건 하락 없는 고용승계를 의무화하고, 둘째 외국인 소유 기업의 노동자 고용에 관한 특별 책임을 제도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외국기업의 노동자 해고 시 외국인 자산을 통제하고, 해외 본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 자본 유출을 엄격하게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들로 논의되고 있다.

이 밖에도 기존의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본에 대해서는 강한 제재를 할 수 있어야 하며, 외주 하청노동자 등의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를 엄격하게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내용 등도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