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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대안 논의 ⑤─사회적 기업:
시장도 국가도 아닌 대안?

신자유주의 시대에 기업의 무한정한 이윤 추구로 복지·환경·노동조건 등이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제3세계에서는 엄청난 대중이 가난·질병으로 고통받는 현실을 보면서, 몇몇 사람들은 ‘사회적 기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함으로써 사회를 좀더 살 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런 정서는 이윤 추구에만 골몰하는 기업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표현한 것이다.

우선 이런 종류의 개념으로 널리 퍼져 있으며, 기업들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다.

기업이 환경 보호, 노동조건 개선, 지역 사회 지원에 나서 이윤 추구와 사회적 기여를 조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CSR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구별하기 힘들고 이를 어기는 기업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을 표방하며 CSR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삼성은 악명높은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들을 감시·탄압하고, 편법 상속으로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안 내고, 정관계에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며 ‘장학생’들을 관리해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아름다운 기업”을 표방하며 ‘사회공헌’(즉 기부)에 공들여 왔다. 그러나 그 계열사인 대한통운은 운송료 30원 인상 약속을 지키지 않고 노동자들을 해고해, 결국 박종태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런 가증스런 행태들은 단지 한국 기업들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후덕한 기부로 ‘좋은 기업’ 이미지를 얻었던 미국의 거대 에너지 회사 엔론은 2001년에 회계부정으로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파산하며 추악한 실체가 드러났다.

CSR은 기업 이윤을 침해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다. 더구나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 기업들은 “CSR를 사치로 인식하거나, 기존에 실행해 오던 CSR 프로그램마저 후퇴시키고 있는 실정”(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김영호 이사장)이다.

착한 일 하면서 돈도 번다?

한편, 좀더 본격적인 사회적 기업 논의는 분명 CSR와 구별된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 개념은 주창자들 스스로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힘들다.

사회적 기업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기업이 단순한 자선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부, 기업, NGO와는 구별되는 “제4섹터”인 사회적 기업은 “착한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기업”이라고 정의된다. 즉,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스스로 수익을 내기 위해 기업과 마찬가지로 혁신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사회적 기업을 소개하는 책이나 자료들을 보면, 주요 사례의 상당수는 자선단체들이다. 예를 들어, ‘룸투리드(room to read)’는 제3세계에 학교 2백 곳과 도서관 3천 곳을 지어 준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소개된다. 특히 창업자 존 우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고위 임원 출신이라 더 널리 알려졌다.

캄보디아에 있는 ‘룸투리드’ 도서관 사회적 기업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기부금이 없으면 운영될 수 없는 자선단체다. ⓒ출처 Room to Read

존 우드의 ‘혁신’은 자신의 경력과 인맥을 이용해 정열적으로 더 많은 기부금을 모으고, 도서관 건설에 지역 주민을 동참시킨 것이다. 그러나 ‘룸투리드’는 기업이 아니며 기부금이 없으면 운영될 수 없는 자선단체다.

이익을 추구해 제 발로 선다는 사회적 기업 사례에 흔히 ‘열정적인’ 자선단체가 포함되는 이유는 사회적 기업이 기본적으로 기부나 자원봉사, ‘선한 소비’, ‘사회책임투자’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알려진 곳들을 봐도 그렇다. 재활용, 자원봉사, 공정무역 등과 연계된 ‘아름다운 가게’, 장애인을 고용해 쿠키를 만드는 ‘위캔’, 한국에서 공정무역 상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등도 기부나 자원봉사, ‘선한 소비’가 꼭 필요하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선 활동이 부딪히는 한계에 똑같이 직면하게 된다. 즉, 사회적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일자리로는 전 세계의 가난이나 질병, 실업 등을 완화시키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성공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소개되는 ‘마이시4(MYC4)’는 창업 2년 만에 전 세계에서 투자자들 1만 4천 명을 모아 아프리카 각국의 소기업 4천5백 곳에 투자했다. 그러나 투자금은 고작 1백50여억 원(달러가 아니다!)에 불과했다.

전 세계에서 사회적 기업에 투자한 민간 자금은 2004년 기준으로 채 1억 달러가 되지 않았다. 민간 기업 투자금에 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 대기업들의 자선기금과 비교해도 새 발의 피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노동부가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한 2백18개 기업에 고용된 사람은 3만여 명이고, 이들의 당기순이익 합계도 45억 원에 불과했다. 이조차 “정부가 사회적 기업에 사업 기회를 많이 제공했던 영향이 컸다.”(곽선화 부산대 교수)

사회적 기업이 성공적으로 확산되려면 규모 확대가 필수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투자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의 주창자들도 인정하듯이, 외부 투자자를 받아들이면 사회적 기업의 경영 철학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크게 받게 된다.

폐자재를 활용해 악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어려운 청소년에게 일자리와 문화공연 서비스를 제공해 한국에서 성공한 사회적 기업으로 알려진 ‘노리단’도 이런 유사한 압력을 받고 있는데, 이들은 결국 기존 방식을 유지하며 적게 성장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결국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다는 주창자들의 근거없는 낙관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거대 기업들 사이의 작은 틈새에 머무는 것 이상을 하기 힘들다.

시장을 통한 빈곤 퇴치?

한편, 사회적 기업 주창자들이 사회적 기업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이윤 추구만을 절대시하는 기업에 대한 반감뿐 아니라 비효율적인 관료 기구와 국가 통제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의 주창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환경과 사회를 포괄하는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은, 시장만능주의로도 국가사회주의로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사회적 기업이 새로운 대안이다.”

이는 정부는 비효율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편견에 기반을 둔 주장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거대한 관료 기구의 비효율성은 거대 민간 기업이나 심지어 큰 규모의 자선단체에서조차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 통제가 비효율적이고 정부 복지가 형편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는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과 행동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도록 촉구하면서도, 많은 세금과 복지 확대를 반대하고 복지제도가 자신들의 이윤을 침해하거나 사업 기회를 줄이려 한다면 극렬히 반대한다.

브라질에서 빈농들에게 값싼 전기와 펌프를 제공해 주려던 사회적 기업가는 사업 기회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시멘트·알루미늄 업계의 반발과 그들과 유착한 정부의 방해에 부딪혔고, 이를 겨우 극복했을 때는 전력공사가 민영화돼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기업이 흔한 자선단체와 다른 부정적 측면은 실업·빈곤·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시장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수백만의 빈민 여성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무담보 소액 대출(마이크로크레딧)을 제공한 가장 성공한 사회적 기업 그라민은행 등은 빈민들에게 교육과 자금을 제공해 이들이 시장에 포함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라민은행의 창업자이며 이를 통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누스 박사는 “서구의 복지제도가 빈곤 탈출에 방해가 된다”며 복지가 아니라 시장을 통한 빈곤 퇴치를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빈민이 무담보 소액 대출 방식으로 사업 기회나 일자리를 얻고 빈곤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적 경쟁은 많은 소기업들을 파산시키고,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내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라민은행이 수백만 명에게 대출해 주면서도 1백 퍼센트에 가까운 상환율을 기록한 것은 지원 대상을 매우 엄격하게 선정할 뿐 아니라 연대보증과 같은 안전장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라민은행에서 대출 받은 여성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자산이 있는 중간계급이었다.

사회적 기업은 시장이 낳은 빈곤과 실업, 환경 파괴를 시장을 통해 극복해 보자는 대안이다. 그러나 결국 자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기업이 이윤 추구에 몰두하는 민간 기업들과 경쟁해 승리할 수는 없다.

게다가 사회적 기업의 주창자들은 시장이 효율적이며 정부는 무능하다는 편견을 시장주의자들과 공유하며 그 의도와 상관없이 복지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나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사회적 기업에 뛰어드는 것보다 사회 진보를 위해 더 값지게 열정과 헌신성을 투여하는 방법은 많다. 그것은 대중과 함께 정부·기업에 진정한 개혁을 요구하고 투쟁하면서 시장 체제를 뛰어넘는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